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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가정폭력 스토킹 살해’ 딸 잃은 엄마 “이 나라서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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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남편 폭력으로 이혼 절차…자녀 만나러 갔다 성폭행

경찰 신고 당일 목숨 잃은 20대 여성 어머니 인터뷰

강서구 주차장 살인사건에 “1년간 바뀐게 하나 없어

다시는 내 딸 같은 피해자 나오면 안 된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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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6일이면 최은미(가명·당시 22)씨가 숨진 지 꼭 1년이 된다. 최씨는 2017년 11월26일 서울 강남구 한 빌라 앞에서 남편 조아무개(25)씨가 휘두른 흉기에 수십 차례 찔려 숨졌다. 협의이혼 숙려기간에 자신을 성폭행범으로 경찰에 신고했다는 이유로 신고 당일 아내를 찾아가 살해한 것이다. 당시 경찰은 최씨의 성폭행 신고를 받고 이를 곧바로 조씨에게 알린 뒤 “성폭행이 아니라는 증거가 있으면 빨리 사진으로 찍어 남기라”고 조언을 하기도 했다.

조씨는 가정폭력범이자 스토커였다. 최씨를 발가벗긴 채 여섯 시간 동안 집 안 곳곳으로 끌고 다니며 때릴 정도로 조씨의 폭력은 심각했다. 더는 견디지 못한 최씨가 10월 중순 집을 나가 따로 은신처를 마련하자 스토킹이 시작됐다. 조씨는 포털 사이트에서 최씨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로그인해 이메일에 있던 택배 주문 내역에서 주소를 찾아냈다. 최씨가 숨진 바로 그곳이다.

‘강서구 주차장 살인사건’과 놀랍도록 닮은 최씨의 사연은 4월13일 <한겨레> 기사 <‘스토킹 남편’ 성폭행 신고한 날, 아내가 살해당했다>가 나가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조씨가 그랬던 것처럼 ‘강서구 주차장 살인사건’의 피의자 김아무개(49)씨 역시 아내 이아무개(47)씨와 세 자매를 상대로 수십년 동안 가정폭력을 일삼았다. “좋은 구경 시켜주겠다”며 딸들을 불러모아 자신의 폭행으로 퉁퉁 부은 아내 이씨의 얼굴을 보여줄 정도였다. 2015년 2월의 일이다. 4년 전 이혼하고 피신한 아내 이씨를 흥신소를 동원해 기어코 찾아내거나, 이씨 차량에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달아 두 달 동안 추적한 뒤 은신처를 찾아낸 점도 조씨와 닮았다. 김씨는 지난달 22일 이씨가 숨어 살던 강서구 등촌동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이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강서구 사건에 감정이입을 많이 했어요. 가해자와 내 딸을 죽인 놈이 너무 닮아있었어요.”

4일 <한겨레>와 인터뷰에 나선 최씨의 어머니 역시 이점부터 지적했다. ‘강서구 주차장 살인사건’에 대해 듣자마자 딸의 죽음이 떠올라 “무서웠다”는 최씨 어머니는 “그다음으로 떠오른 건 ‘이 나라에서 더 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일말의 기대가 속절없이 꺾인 탓이다. 지난 4월 <한겨레>와의 첫 번째 인터뷰에서 최씨 부모는 “내 딸과 같은 피해자가 또 나오면 절대 안 된다”며 경찰 가정폭력 대응 강화·가해자 엄벌을 요구한 바 있다. 그런데 ‘내 딸과 같은 피해자’가 또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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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신고했을 때 체포됐더라면…”

“지금도 딸이 처음 경찰에 신고했을 때 그놈이 체포됐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요.”

최씨 어머니는 “가정폭력은 초기 대응이 너무 중요하다. 피해자에게만 맡기지 말고 경찰이 나서서 강제적으로라도 가해자와 분리시켜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씨가 남편 조씨를 경찰에 처음 신고한 건 사망 두 달가량 전인 2017년 9월23일. 조씨가 휘두른 칼에 최씨 목에는 붉은 자국이 생겼다. 그러나 조씨는 체포되지 않았다. “남편에 대한 처벌이나 임시조치를 원하지 않는다”는 최씨의 말이 결정적이었다. 현재 가정폭력은 ‘반의사불벌죄’라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형사처벌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경찰은 단순한 부부폭력으로 보고 형사처벌 대신 접근 등지 등의 처분을 내릴 수 있는 가정보호사건으로 분류해 검찰에 송치했다. 최씨가 숨진 즈음 이 사건은 법원에 이송된 상태였다.

최초 신고 당시 가해자와의 분리 문제는 ‘강서구 주차장 살인사건’에서도 발견된다. 1993년 결혼 직후부터 시작된 피의자 김씨의 폭행은 2015년 2월 참다못한 둘째 딸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비로소 수면 위로 올라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다 이해합니다. 어떤 심정인지 공감해요. 우리 서에서 얘기합시다”라며 김씨를 달래 경찰서로 데려갔다. 그런데 불과 2시간 뒤 김씨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경찰이 내린 긴급임시조치(주거·직장 100m 내 접근금지 및 전화·이메일 접근금지), 법원의 접근금지명령도 김씨의 스토킹을 막지는 못했다. 위반 시 과태료, 벌금만 물리는 탓이다. 김씨는 이 사법 기관의 한계를 이해하고 있었다.

최씨 어머니는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심리 상태를 이해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는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매 맞는 아내 증후군’(학습된 무기력)과 맥을 같이 한다. 다음은 최씨 어머니의 말이다.



“(딸이) 부모 반대를 무릅쓰고 한 결혼이다 보니 자신이 선택한 삶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고 싶었나, 집착을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아직도 정리가 안 된다. 하지만 확실한 건 공포심이 이미 딸을 잡아먹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조씨는 결혼 전에 이미 딸을 때렸다. 또 어린 딸(최씨 사망 당시 10개월)에 대한 책임감도 컸을 것이다. 내 딸이 그랬던 것처럼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신고를 주저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런데도 신고를 결심했다면 그 전에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 “1심 징역 25년 너무 낮아…그마저도 감형받으려 안달”

억울한 죽음을 막지 못했다면 가해자에 대한 응당한 처벌은 이뤄지고 있는 걸까. 최씨 어머니는 “형량이 생각보다 너무 작게 나왔는데 그마저도 감형받으려고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올 6월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황병헌)는 조씨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하고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15년을 명령했다. 당시 검찰은 ‘피해자가 현관문을 나오자마자 찌르기 시작해 반항도 하지 않는 피해자를 재차 찌른 점’ 등을 들어 무기징역을 구형한 바 있다. 조씨는 ‘징역 25년형이 과하다’며 항소했고 15일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조씨가 엄마 잃은 딸을 재판에 이용하는 모습도 최씨 어머니의 분노를 샀다. 조씨는 지난 5월15일 1심 최후진술에서 “유년시절 엄마 없이 외롭게 자라 엄마의 빈자리를 잘 안다. 그래서 아내를 붙잡으려고 했다. 억울한 감정에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며 우발적인 범행임을 강조하는 한편 “딸을 사랑으로 감싸주겠다”며 아버지 역할을 강조했다. “이 못난 죄인도 아버지의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랬던 조씨가 다섯달 뒤인 10월16일 열린 항소심 3차 공판에서 돌연 태도를 바꿔 “나흘 전에 딸을 위해서 친권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모범적인 수형 생활을 하고 있다는 진술을 이어갔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멍에를 평생 지고 가야 하는”(1심 재판부) 딸의 운명보다는 자신의 이익에 따라 몇달 만에 말이 바뀌는 모습을 최씨 어머니는 “가식적”이라고 잘라 말했다. “정말 반성한다면 죗값을 다 치르고 나오라”는 것이다.

보복에 대한 두려움도 크다. 딸을 집요하게 스토킹하던 조씨가 출소 이후 가족들까지 해코지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에 최씨 어머니는 얼마 전 누나를 잃은 고등학생 아들에게 “외국에 나가서 살지 않겠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왜 아들만 보내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최씨 어머니는 몇초간 말을 멈췄다가 이렇게 답했다. “나는 살 만큼 살았다. 모르겠다 나까지는…. 자식을 잃었는데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이 있겠나.”

가정폭력의 직접적 피해자이기도 한 ‘강서구 주차장 살인사건’ 피의자 김씨의 둘째 딸 역시 지난달 29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아빠가 구속된 지금도 문 앞에서 누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며 두려움을 드러낸 바 있다. (▶관련 기사 : ‘강서구 주차장 살인사건’ 딸 인터뷰 “아빠는 우릴 통제했다”) 현재까지 16만여명이 동의한 청와대 청원 글에서는 “아빠를 영원히 사회와 영원히 격리시켜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최씨의 어머니는 홀로 남은 최씨의 딸이자 자신의 외손녀를 오랜 고민 끝에 후견인에게 맡기기로 결정했다. 최씨 어머니는 “우리가 키우면 언젠가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 결정한 일”이라고 어렵게 말을 이어갔다. “외손녀가 부디 모든 걸 다 잊고 새롭게 살아가길 바란다”는 그에게 ‘강서구 주차장 살인사건’ 세 자매는 더 아프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함께 짊어져야 하는 운명을 누구보다 잘 아는 탓이다. “지금은 분노가 앞서겠지만, 나중에는 엄마를 잃은 슬픔이 덮칠 것이다. 세 자매가 그 슬픔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치료와 상담을 지원해달라.” 최씨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당부한 말이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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