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매일경제 언론사 이미지

집에선 먹방찍고 학교선 편집하고…초딩 놀이터 된 유튜브

매일경제 이진한
원문보기

집에선 먹방찍고 학교선 편집하고…초딩 놀이터 된 유튜브

서울맑음 / -3.9 °

밤 12시가 넘은 시간. 초등학교 6학년 최린 군은 방에서 나와 부모님 몰래 라면을 끓이기 시작한다. 난생처음 라면을 끓여본다는 최군은 10여 분의 '사투' 끝에 한 그릇 음식을 만들어냈고, 이 과정을 영상에 담아 유튜브에 올렸다. 영상 조회 수는 지난 24일 기준 815만8076회. 최군이 공유한 모습은 사소한 일상 중 하나였지만 시청자는 3만개가 넘는 댓글을 올리며 그와 소통했다.

최근 교육부가 실시한 초등학교 희망 직업 5위에 '유튜버(인터넷방송 진행자)'가 꼽히며 처음으로 10위 내에 오르는 등 학생들 사이에 '1인 크리에이팅' 열풍이 불고 있다. 초등학생 일상의 풍속도 또한 바뀌고 있다. 초등생 유튜버가 대거 등장하면서 그중 일부는 10억원 넘는 수익을 올리기도 한다. 문자메시지 대신 유튜브 영상으로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가 하면 학교에서는 유튜브를 활용한 교육이 정규과정에도 도입되기 시작했다.

'키즈 크리에이팅' 열풍은 아이들에게 친숙한 장난감에서부터 시작했다. 별다른 설명 없이도 갖고 노는 방법만 찍어 보여주면 된다는 점에서 전 세계 모든 아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 영향으로 현재 한국 유튜버 순위를 조회할 수 있는 사이트 대부분에서는 엔터테인먼트사를 제외한 1위 채널로 장난감 리뷰 채널이 꼽히고 있다. 실제로 한국 유튜버 광고 수익 1위에도 월 160만달러(약 18억원·출처 소셜블레이드)를 받는 것으로 추정되는 장난감 리뷰 채널 '보람튜브 토이리뷰'가 올랐다.

키즈 크리에이터들의 약진은 유튜브를 통해 담아낼 수 있는 콘텐츠의 다양성으로 이어졌다. 다른 유튜버들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춤과 노래는 물론 음식을 먹을 때 나는 소리를 자율감각쾌락반응(ASMR) 형식으로 공유하는 신개념 '먹방' 채널까지 등장했다.

또 아이들 일상에서 놀이에 필요한 도구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경기 판교에서 초등학교 1학년생 자녀를 키우고 있는 A씨(39)는 "요즘 아이들은 놀이터에서조차 친한 친구들과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어 곧장 유튜브에 올릴 때가 많다"며 "거기에 그치지 않고 바로 친구들이랑 댓글을 다는 모습을 보니 (초등학생 사이에서) 유튜브는 하나의 소통 수단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아이들 생활에 유튜브가 깊숙이 들어오자 학교 현장에서는 이를 활용한 색다른 교육 방법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기존에도 UCC 영상을 제작하는 등 유사한 방식의 수업은 있었지만 유튜브 기능을 활용해 보다 창의적인 수업을 진행하겠다는 의도다. 또 휴대전화만으로도 간편하게 영상을 찍고 편집할 수 있게 되면서 주로 교실 밖 활동으로 진행되던 커리큘럼이 정규수업 과정으로 편성되기도 했다.


경기 평택에 있는 현덕초등학교 광덕분교에서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수업을 1년 넘게 진행하고 있다. 정지하고 있는 물체를 조금씩 이동시키면서 촬영해 영상으로 틀었을 때 마치 계속 움직이고 있던 것처럼 보여주는 영화 기법을 활용했다. 이 과목을 맡은 김영환 교사는 "이야기 구성부터 제작, 촬영까지 모든 작업을 학생들이 맡기 때문에 국어와 미술 과목에서 약 15시간을 빼 한 학기 정규 과목으로 운영하고 있다"며 "결과물을 유튜브에 올리면 다양한 피드백이 와 창의력 향상 측면에서 교육 효과가 높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유튜브의 일상화가 아이들에게 스마트폰 중독 같은 부작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경기 여주에 사는 학부모 B씨(35)는 "아이들 대부분은 스마트폰이 있으면 동영상을 보거나 게임하기 바쁘다"며 "내년이면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데 차라리 폴더폰을 사주고 싶다"고 토로했다.

유튜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광고 수익 규모가 드러나면서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이미 다양한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구독자를 끌어모으기 위한 '과열 경쟁'에 선정성 논란이 빚어지는가 하면 부모가 감당해야 할 경제적 부담도 커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동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장난감 신제품 '언박싱(개봉·사용기)' 콘텐츠는 방송을 진행하기 위해 신제품을 계속 사야 한다. 또 다수 맘카페에는 "유튜버가 되겠다고 100만원이 넘는 영상 장비를 사달라는 아이를 어떻게 달랠까요" 같은 글이 올라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초등학생 사이에서 유튜브가 갖는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유튜브와 관련된 '인성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마이린TV' 채널을 운영하는 최린 군 아버지 최영민 씨는 "자신이 만든 콘텐츠에 어떤 뜻이 담겨 있는지, 또 이를 통해 어떻게 즐거움을 주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인성 교육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영환 교사도 "다른 소셜미디어처럼 유튜브 역시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미디어인 만큼 별도의 '교과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다만 아이들이 올바른 생각을 할 수 있게 일선 교사들이 노력하고,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콘텐츠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는 있다"고 덧붙였다.

[이진한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