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판 장관 "난민 정책 실패로 지지층 신뢰 잃어" 메르켈 비판
메르켈의 옛 숙적 메르츠 전 원내대표, 당 대표 출마선언
'미니 메르켈' 카렌바우어 기민당 사무총장에 메르켈 '의중' 실려
왼쪽부터 카렌바우어-슈판-메르츠 [AFP=연합뉴스] |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독일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후계 구도를 둘러싼 경쟁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반(反)메르켈 진영의 후보들이 잇따라 출사표를 던지며 '포스트 메르켈'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 29일 기독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재출마하지 않고 이번 4번째 총리 임기를 마지막으로 어떤 공직도 맡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정국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대연정의 난맥상에 대한 민심 이반과 잇따른 지방선거 패배로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는 정치적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메르켈 총리의 선언 이후 기민당 내부에서는 '잠룡'들이 당 대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 대표 선거는 오는 12월 8일 함부르크에서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치러진다. 1천1명의 대의원이 투표로 차기 대표를 결정한다.
이미 메르켈 총리의 선언 당일 메르켈 총리와 한배를 타온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56) 기민당 사무총장이 당내에서 출마 의사를 드러냈다.
메르켈 총리를 비판해온 옌스 슈판(38) 보건부 장관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슈판 장관은 31일 일간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에 메르켈 총리를 상대로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난민과 이민 정책의 실패가 기민당이 지지층의 신뢰를 잃어버린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난민 문제가 심각한데도 기민당 내부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슈판 장관은 "이민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라며 "독일에서 이민 현상은 무질서한 데다, 이민자 중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유럽연합(EU)의 국경을 보호하겠다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고, EU 내 이민자의 재분배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슈판 장관은 자신이 대표에 당선될 경우 기민당이 '우클릭'할 것이라는 관측을 부인하면서 "상식과 문화적 가치, 진실성에 기반을 둔 정치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출마선언하는 메르츠 [dpa=연합뉴스] |
메르켈 총리가 집권하기 전 한 때 숙적이었던 프리드리히 메르츠(63) 전 기민당 원내대표도 이날 기자회견을 하고 당 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2000∼2002년 원내대표를 지내며 당시 메르켈 대표와 주도권 경쟁을 벌이다가 밀려났다. 2009년에는 아예 연방 하원을 떠나 법무법인에서 활동했다.
메르츠 전 원내대표는 "이민과 세계화의 시대에 전통적인 가치관과 국가 정체성을 확고히 다져야 한다"면서 "우리는 유권자들이 기성 정당에 좌절해 포퓰리즘 세력을 지원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은 메르켈 총리를 간접 비판한 것이라고 독일 언론은 해석했다. 메르켈 총리가 난민 정책으로 상당수의 지지층을 등 돌리게 하고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반사이익을 얻도록 했다는 것이다.
메르츠 전 원내대표는 그동안 정계에서 떨어져 있었던 것을 장점으로 꼽았다. 현실 정국의 난맥상에 책임이 없다는 의미다.
다만, 메르츠 전 원내대표는 변화된 환경 속에서 메르켈 총리의 국정운영에 원활하게 협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메르츠 전 원내대표는 메르켈 총리와 화해했느냐는 질문에 "화해할 것이 전혀 없다"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새로운 호르스트 제호퍼 내무장관이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물론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기독사회당 대표인 제호퍼 장관은 난민 강경책으로 대연정의 내홍을 유발하는 등 메르켈 총리의 발목을 잡아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메르켈 총리는 당 대표 선거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사실상 의중은 카렌바우어 사무총장에게 향해있다는 분석이다.
카렌바우어 사무총장은 '미니 메르켈'이라고 불리며 메르켈 총리와 정치적 보조를 맞춰왔다.
2011년부터 자를란트 주 총리를 맡아온 카렌바우어 사무총장은 지난해 초 자를란트 주 지방선거에서 사회민주당의 거센 도전을 막아내며 주가를 높였다.
메르켈 총리의 극적인 결단에 여론이 우호적으로 반응하면서 일단 카렌바우어 사무총장이 유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판세는 오리무중이라는 분석이 많다.
카렌바우어 사무총장이 당 대표가 될 경우 메르켈 총리의 레임덕은 다소 제어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러나 슈판 장관이 당선될 경우 메르켈 총리와 마찰음이 날 수 있고, 메르츠 전 원내대표가 당권을 쥐게 될 경우 메르켈 총리는 결국 총리직도 내놓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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