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전원합의체에서 이춘식씨(94) 등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 장내 정돈을 요구하고 있다./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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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피해자들이 한국 법원에 소송을 낸 지 13년, 하급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이 난 지 5년만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30일 이춘식씨(94) 등 4명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본제철(옛 일본제철)을 상대로 각 1억원씩의 손해를 배상하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 판결을 받아들여 확정했다.
대법원은 사건의 쟁점을 4가지로 정리했다. △일본 패소 확정 판결이 우리나라에 효력이 미치는지 △옛 일본제철의 채무가 신일본제철에 승계됐는지 △한일청구권 협정에 따라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했는지 △신일본제철 측의 소멸시효 주장이 권리남용인지 등이다.
대법원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으로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김재형·김선수 대법관은 여기에 “조약 해석의 일반원칙에 비춰 다수의견이 타당하다”는 보충의견을 냈다.
그러나 권순일·조재연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내놨다. 이들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고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만이 포기된 것이 아니라 청구권협정에 따라 원고들의 권리행사가 제한되는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이기택 대법관은 별개의견을 통해 “2012년 대법원에서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아니한다고 판단했으므로 기속력에 의해 이 사건에서도 같은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소영, 이동원, 노정희 대법관은 또 다른 별개의견으로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도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는 포함되지만,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된 것에 불과하므로 원고들은 피고를 상대로 우리나라에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은 한국·일본 법원이 엇갈린 판단을 내렸다는 점에서, 또 이미 대법원을 거친 사건에 대한 최종 판결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원고들은 1941~1943년 신일본제철의 전신인 옛 일본제철의 거짓 꼬임에 넘어가 강제징용에 시달렸다. 이들은 1997년 12월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체불임금 및 손해배상금 명목으로 각 1억원씩을 배상하라고 요구하는 소송을 냈으나 2003년 일본에서의 패소가 확정됐다.
이들은 2005년 같은 내용의 소송을 우리 법원에 냈다. 2008년과 2009년에 진행된 1·2심에서는 원고 패소 판결이 나왔다. 2003년 일본에서의 확정 판결이 국내의 풍속과 사회질서에 어긋난다고 볼 수 없는 만큼 그 효력이 인정된다는 이유였다. 이어 1·2심 법원은 옛 일본제철과 1950년 회사분할로 쪼개졌다가 1970년 재결합 등을 거쳐 설립된 신일본제철을 같은 회사라고 볼 수도 없고, 이들에 대한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권과 관련한 소멸시효도 완성됐다고 봤다.
하지만 2012년 대법원은 "일본재판소 판결은 일본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라는 인식을 전제로 해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 충돌한다"며 "일본 판결을 그대로 승인하는 결과는 한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것이 분명하다"며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 또 옛 일본제철과 신일본제철은 동일한 회사로 볼 수 있고, 1965년 박정희정부가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포기한 것은 국가의 외교적 보호권일 뿐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적인 손해배상 청구권은 아니라고 봤다.
이후 하급심도 대법원 판단을 따랐다. 2013년 파기환송심은 신일본제철에 1억원씩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놨다. 하지만 이 사건은 5년이 넘도록 대법원에서 최종 판단이 나오지 않았다. 재판이 길어지면서 원고 4명 가운데 피해자들 3명은 별세하고, 이씨 단 한 명만이 남아 이날 선고를 지켜봤다.
송민경 (변호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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