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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이슈 최저임금 인상과 갈등

“최저임금 올라도 해고는 안돼”…‘경비원 감원’ 거부한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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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자대표회의서 결정된 감원

주민들 서명으로 뒤집어 화제

경비원 “건강관리해 오래 보답할것”

헤럴드경제

하남시 하남자이 아파트에서 업무 중인 경비원 박모(69) 씨의 모습. 김유진 기자/kac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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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경비원 일자리 다섯개를 지켜줬죠. 자리가 아니라 사람 다섯 목숨을 살렸어요”, “몸 관리 잘해서 고마운 주민들에게 오래오래 보답할 겁니다”.

2019년 인상된 최저임금 여파로 경비원 감원에 나서는 아파트가 늘어나는 가운데, 하남시에는 입주민들이 나서 경비원 일자리를 지켜낸 착한 아파트가 있어 화제다. 한때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감원을 결정해 용역업체 입찰까지 났지만, 이 상황을 평범한 입주민들의 손으로 뒤집은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

경기도 하남시 하남자이아파트가 경비인력 감원결정을 내린 것은 지난해 10월이었다. 주민대표로 구성된 입주자대표회의는 CCTV를 늘리고 무인 택배함을 설치하면서 인건비가 오른 경비인력 5명을 감축하자고 결정했다. 이후 새로운 용역업체 입찰공고까지 냈지만 뒤늦게 소식을 접한 일반 주민들이 저지하고 나서며 상황을 반전시켰다.

가장 먼저 총대를 멘 건 입주민 박모(34) 씨와 주변 이웃들이었다. 경비원들의 딱한 사연을 듣고 박 씨와 뜻을 모은 주민들이 ‘아파트 주민 20인이 모이면 입주민대표회의 안건을 낼 수 있다’는 관리규약 조항을 찾아내면 해당 사안을 전체 투표에 부칠 기회가 생겼다.

박 씨는 “지금도 경비원 분들 일이 많은데 인원이 줄면 일이 더 힘들지 않을까 싶어 엄마들끼리 걱정이 많았다”며 “대표회의에서 결정돼 번복할 수 없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관리사무소에서 규약을 뒤져보며 방법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입주자대표회의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근거가 확인되자 박씨와 주민들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뜻을 함께한 주민들이 엘리베이터와 아파트 입구에 벽보를 붙이며 돕고 나섰고 투표 개시 조건인 ‘주민 20명의 서명’은 금세 모였다. 이들은 방문투표가 이뤄진 3일 동안 공정한 집계가 이뤄질 수 있도록 돌아가며 참관인으로 나서며 기꺼이 집집마다 문을 두드렸다.

막상 경비아저씨 걱정에 총대를 멘 주민들도 남의 집 현관문 앞에 서자 걱정이 앞선 게 사실이었다. “세상이 어렵고 인심은 사나운데 나이든 분들이 반대표를 던지면 어쩌나”하며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우여곡절 끝에 열린 전체 주민투표결과 현재 경비원 수를 그대로 유지하자는 의견이 62.28%로 집계됐고, 인원감축을 원하는 의견은 16.22%에 그쳤다. 박 씨는 “연세 지긋한 주민분들도 ‘같이 먹고 살아야하지 않겠냐’며 한달 몇천원에 경비아저씨들을 그렇게 내보낼 순 없다고 힘을 보태셨다”고 설명했다.

이번 일은 경비원들이 주민들의 따뜻한 인정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고마운 주민들에게 오래도록 보답하고 싶다는 게 이곳 경비원들의 심정이다.

경비조장 박래곤(69) 씨는 “주민들이 경비원 감원에 관심이 없을 줄 알았는데, 먼저 와서 인원감축반대표 던질거니까 걱정마시라고 응원하고 격려해주는 분들까지 게셔서 마음이 따뜻해졌다”고 말했다.

또다른 경비원 박모(69) 씨는 “인원감축 결정으로 우리 중 나이 많은 사람들은 ‘지금 짤리면 이 나이에 어딜 가냐’며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며 “고마운 주민들 곁에서 나이가 들어도 계속 일하고 싶어서 술도 안 먹고 체력과 몸관리하고 있다”며 웃었다.

김유진 기자/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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