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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한국 축구' 파울루 벤투와 대표팀

벤투 감독은 목석같았다… 화끈한 신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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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파울루 벤투 감독이 황인범과 함께 남태희의 추가골에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가 울리자 양측 벤치는 양속이라도 한 듯 착석했다. 유일하게 서 있던 사람. 파울루 벤투(49·포르투갈)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다.

7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북중미의 강호 코스타리카와의 친선전은 단순한 경기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2022 카타르월드컵까지 책임질 신(新) ‘황금세대’의 가능성을 진단할 수 있는 무대였다. 더불어, 그 때까지 지휘봉을 잡게 될 벤투 감독의 데뷔전이기도 했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벤투 감독 입장에선 범상치 않은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법하다. 아시안게임 2연패의 기대 효과로 3만5000여석 경기장이 만원사례를 이룬 것도 투지를 불 지폈다.

벤투 감독은 4-2-3-1 카드를 꺼냈다. 원톱에는 지동원(아우크스부르크), 2선에는 손흥민과 남태희(알두하일), 이재성(홀슈타인 킬)이 섰다. 더블 볼란치(2명의 수비형 미드필더)에는 기성용(뉴캐슬) 정우영(알사드)이 포진했다. 포백은 홍철(상주)·김영권(광저우 헝다)·장현수(FC도쿄)·이용(전북)이 지켰고, 골문은 김승규(비셀고베)의 차지였다. 아시안게임을 통해 한층 성숙한 플레이를 보여줬던 황희찬(함부르크)은 허벅지 통증으로 아예 엔트리에서 빠졌다.

초반부터 패스워크가 살아난 한국은 점유율에서 우위를 확보하며 코스타리카를 밀어붙였다. 측면을 활용한 공격이 빛을 발했고, 중원에서 기성용 등 미드필더들이 찔러주는 롱 패스 역시 상대 진영을 종종 무너트리며 위협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한국은 전반 6분 이용의 오른쪽 땅볼 크로스에 이어 쇄도하던 지동원이 슈팅을 날렸지만 골키퍼 선방에 막혔다. 27분에는 손흥민이 페널티 지역 왼쪽에서 강력한 오른발 슈팅을 때렸다. 골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상대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계속 두드리니 문이 열렸다. 전반 33분 기성용의 롱패스를 남태희가 잡아 돌파하던 중 감보아에 걸려 넘어졌다. 주심은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키커로 나선 손흥민이 슈팅이 왼쪽 골대를 맞고 나왔고, 이재성이 뛰어들어 왼발로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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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이재성이 선취골에 성공한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후반 들어 한국은 기성용을 빼고 김민재(22·전북)을 투입해 선수 배치에 변화를 줬다. 이어 아시안게임에서 ‘원샷 원킬’을 자랑했던 황의조까지 출격,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후반 33분 왼쪽 측면에서 남태희가 날쌘 돌파로 수비를 뚫었고,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골망을 갈랐다. 이어 이승우까지 내보낸 한국은 끝까지 주도권을 쥐며 경기를 압도해 2-0 승리를 거뒀다. 승리를 확신한 벤투 감독의 제스처는 크지 않았다.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을 뿐이지만, 자신이 그린 그림이 확실하게 들어맞았다는 자신감만큼은 확실히 엿보였다.

한편, 이날의 응원 열기는 1990년에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의 한국 축구 르네상스를 방불케 했다. 경기 1시간 전부터 운동장 앞의 횡단보도는 진입하려는 수 천 명의 팬들로 혼잡을 이뤘다. 이승우(20·베로나), 황의조(26·감바 오사카) 등 아시안게임에서 스타로 떠오른 선수들을 응원하는 플래카드 행렬도 이어졌다. 불과 몇 개월 새 훌쩍 커진 한국축구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고양=안병수 기자 r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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