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C앞 중고생 수백명 모일 듯…전국 실태조사·페미니즘교육 등 요구
"학교가 '잠깐 참는 곳' 돼버려…사립학교법 개정·학생인권법 제정하라"
'스쿨미투, 교육청은 응답하라' |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ME TOO(나도 겪었다), #WITH YOU(당신과 함께), #WE CAN DO ANYTHING(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올해 4월 6일 서울 노원구 용화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은 접착식 메모지(포스트잇)로 창문에 이런 문구를 붙였다. 이는 중·고등학생들이 학교 내 성폭력·여성혐오를 고발하는 '스쿨미투'가 전국으로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용화여고에 포스트잇이 붙은 지 지난 22일로 200일이 됐지만, 스쿨미투는 아직도 전국에서 계속되고 있다. 내달 3일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는 중고등학생 수백명이 처음으로 '스쿨미투 집회'를 열 예정이다. 11월 3일은 학생독립운동기념일(학생의 날)이다.
집회를 일주일 앞둔 29일 서울 성동구의 한 카페에서 집회 준비에 한창인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청페모)' 양지혜(21) 운영위원을 만났다. 용화여고 졸업생으로서 '용화여고성폭력뿌리뽑기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는 오예진(23) 씨도 함께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촛불집회나 혜화역 여성시위 등 최근의 대규모 집회 양상과 비교했을 때, 스쿨미투 집회는 사태가 터진 지 200여일 만에야 열린다는 점이 눈에 띈다. 양씨와 오씨는 "학생들이 그만큼 높은 장벽 속에 갇혀있는 것"이라면서 이번 집회 제목처럼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
스쿨미투를 촉발한 용화여고에서도 처음 학교 측은 "포스트잇을 당장 떼라"며 강압적인 태도였다. 그러나 학생들은 '나는 당당하다, 자랑스럽다'며 포스트잇을 떼지 않았다고 한다. 교육청 조사 결과 용화여고 교사 중 20명가량의 성폭력 책임이 밝혀졌고, 총 18명이 파면·해임·정직·견책 등 징계를 받았다.
그런 용화여고에서조차 아직도 교사가 "너희가 어떻게 선생님에게 이럴 수 있느냐"고 윽박지르는 등 2차 가해가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오씨는 "학교가 학생들을 치유하거나 학교 분위기를 바꾸려는 대책을 적극적으로 내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교사들이 부적절한 발언을 일삼고 성희롱·성추행까지 벌이는 이유에 대해, 오씨는 현직교사 대상으로는 물론이고 교대·사범대에서조차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스쿨미투, #MeToo, #WithYou' |
교대를 졸업했다는 오씨는 "교대에 인성이나 교원 윤리를 가르치는 과목이 아예 없고, 임용시험 때도 인성이나 윤리의식을 평가하지 않는다"면서 "사관학교나 경찰대처럼 성 관련 사건을 일으키면 퇴학시키는 등 강한 수준의 윤리 규범이 교사에게도 적용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씨는 더 근본적으로는 "(남성에게는) '몰라도 되는 권력'이 있다"이라며 스쿨미투 역시 남성중심적 구조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몰라도 되는 권력'은 어떤 문제나 상황을 몰라도 살아가는 데 (여성과 달리) 지장이 없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는 "교사들이 '이래야 시집 잘 간다', '살을 빼라' 등의 말을 덕담이라고들 많이 하는데, 타인의 인권이나 존엄성을 고려하지 않아도 죄가 되지 않아서 그런다"면서 "지금의 학교는 입시경쟁 속에서 서열과 위계만 가르치고, 개인이 주체가 되거나 전체가 평등해지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학생은 학교를 자정하는 유일한 존재" |
오씨와 양씨는 스쿨미투의 80%가 사립학교에서 나온 것에 대해 "사립이 소유 구조상 학교의 운영 과정이 불투명한데, 교육청 통제도 받지 않아 '고인 물'이 됐다"면서 "사립학교법을 개정하고 학생인권법을 만들어야 스쿨미투를 해결할 수 있다. 국회가 각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스쿨미투 집회에서도 학생들은 가해 교사 개개인의 잘못 뒤에 가려진 총체적인 구조 문제까지 공론화할 계획이다.
양씨와 오씨는 '스쿨미투 이후'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양씨는 "학교는 과거에 멈춰 있지만, 학생들은 계속 변하면서 시대를 바꾸고 학교를 자정하는 유일한 존재들"이라면서 "스쿨미투를 구심점으로 더 많은 학생이 연대하고 네트워킹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스쿨미투 해결을 위해 교육 당국 등 정부 부처와도 교감하고 있는 오씨는 "용화여고 사례를 끝까지 잘 해결해 선례로 만드는 것이 내게는 우선 제일 중요하다"면서 "다른 학교들과 연대해서 더 큰 요구도 관철하도록 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hy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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