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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야 왜 안 만나줘" 스토킹범죄 급증…처벌은 만년 제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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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친 자살의심" 경찰 출동하니…"연락 안닿는 여친 궁금해서" 거짓 신고

'스토킹처벌법' 제정 20년째 표류…전문가들 "'스토킹은 범죄' 인식해야"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여자친구가 연락이 안 돼요. 자살한 것 아닌지 의심스러우니까 빨리 와주세요."

5일 경찰에 따르면 이달 2일 새벽 1시 25분께 경찰에 다급한 목소리로 112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A(32)씨가 서울 강동구의 한 빌라 앞에서 "여자친구가 여기 사는데, 연락을 안 받아 자살한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강동경찰서 소속 경관들은 곧장 현장에 출동해 상황을 확인했다. 자살 의심 신고는 소방도 출동하게 돼 있어 강동소방서도 함께 현장으로 나갔다.

그런데 경찰이 A씨로부터 그의 여자친구 B씨 번호를 받아 통화를 해 보니 상황은 전혀 딴판이었다.

B씨는 "나는 지금 그 집에 없고 자살 시도한 적도 없다. 그 남자와는 이틀 전에 헤어졌다. 그 남자가 왜 그런 신고를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경찰이 A씨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여자친구가 하도 연락을 안 받아서,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었다"면서 "경찰에 자살한 것 같다고 신고를 하면 경찰이 문을 열어주거나 여자친구 위치를 확인해줄 줄 알았다"며 말끝을 흐렸다.

A씨 답변에 할 말을 잃은 경관들은 A씨에게 주의를 준 뒤 돌려보냈다. A씨 행동이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당장 처벌을 할 만한 법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경범죄처벌법(지속적 괴롭힘)은 '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여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하여 면회 또는 교제를 요구하거나 지켜보기, 따라다니기, 잠복하여 기다리기 등의 행위를 반복하여 하는 사람'을 1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일시적인 구류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행위가 스토킹에 가깝다고 보긴 했지만, 현행법상 같은 행위가 '지속해서 반복'돼야 입건해 처분할 수 있다. A씨가 이런 신고를 한 것은 처음이어서 귀가 조처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스토킹·데이트폭력 등 '젠더 폭력' 전문가들은 A씨 같은 행위가 차후 심각한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징후로 볼 수 있다며 경찰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팀장은 "경찰이 '성인지 감수성'이 더 있었다면 계속 전화하거나 찾아오는 등의 '지속적 괴롭힘'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현행법상 경찰이 그럴 필요가 없으니 추가 조처가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스토커 범죄를 처벌하거나 예방할 뿐 아니라 추후 스토커가 될 잠재적 위험이 보이는 사람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라도 스토킹 관련 법안이 빨리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스토킹방지법이 있었으면 이번 상황에서 경찰이 스토킹 범죄 구성요건이 충족되는지 봐야 하므로 주변 폐쇄회로(CC)TV 등을 확인했을 것"이라며 "관련 법이 없기 때문에 이번처럼 공권력을 스토킹에 이용하려는 상황까지 벌어진다"고 우려했다.

스토킹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것은 1999년으로 올해가 20년째다.

당시 제15대 국회에서도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되는 스토킹은 피해자의 정신적·신체적 피해가 지대함에도 사회적 인식 부족과 현행법규정 미비로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2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스토킹에 대한 처벌은 '10만원 이하 벌금' 그대로다.

제20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6개나 계류 중이다. 법무부도 올해 5월 스토킹 범죄를 '3년 이하 징역 혹은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의 '스토킹처벌법'을 입법예고했지만, 6개월째 절차를 밟느라 관련 법 제정은 해를 넘길 전망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스토킹 범죄는 2014년 297건에서 지난해 436건으로 3년 만에 1.5배가량 증가했다. 스토킹 과정에서 일어난 폭행이나 강간은 제외된 건수이다. 전문가들은 피해자가 신고하지 않은 경우도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수정 교수는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어디 있냐'는 말을 하던 기성세대는 스토킹을 범죄로 보지 않는다. 과거 남자들은 집 앞에 서 있거나 꽃이나 선물 계속 보내는 걸 구애 행위로 생각하지 않았느냐"면서 "스토킹 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더 확산해야 '등촌동 살인사건' 같은 일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hy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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