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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POP초점]"철야는 일상"…'황후의 품격'으로 돌아본 스태프 잔혹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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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사진=SBS '황후의 품격' 포스터


[헤럴드POP=안태현 기자]“멈춰버린 시간 속에 살고 있습니다.”

지난 8월, 기록적인 폭염이 지속되던 때 A씨는 아침 일찍 드라마 촬영장에 나섰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 우선 촬영장비들을 정리한다. 땀을 뻘뻘 흘리며 태양에 달궈진 촬영 장비들을 옮겨야 한다. 촬영이 시작됐다고 일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때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슛이 끝나고 나서는 부리나케 달려가 장비를 점검한다. 그렇게 아침부터 시작된 촬영은 다음 날 새벽에 끝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또 다음 날 아침 A씨는 촬영 준비에 나선다. 매일 15시간 이상 근무가 이어지고, 주말 또한 반납해야 한다. 그야말로 멈춰버린 시간 속이다.

언급된 A씨의 이야기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제보 받은 스태프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재구성한 사례다. 미디어신문고에 올라온 스태프들의 제보 제목들은 앞선 사례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처참하다. 한 스태프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염전 노예가 된 기분입니다”라고 성토하는가하면 “이렇게 촬영하다 죽을 것만 같아요”, “4시간 이상 재워주세요”, “드라마 현장은 사람 살 곳이 못 되는 것 같아요”라고 고통을 호소한다. 모두가 다른 드라마 현장이고, 한 시기에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지난 2018년 한 해 내내 지속되어온 성토였다.

그간 스태프들의 장시간 노동에 대한 문제들은 끊임없이 지속됐다. 특히 지난 7월, 정의당 추혜선 의원은 ‘방송프로그램(드라마) 용역계약서’를 입수하여, 드라마 외주제작사와 방송스태프 간의 계약서가 근로기준법 등 노동 관련법의 보호를 받는 근로계약서가 아닌 용역(도급) 또는 개인사업자(프리랜서) 간 계약 형태로 ‘갑’안 제작사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작성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또한 해당 근로계약서는 근무시간이 ‘24시간’으로 명시되어 있으며 근무 기간도 ‘촬영종료일까지’로 명시돼 있다며 이것은 전형적인 불공정 계약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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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스태프 용역계약서 세부계약 항목 내역/ 사진=추혜선 의원실


여기에 용역료 산정 기준 없이 총액만을 명시하는 턴키(Turn-key) 계약 방식이 관행화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조명팀의 경우 조명 감독은 ‘고용자’가 되고 조명 조수들은 ‘노동자’로 책정된다. 결국 이는 초과노동에도 불구하고 계속해 저임금 구조를 발생시킨다. 전형적인 불공정 계약 관행. 하지만 이후에도 변함은 없었다. 앞서 스태프들의 인권 보장을 위해 표준 근로 계약서 제도가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스태프들의 현실은 열악했다. 최근 드라마들의 전반적인 제작 퀄리티가 높아지면서 스태프들은 더욱 지옥과도 같은 현장으로 끌려 들어갔다.

이에 결국 다시 한 번 분노가 터졌다.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가 드라마 ‘황후의 품격’ 제작사와 SBS를 고발한 것. 18일 희망연대노조는 기자회견을 통해 “SBS 방송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을 위해 지난 10월 25일 공문을 통해 개별 근로 계약을 체결했으나 수용하기는커녕 면담 수용 의사도 밝히지 않은 채 드라마 제작을 진행하고 있다”며 “10월 10일에는 29시간 30분 연속 촬영이 이뤄졌다. 11월 21일부터 30일까지는 휴차 없이 10일 연속 장시간 고강도 촬영을 진행했다”고 폭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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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SNS


이러한 희망연대노조 측의 주장에 SBS 측은 29시간 30분 촬영으로 알려진 촬영 현장에 대해 “여의도에서 오전 6시 20분 출발, 지방에서 익일 오전 5시 58분에 촬영이 종료됐다”며 “여기에는 지방으로 이동하는 시간과 충분한 휴게시간이 있었으며 이에 따라 총 21시간 38분 근로시간이 됐다”고 해명했다. 29시간 30분 근무에서 21시간 38분 근무로. 약 8시간의 시간이 단축됐다고 하더라도 21시간 38분 근무가 정상적인 환경인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경우가 한 번에 제한되는 것이 아닌 부지기수의 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열악한 노동환경에 사고도 허다하게 일어났다. 지난 8월 1일에는 SBS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의 포커스플로어 스태프 B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이 보도됐고, 지난해 12월 23일에는 tvN ‘화유기’의 스태프가 세트장 천장에서 낙상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B씨는 닷새간 64시간의 근무를 한 것으로 확인이 됐고, 이에 전국언론노동조합 측은 “평소에 특별한 지병도 없었던 30세의 건강한 노동자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원인으로 드라마 현장의 악명 높은 장시간 노동 문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을 내놓기도.

이처럼 끊임없이 드라마 촬영 현장의 고질적인 문제점들이 제기됐지만 변화는 없었다. 여전히 스태프들은 근로시간 준수 및 인권이 중심되는 현장으로의 변화를 성토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순간에서도 수많은 드라마들의 스태프들이 추운 한파 속에서 촬영을 지속하고 있다. 계속해 변화되지 않고 머무르고 있는 드라마 제작 현장의 악순환들. “멈춰버린 시간 속에 살고 있습니다”라고 고통을 호소하는 스태프들의 아픔은 여전히 치료받기보다 더욱 곪아가고 있었다.

popnew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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