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인준 부결 가능성 커 혼란 회피
메이 “EU와 구속력 있는 재협상” 시사
EU “재협상 없다는 입장 바뀌지 않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를 결정할 의회 인준 투표가 예정됐던 11일 표결을 하루 앞두고 전격 연기됐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10일 오후(현지시각)에 하원에 출석해, 유럽연합과의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의회 인준 표결을 연기하겠다고 선언했다. 메이 총리는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협상 파트너들을 만나러 가겠다. 하원이 표명해온 명백한 우려들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우려’ 중 최대 문제는 영국(정식 국호는 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을 구성하는 4개의 홈네이션 중 북아일랜드에 브렉시트를 일부 예외로 인정해주기로 한 합의 내용을 말한다.
북아일랜드는 브렉시트 이후에도 유럽연합과의 긴밀한 경제통합과 유럽연합 회원국 시민의 자유로운 이동을 강력히 요구해왔으며, 브렉시트 합의에서 이를 일부 인정한 안전장치인 ‘백 스톱(backstop)’ 조항을 두었다. 유럽연합 쪽의 의견이 주로 반영된 채 어정쩡하게 봉합된 백스톱은 브렉시트 찬반 양쪽으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메이 총리는 이날 의회 토론에서 “북아일랜드에 대한 백스톱이 없이는 어떠한 추후 협상도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메이 정부가 의회 인준 표결을 하루 앞두고 전격적으로 연기 카드를 꺼내든 것은 현재로선 부결될 가능성이 거의 확실해 보이는데 따른 정치적 혼란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메이 총리는 이날 정부 각료들에게, “(내가) 유럽연합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로 가서 법적 구속력이 있는 (개선된) 합의를 확보하겠다”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그러나 유럽연합의 미나 안드리나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영국이 내년 3월 29일 유럽연합을 떠나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지만, 우리(EU)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며, 기존 합의를 바꾸는 재협상은 없을 것이란 태도를 거듭 확인했다.
영국 의회에서 브렉시트 합의안이 부결되면 메이 정부가 지난해 6월 유럽연합과 협상 개시부터 지난달 합의안 서명까지 17개월에 걸친 협상이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최악의 경우 ‘노딜 브렉시트’를 포함해, 더 나은 브렉시트 조건을 위한 유럽연합과의 추가 협상, 노르웨이 방식으로 일컬어지는 플랜 B, 내각 불신임과 조기 총선, 브렉시트 국민투표 재실시 등 여러가지 시나리오가 점쳐진다. 유럽연합이 추가 협상은 없다고 못박고 있는 가운데, 앞서 메이 총리가 “의회 인준이 부결되면 우리는 전인미답의 바다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상황이 펼쳐지는 셈이다.
브렉시트 의회 인준 표결의 연기설은 지난 주말부터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일간 <더 타임스>의 일요판인 <선데이 타임스>는 9일 정부 각료와 메이 총리의 측근들을 인용해, 메이 총리가 10일에 투표 연기를 발표하고 유럽연합 쪽과 추가 협상을 할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가디언>의 일요판 <업저버>도 8일 내각의 장관들이 메이 총리에게 의회의 브렉시트 합의 부결은 의회 사상 가장 굴욕적인 참패이므로 인준 투표를 연기할 것을 설득하고 있지만 묵살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스티븐 바클레이 브렉시트 담당장관은 9일 <비비시> 방송에 “인준 투표는 예정대로 화요일에 진행된다. 총리는 우리를 위해 싸우고 있으며, 총리직도 유지할 것”이라며 의회 표결 연기 가능성을 일축했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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