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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이슈 '미투' 운동과 사회 이슈

“더 이상 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대학가 미투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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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세계-대학가 미투의 이면①] 서울시립대 정모씨 린치 사건 논란 / 총여학생회 등 젠더 갈등 내포

세계일보

“여자 후배랑 술 한잔 하기가 겁나네요.”

11일 만난 서울의 한 대학에 대학중인 박모(23)씨는 “2018년 한해 미투 운동이 불며 대학에서도 여성 후배와 술을 마시거나 자리를 하는 경우가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남자 학생들 사이에서 괜히 여학생들과 함께 자리를 했다 불미스러운일을 만들 필요가 굳이 있느냐”며 “동아리 활동이나 과제에서도 남자들끼리 하는 경우가 더 편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은 지성의 전당이라고 불려왔다. 학생들은 학문을 배움과 동시에 사회에서 제대로 활동하기 위한 인성을 수양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강타한 미투운동 속에서 대한민국의 대학가가 꽁꽁 얼어붙었다.

사회에 뿌리깊게 남아있는 대학가 성희롱과 성폭력이 고개를 들며 이를 고발하는 ‘스쿨미투’가 이어졌지만, 일각에서는 집단 따돌림과 성폭력 가해자로 낙인 찍혀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선의의 남학생들도 존재한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총여학생회와 젠더 갈등을 유발시키고 있는 일부 학교의 페미니즘 강의 등 지성의 전당에서는 여전히 남녀갈등이 타다남은 채 불씨처럼 존재하고 있다. 2018년 우리 대한민국을 강타한 대학가 미투운동의 이면을 살펴봤다.

◆“이제 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그의 이야기

“저에게는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할 창구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모교와 모국, 어느 곳에서도 당신은 한낱 잠재적 범죄자에 불과합니다.”

꿈많던 한 청년은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 이런 내용의 대자보를 올렸다. 자조섞인 말투로 침착하게 스스로를 잠재적 범죄자라고 칭하는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세계일보

서울시립대에 다니는 정모씨가 올린 대자보. 제보


1년 전인 지난해 12월 7일, 서울 시립대의 한 동아리방에서는 학생 10여명이 한 남자 학생 정모씨를 성희롱 가해자로 몰아세운 사건이 발생했다. 그들은 정씨를 성희롱 범죄자로 몰아세우며 사과와 동아리 탈퇴를 강요했다. 정씨가 올린 대자보에는 ‘그러한 기억은 없지만 협박에 못이겨 사과와 탈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적혀있다. 그는 이들을 협박죄로 고소하고 교내에 징계를 신청했지만 불기소 처분에 재정신청까지도 기각됐다. 또 학교는 이들에 대해 어떠한 징계도 하지 않았다.

당시 교환학생을 준비하고 있었던 정씨는 문제가 공론화돼 징계를 받게되면 교환학생도 못가게 될 것이라는 가해자들의 협박에 못이겨 결국 사과를 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졌다. 더욱더 충격을 준 것은 가해자들이 카카오톡에서 정씨를 가르켜 ‘한남충, 재기해, X뱀’ 등으로 정씨를 비난했다는 것이다.

그는 대자보를 통해 “만약 여러분께서 무고하게 미투를 당하셨다면, 그냥 당하시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현재 린치 사건의 가해자들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교내를 활보하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이처럼 우리 사회와 마찬가지로 대학가에서는 잠재적 성범죄자로 남성을 대하는 인식이 팽배하다.

◆사회와 마찬가지로 남성에 가혹한 대학가 미투

우리 대학가는 올해 미투운동과 함께 큰 소용돌이를 맞이했다. 많은 학생들이 성범죄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고 수많은 범죄가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 가운데는 정씨의 사례처럼 안타까운 사례도 존재한다. 명백한 수사기관의 수사가 아니라 수사 중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사례도 있었다.

한국외대 글로벌캠퍼스의 한 교수는 미투로 수사를 받던 중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물론 성범죄자 남성들에게 그에 걸맞는 사법부의 철퇴가 가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는 남성들 중에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가 많고, 최근에는 SNS 발달 등으로 정상적인 재판을 받기도 전에 범죄자로 낙인 찍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남성들도 생겨나고 있다.

앞서 박진성 시인은 2016년 10월 습작생 등에게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SNS를 통해 제기된 이후 강간·강제추행 혐의로 고소당했지만, 지난해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은 바 있다. 최근에는 그에게 성폭력을 제기한 여성들이 ‘거짓 미투’를 했다고 주장하는 트위터 글이 게재돼 이목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박 시인이 입은 고통과 피해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았다. 억울하게 ‘마녀사냥’을 당한 박 시인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30대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활동을 중단한 가수 김흥국씨도 검찰로부터 무혐의를 받았다. 이제 오명은 벗었지만, 과거 ‘흥궈신’으로 예능 전성기를 누렸던 김흥국씨의 잃어버린 시간과 명예는 그 누구도 보상하지 못했다.

최근 큰 이슈를 만든 이수역 사건의 남성들도 이미 피의자로 낙인찍혀 고통을 받고 있다. 자신이 남자친구와 술자리에 있는데 해당 여성이 자신을 모욕하고 조롱하는 말을 했고 이 일이 계기가 돼 옆테이블 남성들과 해당 여성의 싸움이 시작됐다는 주장이 나오는 등 새로운 상황이 전개됐지만, 이미 남성들은 범죄자에 여성혐오자로 인격모독 낙인찍힌 후였다.

◆총여학생회, 팀과제서 여학생 참여 등 내포된 젠더갈등

대학가에서의 이러한 젠더 갈등은 단순히 사회의 미투 운동 때문은 아니다. 그 동안 대학가에서는 남녀갈등이 계속 되어왔다.

특히 총 여학생회 문제는 대표적인 대학가 젠더 갈등으로 손꼽힌다. 총여학생회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각 대학에 생겨났다. 총여학생회는 민주화에 큰 기여를 했을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여성의 인권신장 발전에도 한 몫 단단히 해냈다. 특히 학교 내 성추행·성폭행이 증가하면서 총여학생회는 학내 ‘스쿨미투’ 운동에 중심에 섰지만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을 추월하면서, 총학생회에서 총여학생회 기능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미투운동으로 뜨거웠던 2018년 대한민국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캠퍼스에서 총여학생회는 사라지고 있다. 여기에는 총여학생회가 진행해온 사업들이 전체 학생들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부족했다는 비판도 있다.

또 각 수업에서 이뤄지는 팀별 과제에서 여학생들의 참여가 저조하다는 글은 오래전부터 온라인상에 올라왔다.

이러한 젠더 갈등 속에서 대학가는 미투운동이라는 큰 역사적 바람을 맞았고, 이 속에서 일부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성범죄로 인해 입건된 피의자들 중 상당부분은 무혐의 등으로 불기소처분을 받고 있고,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대학가를 넘어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계일보

강간 및 강제추행 피의자 처분 현황을 살펴보면 강간혐의 피의자는 2014년 4858명에서 2016년 5527명으로 증가했고, 강제추행 피의자는 1만1174명에서 2016년 1만3472명으로 증가했다. 물론 성범죄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피의자 대부분 남성이다. 하지만 2016년 강간 혐의로 입건된 5527명 중 절반에 가까운 2599명(47.02%)이 무혐의 등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강제추행의 경우 입건된 피의자 1만3472명 가운데 역시 절반에 육박하는 6715명(49.84%)이 증거 불충분 등을 이유로 기소되지 않았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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