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공 | 한국배구연맹 |
[김천=스포츠서울 정다워기자]명분이 있다 해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규정이다.
대한배구협회 국가대표 선발 규정 제27조 2항에 따르면 국가대표로 선발된 선수가 부상으로 훈련 소집에 응할 수 없을 경우 선수 보호 차원에서 진단 기간의 2배수 기간 동안 국내대회 출전을 불허한다. 4주 진단을 받으면 대표팀에서 제외되고 8주간 경기에 나설 수 없다.
이 규정으로 인해 한국도로공사의 세터 이원정(18)의 V리그 개막전 출전 여부가 논란이 됐다. 이원정은 지난 7월 아시아배구연맹(AVC)컵 예비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팔꿈치 부상을 당해 9월 열리는 대회를 준비하는 훈련과 대회에 합류하지 못했다. 병원에서 8주 진단을 받았으니 규정에 따라 16주간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 다음달 2일까지 국내 대회에 나서지 못한다.
선수 보호 차원이라는 명분이 있긴 하지만 배구계에선 이 규정을 ‘괘씸죄’로 보는 분위기다. 한 배구인은 “프로선수들이 대표팀 차출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어 생긴 조항이라고 생각한다. 자꾸 가지 않으려니 협회에서 억지로라도 차출하기 위한 장치”라고 밝혔다. 일부 선수들이 소속팀 일정과 개인적인 이유로 대표팀에 가지 않으려고 해 생긴 규정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규정집에는 2배수의 기간이 끝나도 해당 국제대회가 종료되지 않았을 경우 대회 종료 후 대표팀이 귀국할 때까지 일체의 국내대회 출전을 불허하고 있다. 오직 선수를 위한 규정이라면 이런 단서를 달 이유는 없다. 선수 보호 차원만으로 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어지는 제28조를 봐도 협회가 차출 거부를 얼마나 엄중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소집에 불응하면 해당 선수의 국내대회 출전을 최장 1년 금지한다. 차기 올림픽 및 아시안게임 선발에서도 제외된다. 더불어 해당 구단 감독은 영구적으로 대표팀 지도자로 선발될 수 없다.
선수나 구단이 협회 차출을 근거 없이 거부하는 것도 잘못이다. 하지만 이러한 강제 규정을 V리그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협회가 구단과 선수의 출전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배구인은 “2배수라는 기간 자체가 이 규정이 노리는 바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8주 진단을 받은 선수가 12주 만에 몸 상태를 완벽하게 만들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다 나아도 규정에 따르면 한 달간 경기에 나설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죄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V리그를 주관하는 기관은 협회가 아닌 한국배구연맹(KOVO)이다. KOVO는 협회 산하기관이 아니다. KOVO는 협회 규정과 상관 없이 한국도로공사에 이원정의 출전이 가능하다고 통보했다. 22일 개막한 V리그 여자부 경기에서 이원정은 교체 코트를 밟았다. 일단 경기에 뛰기는 했지만 한국도로공사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협회의 과도한 규정이 리그 전체와 구단, 선수들을 혼란에 빠뜨린 셈이다. 김종민 한국도로공사 감독은 “협회의 규정을 존중한다. 그러나 그로 인해 헷갈리는 부분은 있다. 선수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날 한국도로공사의 상대였던 IBK기업은행의 이정철 감독도 “손을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8주 진단을 받았는데 16주를 못 뛰는 것은 무리한 규정”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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