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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이슈 '미투' 운동과 사회 이슈

[단독]학생들 ‘미투’ 막은 여자중학교 “선생님이 농담으로 한 말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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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유명 사립학교인 ㄱ여자중학교에 다니는 ㄴ양은 지난해 수업 중 교사에게서 “너는 뭘 먹고 살이 그렇게 쪘냐”라는 말을 들었다. 억지로 웃어넘기려는 ㄴ양에게 교사는 “너는 밥보다 과자를 좋아하지”라고 재차 핀잔을 줬다. ㄴ양이 울기 시작했지만 교사는 “일어나서 네 BMI(체질량지수)를 구해봐라”라고 지시했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ㄴ양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해당 교사는 수업시간에 반 학생들을 전부 일으켜세워 “다리가 ‘오다리’인지 아닌지 봐주겠다”며 “이렇게 오다리면 시집을 못 간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졸업생 ㄷ양은 “1학년일 때 등교시간에 교문에 서 있던 교사들이 복장 불량 등을 지적하며 배드민턴 라켓으로 학생들의 가슴과 엉덩이를 쳤다. 체육시간에 운동장을 뛰고 있던 제 엉덩이를 치기도 했다. 별다른 이유 없이 슬쩍 치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들이 어떻게 교사가 됐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ㄷ양은 3학년 때엔 교사가 숙제를 안 한 학생들을 일렬로 줄세워 차례로 발을 짓밟기도 했다고 전했다. 교사는 “숙제를 안 하니 성적이 그 모양”이라며 공개적으로 망신을 줬다. ㄷ양은 “학교의 무심한 일처리로 평생을 고통받으며 사는 학생도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라고 전했다.

참다 못한 학생들은 지난 27일 자신이 겪은 성폭력과 인권침해 내용들을 포스트잇에 적어 교내 2~4층 복도에 붙였다. 등교시간 이후 포스트잇을 붙이는 학생들이 늘어나며 규모는 점점 확산됐다. 학교 측은 즉시 학생회장단의 동의를 얻어 포스트잇을 수거했다.

교장은 교내방송을 통해 “과장되거나 허구인 내용이 있을 수 있으니 복도에 붙여서 퍼뜨리지 마라. 각자 사연이 있으면 반 실장이나 학생회장에게 얘기해라. 학교가 선생님과 학생 모두 위하는 방향으로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했다. ㄹ양은 “학교 내부에서 해결할 테니 퍼뜨리지 말라는 것처럼 들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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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교사는 조례 시간에 학생들에게 “선생님이 농담한 것 아니냐”라며 “선생님들이 안 그래도 힘든데 너희가 이러면 더 힘들어진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ㄹ양은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은 확실히 구별해야 한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공직이니까 더욱 그런 말과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학생인권 대나무숲’에는 이 학교 재학생과 졸업생이 학교에서 벌어진 성폭력과 인권침해에 대해 지난 25일부터 잇달아 10여건의 익명 제보를 올렸다. 제보에 따르면 한 교사는 학생들에게 “교사이기 전에 남자”라며 “다리를 벌리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눈이 돌아가게 된다”라고 했다. 다른 교사가 학생의 가슴, 겨드랑이, 등과 자신의 신체를 접촉하고 속옷 끈이 있는 부위를 만지는 등 수차례 성추행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수학여행 소지품검사에 학생들이 ‘속옷이 나오면 어떡하냐’고 항의하자 교사가 “흥분되겠지”라고 대답했다는 제보도 올라왔다.

학교 관계자는 28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학생들을 만나며 최대한 성심성의껏 조사하는 중인데 이야기가 와전된 경우도 있다. 선생님의 잘못이나 학생의 오해를 공명정대하게 판단하려고 한다. 교장의 교내방송은 학교가 은폐 없이 열린 모습으로 의견을 들어줄 수 있으니 학교 내에서 문제를 풀자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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