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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2 (토)

한 달에 10유로면 축구든 농구든 마음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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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체육, 공공스포츠클럽이 답 ①

독일 ‘1인 1스포츠’ 정책 무한투자

‘골든플랜’ 세워 지역마다 체육관

성별·소득·국적 안 가리고 지원

중앙일보

재독 교포 대학생 이다혜(서 있는 사람)씨는 공공스포츠클럽에서 축구를 배워 프로선수 겸 지도자로 성장했다. 지역 공공스포츠클럽 여자 15세 이하 팀을 맡아 가르치고 있는 이씨. [사진 이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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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체육과 생활체육을 통합한 이후 대한민국 스포츠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소수정예’와 ‘성적 지상주의’는 점차 자취를 감추고, 대신 ‘누구나 손쉽게, 그리고 즐겁게 참여하는 스포츠’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게 스포츠 선진국에서 대세로 자리 잡은 공공 스포츠클럽이다.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의 체육 시설을 활용해 누구나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모델이다. 국내에서도 점차 늘어나는 공공 스포츠클럽을 통해 대한민국 체육의 미래를 모색해본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거주하는 재독 교포 대학생 이다혜(26)씨는 축구선수다. 괴테대 여자축구팀(7인제) 주전 골키퍼다. 올여름 포르투갈에서 열린 유럽 여자대학축구선수권대회에 출전, 3위에 입상하면서 이씨도 주목받았다. 그 덕분에 시즌을 앞둔 독일 여자축구 명문 FFC 프랑크푸르트 1군에 이름을 올렸다. 이씨는 “언젠가 태극마크를 달고 한국 여자축구대표팀 수문장으로 나서는 게 꿈”이라며 수줍게 웃었다.

이다혜씨는 11살 때 ‘마카비 프랑크푸르트’라는 지역 공공스포츠클럽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테니스·농구·축구·볼링·하키 등 다양한 종목 중에서도 유독 축구에 눈길이 갔다. 이씨는 “또래 여자아이들과 달리 처음부터 축구에 푹 빠졌다. 클럽에 여자팀이 없어서 14살까지는 남자팀에서 뛰었다”며 “학교 수업이 끝난 뒤 일주일에 서너 번, 클럽에 가서 훈련했다. 코치는 모두 자격증을 가진 전문지도자다. 수강료는 종목에 따라 다른데, 비싼 것도 한 달에 10유로(1만3000원)를 넘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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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스포츠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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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전 세계적으로 공공스포츠클럽 운영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정부가 1961년 ‘골든 플랜’이라는 ‘생활체육 활성화 방안’을 내놓고 관련 정책을 진두지휘했다. 1976년까지 15년간 독일 전역에 종목별 경기장 1만5000개와 다목적 체육관 1만6000개, 수영장 5400개, 어린이용 잔디 운동장 3만개를 마련했다.

독일 정부는 해당 체육시설의 운영과 관리를 공공스포츠클럽에 맡긴다. 7인 이상이 모여 신청하면 정부는 사업 계획을 점검한 뒤 ‘비영리’를 조건으로 스포츠클럽 설립 및 운영 허가를 내준다. 클럽이 설립되면 전폭적인 예산을 지원하다. 지원 덕분에 성별·연령·소득과 무관하게 누구나 저렴한 비용으로 클럽과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정부 목표는 모든 국민이 한 가지 이상의 스포츠를 전문적인 수준까지 익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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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태어난 이다혜 씨는 공공스포츠클럽을 통해 프로 축구선수로 성장했다. [사진 이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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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혜씨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국적도 상관없다. 이씨는 독일에서 나고 자랐지만, 부모 뜻에 따라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 이씨는 “스포츠클럽 이용과 관련해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은 적이 없다”고 전했다.

차범근(65)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과 아들 차두리(37) 전 대표팀 코치가 현역 시절 몸담았던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는 독일 분데스리가 명문구단인 동시에, 프랑크푸르트 지역의 공공스포츠클럽 중 하나다. 축구뿐만 아니라, 복싱·컬링·다트·치어리딩·아이스하키·펜싱·육상 등 26개 종목을 운영한다. 지난달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아민 크라츠 프랑크푸르트 구단 유스 디렉터는 “생활체육이든 엘리트 체육이든 선수를 육성하는 과정은 자발적이고 즐거워야 한다”며 “우리에게 중요한 건 성적이 아니라 성장”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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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 클럽하우스 내부. [사진 올리브크리에이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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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독일에서 유·청소년의 스포츠 클럽 참여가 의무사항인 건 아니다. 그래도 전체 학생의 절반 이상이 방과 후에 자발적으로 인근 공공 스포츠클럽을 찾아 좋아하는 종목을 배우면서 건강하게 땀을 흘린다. 가르치는 이들 또한 마찬가지다. 보수를 받는 전문지도자도 있지만, 자발적으로 교육 과정에 참여하는 자원봉사자도 적지 않다. 이다혜씨도 훈련이 없는 날에는 15세 이하 여자축구팀을 맡아 가르친다.

이씨는 “독일 어린이들에게 스포츠클럽은, 운동을 배우는 곳이라기보다 친구를 만나 함께 뛰어노는 생활 공간에 가깝다”며 “내가 배운 걸 어린 후배들에게 전달하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프랑크푸르트=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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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 클럽하우스 내부. [사진 올리브크리에이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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