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잠깐 참는 곳’ 돼버려···사립학교법 개정·학생인권법 제정하라”
‘#ME TOO(나도 겪었다), #WITH YOU(당신과 함께), #WE CAN DO ANYTHING(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올해 4월 6일 서울 노원구 용화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은 접착식 메모지(포스트잇)로 창문에 이런 문구를 붙였다. 이는 중·고등학생들이 학교 내 성폭력·여성혐오를 고발하는 ‘스쿨미투’가 전국으로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용화여고에 포스트잇이 붙은 지 지난 22일로 200일이 됐지만, 스쿨미투는 아직도 전국에서 계속되고 있다. 내달 3일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는 중고등학생 수백명이 처음으로 ‘스쿨미투 집회’를 열 예정이다. 집회 제목은 ‘여성을 위한 학교는 없다’로 정해졌다.
집회를 주관하는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청페모)’ 양지혜(21) 운영위원은 양씨는 “이번 집회에 공동주최로 이름을 올렸던 학생 동아리가 있는데 학교 측에서 ‘퇴학시키겠다’고 해서 참가하지 못하게 됐다”면서 “그래도 누군가 손을 뻗어서 학교 밖이 아무것도 없는 절벽이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집회 계기를 설명했다. 교육청 조사 결과 용화여고 교사 중 20명가량의 성폭력 책임이 밝혀졌고, 총 18명이 파면·해임·정직·견책 등 징계를 받았다. 당시 학교 측은 교육청이 특별감사 결과를 토대로 한 징계요구를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다. 징계대상에는 성폭력을 직접 가한 것으로 확인된 교사 외에도 교육청에 신고를 늦게 하는 등 학교 성폭력 대응절차를 지키지 않은 교사들도 포함됐다. 그런 용화여고에서조차 아직도 교사가 “너희가 어떻게 선생님에게 이럴 수 있느냐”고 윽박지르는 등 2차 가해가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용화여고 졸업생으로서 ‘용화여고성폭력뿌리뽑기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는 오예진(23) 씨는 “교대에 인성이나 교원 윤리를 가르치는 과목이 아예 없고, 임용시험 때도 인성이나 윤리의식을 평가하지 않는다”면서 “사관학교나 경찰대처럼 성 관련 사건을 일으키면 퇴학시키는 등 강한 수준의 윤리 규범이 교사에게도 적용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씨는 더 근본적으로는 “(남성에게는) ‘몰라도 되는 권력’이 있다”이라며 스쿨미투 역시 남성중심적 구조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몰라도 되는 권력’은 어떤 문제나 상황을 몰라도 살아가는 데 (여성과 달리) 지장이 없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는 “지금의 학교는 입시경쟁 속에서 서열과 위계만 가르치고, 개인이 주체가 되거나 전체가 평등해지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스쿨미투가 터진 모든 학교에서 이를 감추기에만 급급했던 것도 학생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한국에서 학교는 ‘잠깐 참는 곳’, ‘대학만 가면 다 괜찮아지는 곳’, ‘침묵해야 하는 곳’이 돼버렸다”고 꼬집었다.
오씨와 양씨는 스쿨미투의 80%가 사립학교에서 나온 것에 대해 “사립이 소유 구조상 학교의 운영 과정이 불투명한데, 교육청 통제도 받지 않아 ‘고인 물’이 됐다”면서 “사립학교법을 개정하고 학생인권법을 만들어야 스쿨미투를 해결할 수 있다. 국회가 각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스쿨미투 집회에서도 학생들은 가해 교사 개개인의 잘못 뒤에 가려진 총체적인 구조 문제까지 공론화할 계획이다.
집회 참가자들은 학내 성폭력 전국 실태조사 및 규제·처벌 강화, 스쿨미투 2차 가해 엄중 징계, 학생·교사 등 학내구성원 대상 페미니즘 교육 시행, 성별이분법적 교육 중단, 사립학교법 개정·학생인권법 제정 등을 요구하기로 했다.
용화여고 졸업생들은 올해 3월 ‘용화여고 성폭력 뿌리뽑기위원회’를 꾸린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설문조사를 벌여 교사들의 성폭력을 세상에 알렸다. 당시 337건의 응답이 접수됐으며 이 중 성폭력을 직접 경험했다는 응답만 175건 나왔다.졸업생들의 폭로에 재학생들은 포스트잇으로 ‘#위드유(#Withyou)’, ‘위 캔 두 애니씽(We Can Do Anything·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등의 문구를 만들어 학교 창문에 붙이며 응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성문인턴기자 smlee9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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