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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곳이 새롭게 문을 열면 일곱 곳이 넘게 문을 닫는다. 지난해 통계로 본 국내 자영업의 현실이다. 이 수치만 보면 개인사업자가 영업을 이어가기 어려운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열 곳 중 세 곳 가까운 자영업 사업체는 살아남았고 여기에 기존에 있던 사업체 수를 더하면 자영업자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 아닌가. 사실이 그렇다. 이미 과밀화된 ‘레드오션’ 시장에서 규모가 큰 기업들과도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 자영업의 현실이지만, 절대적 수치로는 여전히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영업이 어렵다는 말은 엄살에 불과한 것일까. 문제는 또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반대로 전체 취업자 가운데 자영업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고용돼서 임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가 자영업자보다 더 많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사장’이 되기보다는 ‘직원’이 되기를 택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의미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영업으로 먹고 살기가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얼핏 봐서는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 자영업의 두 단면은 현재 불붙고 있는 현 정부의 ‘자영업 위기 책임론’을 보다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일부 언론에서 87.9%로 보도된 이른바 ‘폐업률’은 자영업의 의미에 맞게 국세청의 ‘개인사업자 신규(개업) 대비 폐업 비율’로 보면 사실 지난해 72.2%로, 알려진 것보다는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전년도 전체 자영업자 대비 해당연도 폐업한 자영업자의 비율을 가리키는 정확한 의미의 ‘폐업률’도 지난해 13.8%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 두 수치 모두 10년 전인 2008년의 각각 78.5%, 17.5%에 비하면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추세다. 현 정부 출범 첫해인 지난해 통계를 이전 해인 2016년과 비교해도 낮아졌다는 점은 같다.
자영업자 비중이 줄어드는 추세 역시 마찬가지다. 전체 취업자 대비 자영업자 비율은 2008년 25.3%에서 지난해 21.3%로 줄곧 줄어들기만 해왔다. 이번 정부의 성적을 들여다볼 수 있는 해가 출범 첫해인 지난해 한 해뿐이기는 해도 현 정부가 두드러지게 자영업을 위축시켰다는 책임을 묻기에는 무리한 점이 많다.
현 정부의 자영업 위기 책임론 실상은
사실 한국의 자영업 규모가 그동안 과도하게 늘어나 있었고 지금까지의 추세처럼 앞으로도 계속해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에는 관련 전문가들 대부분이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 지금 나타나는 자영업의 위기는 정권과 정책의 차이를 넘어 이미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현상인 것이다. 한 국가경제 안에서 자영업의 비중은 대체로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추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5% 수준으로 낮아질 때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는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 직후 실직자들이 일자리가 없어 자영업으로 대거 몰렸지만 이후 계속해서 자영업자 비율은 줄어들었다. 자영업이 축소되는 경향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인데 다만 정부 차원에서는 이들을 보호해서 유지시킨다거나 자영업 바깥으로 내모는 게 아니라, 당연히 지원받아야 할 방안만 마련해줄 수 있을 뿐이다.” <자신에게 고용된 사람들: 한국의 자영업자 보고서>의 공저자인 김태일 고려대 교수(행정학)는 자영업의 위기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사실상 위기를 막기 위한 정부의 정책이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이 저임금 노동자를 위해 당연히 정부가 내놓아야 할 정책인 것처럼 다른 한편의 영세자영업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정책도 있어야 하니까 이번에 정부가 지원대책을 내놓은 것 아니냐”며 “냉정하게 현실을 보면 그 이상은 정부 정책의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영업이 축소되는 흐름이 전부터 이어져 왔고, 현 정부 들어 시행된 정책이 자영업 위기에 미친 영향이 예상만큼 크지 않다고 해서 정부의 책임이 모두 덜어지지는 않는다. 사실 이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촉발된 자영업 위기론에 대처하기 위해 몇 차례에 걸쳐 재정을 투입하는 소상공인 중심의 자영업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올해 1월 당정협의에서 카드수수료 부과방식을 개선하고 임대료 부담을 완화하는 한편 저금리 정책자금을 2조4000억원 규모로 확대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소상공인·영세중소기업 보완대책을 제시했다. 또 7월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서도 소상공인 전용 결제시스템을 구축하고 저금리대출 자금을 1조원 추가하는 등 비슷한 기조의 대책이 나왔다.
이러한 기조가 보다 구체적으로 확정된 것이 지난 8월 22일 발표된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대책’이었다. 여기에는 자영업자 가구에 지급되는 근로장려금(EITC)의 대상 범위를 115만가구로 늘려 지원액도 1조3000억원으로 3배 이상 확대하는 내용과 30인 미만 사업장 대상 월 13만원 지급되던 일자리안정자금을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15만원으로 올리는 등의 대책이 담겼다. 이외에도 자영업자에 대한 사회보험료 지원 확대와 공제한도 인상 등 세제지원, 재창업·재취업 지원 등 37개에 달하는 과제가 포함됐다. 당장 늘어나는 지원액수만 금융 차원의 지원액수인 5조원을 더해 총 12조원이 넘는 지원방안이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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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하다”
하지만 종합적인 대책 안에 아직 구체적인 실현 일정이 들어가 있지 않은 부분도 발견된다. 당정의 대책안을 보면 카드수수료 인하대책은 12월에 추진한다는 내용만 있고 구체적인 내용은 나와 있지 않은 상태다. 카드수수료 인하 정책은 이미 영세가맹점을 중심으로 범위를 확대하는 대책이 시행에 들어갔지만 카드업계와의 논의에 시간이 필요한 부분도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대책이 시행시기를 내년부터 잡고 있다는 점과 일자리안정자금 지급률이 여전히 낮은 점, 프랜차이즈 본사에 대해 가맹점포 근접 출점을 제한하도록 해도 자율규약으로 맡긴 점 등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자영업 현장에서도 대책의 방향과는 별개로 정부가 자영업의 위축 속도를 낮출 의지가 있는지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허건 행복한가게연구소장은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통해 현직 및 신규 자영업자들의 의견을 접하고 있는데 최저임금 인상 문제가 그분들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최저임금이 올라가는 것 자체가 아니라 속도가 문제”라며 “최저임금만 올리고 자영업자 생계에 대한 대안이 없다면 정부가 굉장히 무책임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허 소장은 정부 대책이 현장과 겉돈다고 보는 이유를 정부의 자영업 관련 데이터 관리가 부족한 데서 찾았다. “자영업에 대한 빅데이터가 없다. 대표적으로 자영업 매출에 대해서 충분히 조사할 수 있음에도 정부의 관심이 부족한 것이다. 지금 폐업률이 90%에 육박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는 것도 사실 이해가 안 되는 건데, 폐업률에 대한 정의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상황이라서 그렇다.”
최저임금 인상폭을 높게 유지하는 것이 자영업의 생존과 직결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최근의 자영업 위기론을 부추기는 것을 넘어 통계청장 인사 사태로까지 번진 통계청의 2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는 고소득 가구는 더 많이 벌고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소득이 더 낮아지면서 소득불평등이 더욱 심각해졌다는 결과가 발표됐다. 저소득층의 근로소득과 중산층의 사업소득이 줄어든 것이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라는 해석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많이 버는 고소득층의 소득을 줄일 수는 없으니 저소득층의 소득을 올리기 위한 대표적인 방법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의견도 맞서고 있다.
자영업의 위축과 저임금 노동의 문제 모두를 해결할 수 있는 정공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질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다. 금재호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자영업을 하다 폐업을 해도 그나마 여유가 있거나 젊은 층이면 다시 준비해 재창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나이가 많거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자리를 잡기 힘들거나 잡아도 비정규직 말고는 갈 곳이 없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물론 일자리를 당장 늘리는 것은 어느 정권에서나 희망사항이었지만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이기도 하다. 그래도 자영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생계는 이어가야 하는데 막상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현실 때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정부의 고용서비스 정책만으로도 어느 정도 효과는 볼 수 있다는 것이 금 교수의 지적이다. 금 교수는 “현재 폐업한 자영업자의 50% 이상이 다시 임금근로자가 되는 것으로 조사되어 있다”며 “고용서비스 정책이 단순히 취업알선 정도에만 그치지 않고 체계적인 직업훈련과 지원이 뒤따를 수 있게 중소벤처기업부와 고용노동부의 업무범위를 넘어서 체계적인 일자리 매칭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의 자영업이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규모와 참신성 모두에서 밀릴 수밖에 없고 이미 과당경쟁이 벌어지고 있어 향후 전망도 밝지 않은데도 유입이 줄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생계와 일자리 때문이다. 한국은행의 ‘2018년 2분기 중 산업별 대출금’을 보면 대표적인 자영업 분야인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점업에서의 대출이 2분기 동안 6조원 늘어나며 통계 집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이 기간 동안 자영업 신설법인 수는 지난해 같은 분기에 비해 30% 가까이 늘었고 자영업자 수 역시 올해 2월 이후 지속적으로 오르는 추세가 나타나 690만명선에 육박하고 있다. 최저임금으로 자영업이 위기라는 인식과는 다소 상반된 역설적인 결과가 나온 셈이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전국 소상공인 실태조사’와 ‘창업기업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어렵다는데도 자영업에 뛰어드는 심리의 바탕을 확인할 수 있다. 소상공인들이 창업을 결심하게 된 동기를 묻는 문항에 ‘생계유지를 위해 다른 대안이 없어서’라고 답한 비율이 82.6%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자신의 사업이 성공할 가능성에 기대를 걸기 때문이라는 답이 그 뒤를 이었지만 이 응답이 가장 높은 업종인 전문·과학 및 기술서비스업에서도 30.6%에 불과했다. 급박한 생계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빠른 시간 안에 창업할 업종을 찾다 보니 창업 준비기간은 평균 10.5개월에 그쳤고, 창업교육 경험이 없는 경우가 82.4%에 달했다.
밝지만은 않은 자영업의 미래
이렇게 뛰어든 신규 자영업자들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 법인기업의 5년 생존율이 35.6%인 데 비해 개인기업은 26.9%에 불과하다. 고령화와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이 이어지면서 일시적으로 자영업으로 뛰어들었지만 결국 살아남지 못하고 떠나는 이들 자영업자 절반 이상은 다시 노동시장에서 자구책을 찾아야 한다. 때문에 퇴직 후 일자리를 찾지 못했거나 자영업에 뛰어들었다가 다시 탈출하는 이들을 위한 급선무는 일자리 문제 해결이다. 동시에 일자리를 잃거나 폐업을 하게 된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실업이나 폐업 같은 위기에 대비할 사회적 안전망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개인 자영업자에게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건 공정하지 못하다”면서 “나아가 애초에 자영업의 과당경쟁이 생존율을 낮추고 있는 점이 있으므로 을과 을 사이의 경쟁 대신 과도한 출점을 제한하고 가맹점과 본사 간의 수익배분구조 전반을 손보는 대책도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냉정하게 바라본 자영업의 미래는 위축 속도를 줄여 연착륙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점에는 전문가들도 동의하지만 그래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경쟁력을 갖추면 살아남을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공통된 지적이다. “지금 젊은 사람들에게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없어지고 있기 때문에 회사를 다니면서 자영업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그래서 창업 아이템을 폭넓게 고민하고 있으니 대표적으로 독립서점 같은 영역이 뜨고 있고, 52시간 노동이나 고령화와 맞물려 헬스장 같은 건강 관련 업종도 주목받고 있다.” 허건 소장은 신규 자영업 창업을 준비하려면 온라인 시장의 영향은 커지고 오프라인 시장은 축소되는 현실과 인건비 부담을 최소화한 1인 중심의 나홀로 창업의 비중이 높은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수익성 검증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영업의 기본적 특성이 지역과 밀착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과도한 경쟁 대신 지역사회와의 협력과 공존의 패러다임이 정착될 수 있게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적 뒷받침이 마련된다면 영세자영업도 안정적인 활로를 찾을 기반이 갖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병희 연구위원은 “자영업의 미래 생존 가능성을 높일 만한 방안을 찾기가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자영업자들이 개인 차원에서 생존 가능성을 모색하기보다는 조직을 갖추고 지역사회와 협조를 통해 숨통을 틔울 여지는 있다”며 “일부 지자체의 지역화폐 시도 등에서 보듯이 협동조합 등의 형태로 지역과 공존하며 공동의 이익을 창출하는 방향으로 정책 전환이 이뤄지면 자영업이 지역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가능성도 열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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