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9 (금)

이슈 '미투' 운동과 사회 이슈

“이윤택, 추행 명백·책임 전가” 징역 6년 선고…미투 첫 실형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1심 재판부, 연희단거리패 단원 ‘상습 성폭력’ 대부분 유죄

“상대 동의 없으면 연기지도 인정 안돼…범행 후 미투 탓만”

피해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상해죄’ 적용도 의미

경향신문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극단 연희단거리패 단원들에게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가한 혐의로 기소된 연극연출가 이윤택씨(66)에게 법원이 1심에서 징역 6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올해 초 ‘미투 운동’이 시작된 후 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받은 가해자는 이씨가 처음이다. 법원은 중형 선고 이유를 두고 이씨가 한국 연극계 대표 연출자로서의 권력을 남용해 성폭력을 저질렀는데도 미투 운동을 탓하며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했다고 밝혔다.

1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황병헌 부장판사)는 이씨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보고 이같이 선고했다. 이씨는 2010년 4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여성 연극인 9명에게 25차례에 걸쳐 안마를 시키거나 연기지도라면서 성추행을 한 혐의(상습 강제추행·유사강간치상)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이 중 피해자 8명에 대한 18차례의 강제추행과 유사강간치상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이씨 측은 피해자들이 미투 운동에 편승해 고소했다며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이씨의 영향력이 큰 연희단거리패 단원들이거나 연극계에 오래 종사한 사람들이어서 개별적으로 피해를 밝히기 어려웠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미투 운동에 용기를 얻어 피해를 늦게나마 밝힌 것이지 특별히 고소의 진정성을 의심할 만한 사정이 없다”고 했다. 피해자들의 진술이 일관되고 구체적이었다는 점도 고려됐다.

복식호흡을 가르치기 위한 연기지도의 방법이었다는 이씨 측 주장에 대해서는 설사 연기지도라고 하더라도 피해자들의 ‘동의’를 받지 않은 이상 정당화될 수 없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재판부는 “신체접촉이 이뤄진 부위와 정도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는 행위로서 성추행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경우에는 상대방이 이에 동의하지 않은 이상 연기지도 방법으로서의 상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피해자들을 대리한 이명숙 변호사는 “피해자 동의를 받지 않은 행위는 성폭력이라고 인정한 부분에서 의미가 있는 판결”이라며 “피해자가 노(NO)를 했느냐가 아니라 피해자 의사에 반했다면 성폭력으로 봐야 한다는 기준을 세웠다”고 말했다.

강제추행을 할 ‘고의’가 없었다는 이씨 측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강제추행죄의 고의를 인정하는 데 성욕을 만족시키려는 주관적 동기나 목적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며 “이씨가 추행을 인식한 것만으로 고의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우울증 등 성폭력 피해자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해 상해죄(유사강간치상)를 인정한 점도 눈에 띈다.

재판부는 중형 선고의 이유와 관련해 “이 사건은 이씨가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고, 소중한 꿈을 이루기 위해 이씨 권력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들의 처지를 악용한 것”이라며 “그런데도 이씨는 자신의 행위가 완성도 높은 연극을 위한 과욕에서 비롯됐다거나, 피해자들이 거부하지 않아 그들의 고통을 몰랐다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했다. “피해자들이 미투 운동에 편승해 자신을 악인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책임 전가까지 했다”고도 했다. 재판부가 무죄로 판단한 피해자 4명에 대한 7차례의 강제추행은 해당 피해자들이 법정에 나와 증언하지 않는 등 증거가 확보되지 않은 경우였다.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지금도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미투’ 후 명예훼손이나 무고로 피소 당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오늘 판결이 앞으로 일어날 일의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 삼성 27.7% LG 24.9%… 당신의 회사 성별 격차는?
▶ 뉴스 남들보다 깊게 보려면? 점선면을 구독하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