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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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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르포] 몰카 단속 직접 따라가보니..."곳곳에 의심스런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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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카메라 민관 합동 단속 동행 취재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불법 촬영카메라 탐지 점검입니다."

지난 20일 오후 3시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 한 손에 최첨단 전자파 및 적외선 탐지기 든 10여 명이 터미널 내 화장실을 누볐다. 갑자기 화장실에 들이닥친 이들을 보고 몇몇 시민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몰카 점검'이라는 말을 듣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순서가 되자 화장실 칸을 내어주는 등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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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 불법 촬영 카메라 탐지 점검 당시. 화장실 벽면에 기계를 가져다 대자 빨간 불이 들어왔다.(사진=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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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검은 호남선부터 시작됐다. 남녀 화장실로 흩어진 점검팀은 무전기를 닮은 장비를 화장실 칸 곳곳에 가져다댔다. 화장지 걸이 안과 선반 위에 놓인 휴지들을 찬찬히 훑었다.

푸른 빛을 띄던 기기가 갑자기 붉은 빛을 띄었다. 의심스러운 구멍들이 보였다. 몰카가 발견된 것이냐고 묻자, 이주희 서초구청 몰카 보안관은 "전자파가 강해지면 녹색이 빨간색으로 변하는 것"이라며 "화장실 벽에 전자파가 흐르고 있어서 색이 변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보안관은 다시 굳은 표정으로 구석구석 기계를 가져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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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카 설치가 의심되는 구멍을 시민들이 막아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사진=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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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검팀은 화장실 변기 주변을 비롯해 천장, 벽면 가릴 것 없이 꼼꼼하게 살펴봤다. 탐자기는 몰카의 전파를 감지하면 경보음을 낸다고 한다. 몇몇은 붉은 빛을 쏘는 '적외선 탐지기'의 렌즈를 눈에 대고 화장실의 벽면, 액자 등의 틈을 살폈다.

완벽한 점검이 이뤄지고 있는 것인지 묻자, 김수연 서초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경장은 "제대로 점검하기 위해서는 불을 다 꺼놓고 하는 게 좋지만, 여건상 불을 끄긴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김 경장은 "점검을 하다보면, 문 틈을 휴지로 막아놓은 곳이 굉장히 많다"면서도 "터미널 같은 경우는 버스 시간도 있고, 화장실을 기다리는 줄이 길다보니 무턱대로 들어갈 수도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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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불편은 최소화하기 위해 고속버스터미널 화장실 앞에 '점검중'이라는 표시를 했다. (사진=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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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이날 시민들의 화장실 이용률은 상당히 높았다. 점검팀은 시민들에게 일일이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을 점검했지만, 밀려드는 인파로 확인하지 못한 칸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점검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시민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부산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김모(31) 씨는 "화장실을 점검한다는 이야기만 듣고 실제로 본 건 처음"이라며 "화장실에 갈 때마다 '혹시'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오늘 안심했다. 앞으로 더 많은 구역을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남자 화장실은 직접 들어가서 확인할 수 없었다. 대신 남자 화장실을 담당한 점검팀에게 확인 결과를 물으니 '이상 없음'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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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화장실 세면대 위에 있는 구멍까지 꼼꼼하게 살피는 지성숙·배준호 여가부 인권보호점검팀 경위, 문진호 서초경찰서 경장.(사진=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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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발견된 몰카는 모두 '0개'. 고속버스터미널에는 남녀 화장실을 1개로 봤을 때, 터미널에는 호남선 3개, 경부선 7개, 식당 3개의 화장실이 있다. 이날 점검팀은 한 시간 반에 걸쳐 총 13개의 화장실을 살폈다.

이소연 서초구청 몰카 보안관은 점검 결과에 대해 "설치가 안 된 것보다 좋은 일이 있겠느냐"며 "이렇게 점검을 하는 것을 보고 '설치하면 안 된다'는 마음이 들면 좋겠다. 서초구민이 우리 동네가 안전하다고 인식하면 더더욱 좋겠다"고 했다.

고속터미널 관계자는 "전날 의심되는 구멍은 막아놓은 상태"라고 했다. 경부선 화장실 청소를 담당하고 있는 A씨는 "어제 터미널 관계자들과 함께 화장실을 싹 돌았다"며 "구멍과 틈 사이사이를 실리콘으로 막았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는 불법 촬영 카메라 근절과 피해예방을 위해 지난 3일부터 한 달여간 관할 경찰관서, 건물 관리자 등과 합동으로 민간건물의 불법 촬영 카메라 설치 여부를 집중 점검하고 있다. 이날 여가부 인권보호점검팀, 서초서 여성청소년과 경찰, 구청 '여성 몰카 보안관'이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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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 화장실에서 이은정 서초구청 몰카 보안관과 김수연 서초경찰서 경장이 불법 촬영 카메라 탐지 점검을 하고 있다.(사진=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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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점검을 마친 지성숙 여가부 인권보호점검팀 경위는 "아쉽다"는 소감을 내놨다. 지 경위는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8조에 따라 개방 화장실은 세제 혜택을 받고 있어 협조를 받을 수 있었지만, 정작 불법 촬영 카메라가 설최된 것으로 의심되는 숙박 업소와 같은 민간 건물은 강제성이 없어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지 경위는 "정말 설치가 될 만한 곳까지 점검하고 색출될 수 있도록 공중화장실 법이 개정됐으면 한다"며 "오늘 다녀간다고 내일 설치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몰카'라는 말이 없어질 때까지 정부 차원에서 점검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했다.

[이투데이/김소희 기자(ksh@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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