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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해봄] ‘햇수로 10년’.. 직접 확인해 본 경차주차구역의 현주소

파이낸셜뉴스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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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해봄] ‘햇수로 10년’.. 직접 확인해 본 경차주차구역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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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해봄’은 잘못된 시민 의식과 제도, 독특한 제품·장소, 요즘 뜨거운 이슈 등 시민들의 다양한 궁금증을 해결해보는 코너입니다.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독한 팩첵커’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달려갑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편집자주>

서울시 노원구청 경차주차구역에 승합차와 일반 승용차가 주차돼있다. 사진=해당 영상 갈무리

서울시 노원구청 경차주차구역에 승합차와 일반 승용차가 주차돼있다. 사진=해당 영상 갈무리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을 집중 단속하고 있는 요즘, 다른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바로 ‘경차전용주차구역’입니다. 공공기관은 지난 2009년부터 전체 주차 면적의 10% 정도를 경차 및 환경친화적 자동차 전용 주차 구역으로 설치하고 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효율적인 에너지 이용을 독려하기 위해서인데요. 내년이면 설치된 지 10년이 됩니다.

관공서에 마련된 경차전용주차구역은 잘 운영되고 있을까요? 확인을 위해 서울 소재 5개 구청(금천구청, 강남구청, 노원구청, 송파구청, 중구청)을 찾았습니다.

강남구청 경차주차구역에 주차돼 옆 구역 주차를 방해하고 있는 외제차. 사진=조재형 기자

강남구청 경차주차구역에 주차돼 옆 구역 주차를 방해하고 있는 외제차. 사진=조재형 기자


노원구청은 5개 주차면이 경차전용으로 지정돼있었습니다. 각 구역은 승합차 2대, 일반 승용차 3대가 주차돼있었죠. 강남구청 주차장 한쪽 귀퉁이에 마련된 경차전용구역은 외제차 한 대가 주차돼 있었고, 주차구역보다 큰 차를 억지로 주차해 옆 구역 주차가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명백한 주차방해행위입니다.

송파구청 주차장에 주차된 차량들의 주차 상태. 사진=해당 영상 갈무리

송파구청 주차장에 주차된 차량들의 주차 상태. 사진=해당 영상 갈무리


송파구청 경차전용주차구역은 경차 1대를 제외하고 모두 승합차와 트럭이 차지했고, 금천구청에서도 승합차 1대가 주차된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중구청이 ‘경차 및 하이브리드’ 주차구역이라고 지정한 곳은 승합차 2대와 트럭 1대가 주차돼 있었는데요. 해당 승합차들은 하이브리드 모델이 아니었습니다.

서울 금천구청 지하 주차장에 승합차가 한 대 주차돼있다. 사진=해당 영상 갈무리

서울 금천구청 지하 주차장에 승합차가 한 대 주차돼있다. 사진=해당 영상 갈무리


경차 운전자 A씨는 “경차 주차구역이라고 설치해놨으면서 막상 주차하려고 보면 이미 큰 차들이 주차돼있다”며 “구청에서조차 지켜지지 않는 경차전용구역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고 말했습니다.


방문하는 민원인이 많은 관공서는 전용 주차구역을 운영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주차구역 자체가 부족하니 경차주차구역도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제도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경차주차구역이 유명무실해진 이유로 단속 규정이 없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은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불법 주차한 차량을 규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차 주차면은 현행법 어디에도 불법 주차를 단속할 기준이 없어 위반해도 제재할 방법이 없죠. 신고해봤자 소용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지적이 있을 때마다 관계 당국은 “계도 위주로 홍보할 수밖에 없다”며 시민의식을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성숙한 시민의식은 얌체 주차를 막는 한 가지 방법임이 분명하지만, 전부는 아닐 것 같습니다. 1차적인 관리 책임은 제도를 만든 사람들에게 있을 테니 말이죠.


구청을 방문한 시민 B씨는 “시민의식도 중요하겠지만 만들어 놓고 방치하는 공무원들이 더 문제 아니냐”라고 비판했습니다.

서울 중구청은 주차장 일부를 경차 및 하이브리드 차량 주차 구역으로 설정했지만 트럭과 비(非)하이브이드 차량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진=조재형 기자

서울 중구청은 주차장 일부를 경차 및 하이브리드 차량 주차 구역으로 설정했지만 트럭과 비(非)하이브이드 차량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진=조재형 기자


■반복되는 주먹구구식 전시행정 아쉬워
시민들은 ‘정부가 혜택을 주면 구매할 것’이라는 1차원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현재 공공기관은 경차와 친환경차량 주차 시 주차비 50%를 감면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이 체감할만한 혜택인지는 물음표가 붙습니다.


30대 직장인 C씨는 “차량 구매는 여러 상황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경차가 필요한 사람은 사겠지만, 주차비 감면 같은 혜택을 준다고 다른 차를 사려던 사람이 경차를 살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습니다. 40대 시민 D씨는 “장애인주차구역은 복지 차원에서 필요하지만, 경차구역은 있으나마나한 상황 아닌가”라며 “솔직히 (당국이) 대단한 혜택을 주는 것도 아니다”고 전했습니다.

지난 2009년 처음 지정된 경차전용주차구역은 '전형적인 전시행정'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사진=조재형 기자

지난 2009년 처음 지정된 경차전용주차구역은 '전형적인 전시행정'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사진=조재형 기자


대학생 E씨는 “경차주차구역 도입으로 그동안 얼마나 친환경적인 효과가 발생했는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자료는 없습니다. 그는 “공무원들이 비판받는 이유는 이런 전시행정이 반복되기 때문인 것 같다”며 “실효성이 없다면 빠르게 대안을 찾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만들어진 주차구역을 잘 지키는 시민의식은 분명 중요합니다. 그러나 “전용주차구역을 만들어 놓고 방치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인데요. 경차전용주차구역이 만들어진지 햇수로 이미 10년째입니다. 이제는 다른 방법을 찾을 때가 아닐까요?

ocmcho@fnnews.com 조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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