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7일 `최저임금 결정 체계 개편 초안`을 발표하기 위해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호영 기자] |
정부가 최저임금 결정 구조를 이원화하는 내용을 담은 최저임금 체계 개편 초안을 마련했다. 32년 만에 뜯어고치는 최저임금 개편은 학계와 연구기관 출신 전문가들로만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를 신설해 갑작스러운 큰 폭 인상 등으로 인해 우리 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을 막아보자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구간설정위원회 내부에서도 노사정이 각각 추천한 위원들이 여전히 '샅바싸움'을 벌일 여지가 충분해 근본적 해결 방안으로 보기에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7일 고용노동부는 '최저임금 결정 체계 개편 논의 초안'을 발표하면서 "최저임금위원회 내에 전문가로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를 신설해 최저임금 상·하한을 정할 것"이라며 "결정위원회가 그 구간 내에서 최저임금안을 결정하도록 이원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원화 방침은 지난해 12월 최저임금 제도 개선 TF에서 제시한 것으로, 고용노동부는 앞으로 광범위한 의견 수렴을 통해 개편안을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기존 TF 제시안에서 더 나아간 것은 구간설정위원회 위원 수와 자격, 선정 방식이다. 구간설정위원은 총 9명으로 구성하되 대학에서 경제학, 노사 관계 등 관련 분야에서 5년 넘게 부교수 이상으로 재직 중이거나 재직했던 사람이어야 한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국제노동기구(ILO) 국제 기준을 반영해 새롭게 추가·보완될 결정 기준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최저임금 상·하한 구간을 설정하고, 공익위원 추천에 있어 정부의 단독 추천권을 폐지하겠다"며 "위원회는 최저임금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철저히 모니터링하고 분석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는 구간설정위원 선정 방법에 대해 두 가지 안을 제시했다. 우선 노사정이 각각 5명씩 추천해 노사가 순차적으로 배제하는 방식, 또 다른 안은 노사정이 각각 3명씩 추천하는 방안이다. 이에 대해 결과적으로 기존 노사정 협의기구와 별반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힘들지 않겠느냐는 회의적 시각도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학계 관계자는 "구간설정위원회 내에서도 노사가 평행선을 그어 합의점을 찾기 힘들었던 기존과 똑같다는 비판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며 "이 제도는 호주 사례를 참고한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 현실에 어떻게 적용될 것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결정위원회는 구간설정위원회에서 정한 최저임금 범위 내에서 최종적으로 최저임금안을 심의·의결하게 된다. 고용부는 법률 개정을 통해 결정위원회에 청년·여성·비정규직 근로자와 중소·중견기업·소상공인 대표를 반드시 포함한다.
최저임금 결정기준엔 근로자의 사회보장급여 현황과 기업의 지불능력을 명시할 예정이다. 특히 기업의 지불능력의 경우 한국은행의 기업경영분석, 통계청의 기업생멸행정통계 등이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최저임금은 최근 2년간 30% 가까이 인상됨에 따라 근로자의 최저생계보장 측면에선 상당 정도 충족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사측에선 최근 인상폭으로 인해 기업 경영에 과도한 부담이 생겼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정부는 최저임금 반영 요건에 기업의 임금부담능력을 명확히 해 균형을 맞추는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이 장관은 "최저임금이 현재 노동시장 참여 주체인 노사뿐 아니라 전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만큼 참여를 다양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됐기 때문"이라며 "결정위원회는 노·사·공익 3자 동수로 구성하되 구간설정위원회가 신설되는 만큼 전체 숫자는 15명 또는 21명으로 줄이겠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정부가 추천권을 모두 갖고 있어 공정성 논란을 야기했던 공익위원에 대해선 국회가 일정 규모 추천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방안이 논의된다.
그러나 정부의 초안 마련에 대해 협상의 한 축을 담당하는 노동계는 반대 의견을 분명히 해 진통이 예상된다. 한국노총은 최근 성명서를 통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면서 당사자인 노동자 의견을 무시하겠다는 것으로, 사실상 최저임금제도를 무력화시키는 내용"이라고 비판했다. 민노총 역시 "노사가 빠진 상태에서 전문가들로만 구성한 구간설정위원회가 최저임금 상·하한을 결정한다는 발상 자체가 놀랍다"며 "당사자인 노사가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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