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이 23일 고양시 한 호텔에서 취임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고양 | 강영조기자 kanjo@sportsseoul.com |
[고양=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5명의 중년 신사들이 단상에 올라 인사하는 모습은 꽤나 이색적이었다. 코칭스태프 4명을 대동하고 회견장에 나타난 포르투갈 출신 파울루 벤투 새 축구대표팀 감독은 한국 축구의 갈증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한국 축구가 아시아 대표로 4년 마다 월드컵 본선에 나서고 있음에도 세계의 높은 벽에 부딪히고 있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를 깨트리기 위해 전력투구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한축구협회의 임기 보장을 신뢰하면서 지금이 아닌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자신이 구현할 축구를 기다려달라고 했다. 협회는 이날 벤투 감독과 일할 한국인 코치로 캐나다 국적인 마이클 김 수원 스카우트 팀장, 2002년 월드컵 멤버인 최태욱 서울이랜드 유소년팀 코치 등 둘을 임명했다.
◇“조별리그 통과 2번 뿐, 그래서 내가 왔다”
벤투 감독은 입국 나흘 째인 23일 고양시 한 호텔에서 취임 기자회견을 열고 미디어와 팬 앞에서 자신의 ‘4년 구상’을 설명했다. 그의 1차 목표는 당장 5개월 앞으로 다가온 아시안컵에서의 좋은 성적과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통과다. 하지만 그는 거기에 머물지는 않을 생각이다. 그는 “2002년 이후 16년간 10명의 감독이 대표팀을 거쳐갔다. 재임기간이 평균 1년 반에 불과하다”는 질문에 “한국은 지난 32년간 9차례 월드컵 본선에 나갔고 팬들의 기대치가 높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한국은 9차례 중 2번만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이게 (내가)한국을 선택한 이유”라고 했다.
벤투 감독은 “내가 온 뒤 (대표팀)실력이 나아지고 월드컵에 진출해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난 기간 여러 명의 감독이 거쳐갔던 것도 알고 있다. 오늘날 축구는 결과만 따진다. 협회는 우리의 목표가 장기 프로젝트임을 설명했고 대표팀이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감독직을 수락했다”고 했다. 다만 자신이 원하는 축구 스타일에 대해선 “11월까지 6차례 A매치에서 실험을 해 본 뒤 결정하겠다. 볼을 점유하고 경기를 지배하며 찬스를 만드는 경기를 하고 싶다. 우리팀이 주도권을 잡고 위험을 줄이며 야망 아래서 공격적인 경기를 했으면 한다. 전체적으론 90분간 뛰며 강한 면모 보여주는 축구를 하고 싶다”고 답변했다. 콕 찍어 어떤 축구를 하겠다고 말하기보단 좋은 팀이 두루두루 갖춰야 할 요건을 나열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내 부임은 장기 프로젝트…미래 주축 키우겠다”
그는 기자회견 내내 ‘프로젝트’란 단어를 자주 썼다. 단순한 A매치 준비를 떠나 연령별 대표팀 멤버들의 성인팀 호출 등 다각적인 사업을 하겠다는 의미였다. “장기 프로젝트를 맡겨주신 협회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프로젝트’를 언급한 그는 “아시안컵과 월드컵 예선 뿐 아니라 한국엔 미래 주축이 될 재능있는 선수들이 많다. 이 선수들에게도 기회를 부여하겠다”고 했다. 벤투 감독은 포르투갈 3대 명문 중 하나로 꼽히는 스포르팅 리스본 시절 나니와 주앙 무티뉴, 미겔 벨로수 등 10대 선수들을 발굴해 대표팀 주전급까지 키웠다.
벤투 감독은 최근 스페인 라리가 발렌시아 1군에 속해 프레시즌을 소화한 17세 이강인의 발탁 가능성에 대해 “이강인은 하나의 예일 뿐이다. 더 많은 선수들이 연령대 대표팀에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연령대 감독들과 최대한 교류를 통해 유능한 선수 정보를 얻겠다”고 했다. 그렇다고 베테랑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팀 은퇴를 고민하는 기성용과 구자철에 대해선 문을 열어놨다고 했다. 벤투 감독은 기성용을 내달 7일 코스타리카전(고양), 11일 칠레전(수원)에 호출하겠다고 했다. 구자철은 무릎 부상으로 9월 A매치엔 불참하지만 다시 부를 뜻을 나타냈다.
◇“중국에서 실패? 아니다”
사실 벤투 감독을 바라보는 눈초리는 ‘기대 반, 우려 반’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전성기 시절 포르투갈 대표팀을 맡아 2012년 유럽선수권에서 4강까지 갔지만 2년 뒤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했기 때문이다. 이후 2년을 쉰 그는 브라질 크루제이루와 그리스 올림피아코스, 중국 충칭 리판에 연달아 부임했으나 모두 8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도중 하차했다. 특히 지난 달 21일 충칭에서 물러난 것이 국내 팬 입장에서도 그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벤투 감독은 충칭 시절이 실패였다는 것 자체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솔직히 내가 중국에서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국에선 환경이 상당히 달랐고 어려웠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한 번도 하지 않은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었다”며 중국의 독특한 축구 환경 탓을 했다. 그는 “구단에서 주문한 것이 강등되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즌 중 한 번도 강등권에 내려간 적이 없었다(4승2무7패 16개 구단 중 13위)”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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