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상]
작년 1심 선고 사건 중 10건 살펴보니 8건이 소상공인 대상
바뀐 법 몰라서, 상승분 못 챙겨줘서… 벌금형 받고 전과자 돼
한씨는 "법을 잘 몰랐다"면서 미지급 최저임금에 더해 60만원을 얹어 줬다. 하지만 법원은 작년 11월 그에게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최저임금법은 미지급 임금을 나중에 주더라도 형량을 정하는 데만 감안할 뿐 처벌은 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한씨는 본지와 통화에서 "위로금까지 주고도 전과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그는 이 사건 이후 새로 직원을 채용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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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전국 법원에서 1심이 선고된 최저임금법 위반 사건 43건 중 본지가 임의로 추출한 판결문 10건을 분석한 결과, 한씨처럼 근로자 10인 이하의 소상공인들이 8건을 차지했다. 최저임금은 인상 명분은 저소득층과 취약 계층에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리한 인상의 여파로 실제 삶의 현장에선 '을(乙)과 을의 갈등'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부산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정모(60)씨는 닷새 동안 근무한 직원 때문에 벌금 50만원을 물게 됐다. 작년 3월 초 고용한 직원과 맞지 않아 닷새 만에 해고 통보를 했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그 직원은 "근로기준법에 해고 통보는 한 달 이상 여유를 두고 하도록 돼 있고, 그렇지 못할 경우 한 달치 임금을 주도록 돼 있는데 이에 해당하는 180만원을 주지 않았다"며 노동청에 진정했다. 한씨가 준 닷새치 임금도 최저임금 미달이라고 했다. 법원도 이를 인정해 벌금형을 선고한 것이다.
서울에서 모텔을 운영하는 문모(48)씨는 4516원 때문에 벌금 30만원을 선고받았다. 2017년 11월 24일부터 지난해 1월 7일까지 근무한 직원의 월급을 계산하면서 1월의 7일분 35만5367원을 줘야 하는데 35만851원만 줬다는 것이다. 해가 바뀐 데 따른 최저임금 상승분을 미처 감안하지 않은 탓이었다.
대기 시간이 많은 업무는 특히 법적 다툼이 심했다. 독서실을 운영하는 박모(61)씨는 주중 7시간, 주말에는 하루 혹은 이틀을 2교대로 근무하는 조건으로 월 150만원에 독서실 총무를 채용해 관리를 맡겼다. 총무는 이 금액이 최저임금 미달이라며 박씨를 노동청에 진정했다. 박씨는 "개인 공부도 할 수 있으니 모두 근로시간으로 볼 수 없다"고 했지만 법원은 그에게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혼자 있더라도 대기하며 전화를 받는 등 사실상 박씨의 지휘·감독하에 있다는 이유였다.
요양보호사를 둔 병원장, 직원에게 관리를 맡긴 모텔 업주 등도 비슷한 이유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최저임금법은 근로자가 사업주 처벌을 원하지 않더라도 최저임금 미달 그 자체만으로 처벌하도록 돼 있다. 이 때문에 전과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분양대행업을 하는 조모(57)씨가 그런 경우다. 그는 직원 두 명에 대한 임금 미지급과 최저임금법 위반이 문제가 됐다. 임금 미지급은 합의로 해결해 처벌을 받지 않았지만 최저임금법 위반이 남아 벌금 30만원의 집행유예를 받았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접수된 인원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2015년 440명에서 2017년엔 561명으로 증가했다. 이 중 상당수 사건은 검찰 조사 단계에서 근로자와 합의해 기소유예·혐의 없음 등 불기소처분을 받는다. 판결까지 간 것은 양쪽의 감정 대립이 심한 경우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법원 선고까지 이어지는 사례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갈등을 빚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올해부터는 최저임금 산정 기준 시간에 주휴시간까지 포함하도록 시행령이 개정돼 업주들로선 더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법무법인 지평의 이광선 변호사는 "초봉 5000만원을 주는 대기업도 임금 체계에 따라 최저임금 위반 사례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라며 "영세한 소상공인들은 법대로 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아 재판까지 가는 일이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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