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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고령사회로 접어든 대한민국

국민연금 개혁…노인빈곤율과 세대갈등 사이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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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노인의 나라’로 통하는 일본보다도 빠른 속도로 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저출산 현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고령화마저 빛의 속도로 진행되면서 정부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인 노인 빈곤율과 앞으로 더 늘어날 노인 인구를 감안하면 노후소득보장 체계를 강화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위해서는 젊은 세대의 부담 가중을 담보로 연금 개혁을 강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칫 정권 지지율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국민연금 제도 개선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는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정부는 각계 이해당사자의 의견이 담긴 국민연금 제도 개선안을 이달 말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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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보다 빠른 고령화 속도…노인빈곤율도 세계 최고

3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국민연금 수급 대상자는 총 447만9785명이다. 연령대별로 보면 60대 수급자가 238만5290명으로 가장 많지만, 70대 이상 수급자 비중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70대 수급자(157만7462명)와 80대 수급자(24만3212명)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12%, 22% 늘어났다.

국민연금을 받는 고령 인구가 급증하는 건 한국 사회의 가파른 고령화 속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통계청이 지난 8월 발표한 ‘2017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711만500명으로 전체 인구의 14.2%에 이른다. 유엔(UN)은 65세 인구 비중이 14% 이상이면 고령 사회로 분류한다. 한국은 2000년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이후 불과 17년 만에 고령 사회로 접어들었다. 이는 24년이 걸린 일본보다 7년이나 빠른 속도다.

급격한 인구 고령화가 야기할 수 있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사회보장제도 강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인 정책이 기초연금 인상이다. 기초연금은 만 65세 이상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매월 지급되는 공적연금이다. 정부는 기초연금 제도를 처음 도입한 2014년 7월 20만원에서 매년 조금씩 인상해오다가 지난달부터는 최대 25만원씩 지급하기 시작했다. 이번 인상은 기초연금 도입 이후 가장 큰 폭의 인상이었다.

여기에 정부는 소득 하위 20%에 해당하는 고령자에 한해 내년부터 기초연금을 30만원으로 조기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도 최근 "국민연금의 노후소득보장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기초연금의 내실화 방안을 더 검토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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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국민 노후생활 안정에 관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는 갈 길이 멀다는 입장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노인 빈곤율이라는 불명예 때문이다. 통계청의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2016년 기준 65세 이상 한국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처분가능소득 기준 하위 25% 미만 인구 비율)은 43.7%에 이른다.

한국 노인들의 상대적 빈곤율은 유럽연합(EU) 국가 가운데 빈곤율이 가장 높다고 알려진 라트비아(22.9%)보다도 20%포인트 이상 높은 수준이다. 인구가 5000만명 이상인 독일(9.4%), 영국(10%), 이탈리아(7.5%) 등과 비교해도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유독 높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안정적인 노후 소득 보장에 초점을 맞춰 연금시스템 전반을 재구축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 "푸틴처럼 될라"…연금개혁 주저

복지 선진국에 여전히 못미치는 사회보장 수준과 높은 노인 빈곤율 등만 놓고 보면 정부가 국민연금 제도 개혁을 서둘러 추진할 것 같지만 실상은 녹록지 않다. 연금 수급자 반대편에 서있는 보험료 의무 납부자들의 불만 때문이다. 한창 보험료를 내는 젊은 세대도 언젠가 연금 수급자 신분이 되지만, 미래의 혜택보다는 당장의 납입 부담에 초점을 맞추는 이가 많다.

현재 정부는 국민연금 재정안정화 방안의 일환으로 월소득의 9%인 현행 보험료율을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아직 안이 확정된 건 아니지만 보험료 인상은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는 보험료 부담 가중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발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자칫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될 경우 정권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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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최근 러시아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연금수급 개시 시기를 늦추는 내용의 연금개혁안을 발표했다가 지지율이 62%(6월)에서 46%(8월)로 급락한 바 있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 6월 정년과 연금수급 연령을 남성은 60세에서 65세, 여성은 55세에서 63세로 각각 늦추는 내용의 개혁안을 발표했다가 거센 반대 여론에 부딪혔다. 8월 말 푸틴 대통령이 직접 나서 한 발 물러난 수정안을 발표했으나 러시아 국민의 불만은 여전히 들끓고 있다.

한국 정부도 연금 보험료 인상 결정의 후폭풍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류근혁 복지부 연금정책국장은 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출입기자들과 만나 "보험료율이 한 자릿대(9%)에서 두 자릿대로 올라가는 건 체감이 더 쉽게 되는 변화"라며 "아무래도 (정부 입장에선) 국민 반발에 대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적연금에 대한 젊은 세대의 막연한 거부감과 불신이 크다보니 이들을 차분히 설득하는 일도 쉽지 않다. 직장인 백종현(33)씨는 "국민연금 운용책임자(CIO) 자리가 1년 넘게 비어있고 공단 이사장 자리에는 여당 정치인이 앉아있는데 믿음이 안가는 건 당연하다"며 "국가가 지급 보장을 해주지 않아 내가 나중에 받을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은데, 걱정말고 보험료나 더 내라고 하면 어느 누가 고분고분 따르겠나 싶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17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국민연금 대토론회 당시에도 정원석 소상공인연합회 본부장은 "현장에서 보면 요즘 청년들은 국민연금에 가입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최저임금 받고 일하면서 혜택도 잘 모르겠는 세금 떼이면 누가 좋아하겠느냐"고 토로했다.

전준범 기자(bbeo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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