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SNS에 올라온 A 고등학교 여학생 불법촬영물. [남초 커뮤 청소년 불법촬영 공론화 팀 제공] |
-피해 학생 “일상화 된 몰카 두려워…삭제 못해 절망”
-학교 정문ㆍ버스정류장 등 휴대폰 수시로 들이밀어
-“짧은 교복 때문? 몰카 찍는 사람이 잘못 아닌가요?”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경기도 수원의 A 고등학교 3학년 B 양은 지난해 5월 친구들로부터 SNS 텀블러에 사진이 올라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사이트에 학교 이름을 치니 자신의 얼굴과 몸이 나오는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 아래에는 자신의 이름까지 나와 있었다. 순간 며칠전 버스정류장에서 차 창문으로 휴대폰을 들고 있어 수상했던 남성이 생각나 소름이 끼쳤다. B 양은 “어떤 아저씨가 차 안에서 폰을 내 쪽에 대고 있었는데 설마 하고 지나갔는데 찍은 장소, 각도를 보니 그 사람이 었다”면서 “학교에서 낯선 사람이 보이면 무서워서 움츠러든다”고 털어놨다.
최근 불법촬영물 유출 및 판매 논란이 있었던 경기도 수원 A고등학교 재학생들은 일상이 된 몰카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 혹은 친구의 사진을 몰래 찍은 불법촬영물이 해외 SNS인 텀블러와 국내 커뮤니티에 올라오고 심지어 돈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에 학생들은 “너무 무섭지만 막을 수 있는 방법을 몰라 답답하다”고 괴로워했다.
몰카범을 잡기도 쉽지 않지만 범인을 잡더라도 이미 퍼진 사진을 지울 방법이 없다는 게 학생들을 가장 절망케 했다. B 양은 “이미 사진은 어딘가로 누군가의 컴퓨터로 들어가 있을텐데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느냐”며 “남의 사진을 마구 찍고, 누가 찍은 불법촬영물을 보면서 웃으면서 농담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난다”고 말했다.
학생들에 따르면 한반 30명 기준으로 학교 인근에서 몰카범을 목격했거나, 자신의 사진이 온라인에 유출된 것을 확인한 피해 학생이 절반 이상이었다.
A 고등학교 학생들을 불법촬영한 사진과 영상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학생들은 등하교를 할 때마다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학교 근처엔 낯선 사람들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학교 정문 앞에서 차를 탄 상태로 카메라를 들이밀거나, 버스정류장에 앉아있으면 서성거리며 주위를 맴도는 남성들이 수시로 목격됐다. 학생들은 교복을 입지 않거나 카디건 등을 걸쳐 몸을 가리고 다녀야만 했다.
학생들은 교복 하의가 짧아서 몰카를 당했다는 식의 일각의 주장에 “불법촬영물을 찍은 가해자의 잘못을 피해자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박했다.
A고교 재학중인 C(19) 양은 “성희롱이나 성추행도 짧은 교복을 입었다고 해서 정당화할 수 없듯 몰카가 짧은 옷 때문이라고 할 순 없다”고 꼬집었다. D(19)양 역시 “요즘 학생들의 교복 짧은 건 다들 비슷한데 몰카 찍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말했다. 다른 피해 학생은 “교복을 줄이지도 않았고 살이 쪄서 조금 올라간 것 뿐”이라며 “그래서 교복을 늘리기도 했지만 찍히는 것은 똑같았다”고 토로했다.
선생님도 비상이었다. A 고등학교 학생자치부 생활지도계 이모(34) 교사는 올해 초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교복 지도를 하다가 우연히 알게 됐다. 여학생들이 등교시 교복을 안 입길래 교복을 입고 다니라고 혼냈다가 아이들이 “몰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하냐”고 울먹거린 것이다. 이 교사는 당시 “순간 무언가에 맞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아이들에겐 “수상한 사람이 나타나면 곧바로 전화하라. 뛰쳐나가겠다”고 신신당부했다.
이후 학생들은 몰카범을 만나면 이 선생님에게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내거나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이 몰카범으로 추정되는 사람을 만난 것도 7차례가 넘는다.
선생님이 몰카범에게 “학교에 왜 왔느냐”고 캐묻고, “사진 찍는 것은 범죄”라고 설득하고 “부탁하는데 학교에 오지 말아달라”고 타이르기도 했지만 학교를 찾는 수상한 남성들은 끊이질 않았다.최근에도 여름방학식날 학교 앞에서 학생들을 촬영하러 온 남성이 있었다. 40대 남성이 학교 정문 인근에서 차를 세워두고 학생들을 찍은 것이다. 당장 선생님이 뛰어가서 “무엇을 한 것이냐. 동영상 찍은 거 보여달라”고 따졌지만 남성은 “죄송하다”고 하고 사라졌다.
선생님이 몰카범을 붙잡고 시간을 끌어 경찰에 신고한 경우도 수차례다. 하지만 몰카범들은 그 사이에 휴대폰에 있던 불법촬영물을 지워 버렸다. 이 선생님은 “경찰서에 가도 증거가 없어 정식 입건되기란 쉽지 않다”며 답답해했다.
온라인에 자신과 친구의 영상물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목격하고, 실제 학교 앞에서 낯선 사람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을 경험하면서도 몰카범을 잡을 수 없다는 사실에 학생들은 자포자기한 상태이었다. 몰카 피해 재학생은 “해외에 서버가 있어서 잡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포기했다”면서 “내가 찍힌 사진을 모두 봤다. 내 사진을 보고 누군가가 ‘쟤 사진으로 본 것 같다’고 할까 무섭다”고 말했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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