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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남자다움' 미화 문화가 '미투'의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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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울면 안된다·감정표현 억제'가 '남자다움'?

미국 역사상 가장 '마초적'인 대통령 탄생도 영향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남자는 '마초'라야 한다. 남성다워지기 위해서는 약하게 보이지 않도록 성장과정에서 감정을 죽여야 한다. '나약함'이나 '상냥함' 은 여성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안된다. '분노'와 '폭력'이 남자에게 허용되는 감정표현 방식이다."

"미투(#MeToo·나도 당했다)"라는 표어로 전세계로 확산한 성범죄의 뿌리는 '남자 아이'의 양육방식에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싸우는 남자는 '영웅'으로 그려지며 애니메이션에서도 근육질의 마초가 '남자다운 것'으로 묘사된다. 실제로 미국인 남녀 4천5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퓨 리서치의 작년 12월 여론조사에서 53%가 '남자다운 남성'을 '존경'한다고 대답했다. 어려서부터 무의식적으로 '강한 자' '남성우위' 가치관에 노출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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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올림픽 기수를 맡은 통가 근육맨 타우파토푸아 [EPA=연합뉴스]




2일 NHK에 따르면 뉴욕 대학의 발달심리학자인 나이오비 웨이 교수는 '남성다움'과 '마초'는 성폭행, 성희롱 등 성범죄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웨이 교수는 30년전부터 사춘기를 맞은 10대 남자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는 연구를 계속해 오고 있다. 남자 아이가 친구나 가족 등 주위 사람들과의 인간관계 구축방식이 인격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그는 2012년 남학생 135명을 수년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결과 절반 이상이 심신이 성장하면서 다른 사람과의 대화가 서서히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정을 표현하는 일도 감소했다. 이런 학생은 교우관계가 엷어져 감정을 밖으로 내보이지 않는 남성으로 성장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감정을 드러내는 건 여자 같고 '남성스럽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는 문화의 뿌리가 깊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감정표현을 억제하는 어린이가 적지 않다고 한다.

"남학생 중에는 '여자아이들이 부럽다. 감정적이 될 수 있으니까'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이 말이 모든 걸 말해준다. 누가 이 남자아이에게 비감정적이 되라고 했을까? 우리 사회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과 같다." 바로 우리의 문화가 남자 아이와 남성들에게 해를 끼치고 있다는 게 웨이 교수의 설명이다.

NHK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요즘 이런 '남성다움'에 대한 가치관을 시정하기 위한 교육이 확산하기 시작했다. 웨이 교수는 심신이 어른으로 성장하기 전에 감정을 표현하는 일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작년 가을부터 뉴욕시내 중학교에서 시작했다. 맨해튼에 있는 한 중학교는 수업중 학생이 자진해 여성 담임선생에게 왜 선생이 됐는지, 인상 깊었던 경험 등 다양한 질문을 한다. 여교사는 옛날에 즐거웠던 일과 힘들었던 일 등을 회상해 이야기하는 가운데 감정이 복받쳐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별로 겉으로 드러내지 않던 마음속을 털어 놓음으로써 감정을 억지로 억누를 게 아니라 밖으로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하려는 목적에서다.

웨이 교수는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감정을 표현한다. 그런 감정을 잘 받아 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힉생들도 감정표현의 중요성을 알아 차린 눈치였다. 한 남학생은 "마음 깊은 곳에 울림이 올 때는 울어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대학에서도 '남성다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도가 시작됐다. 중서부 오하이오대학이 올해 1월에 시작한 강의에서는 '남성다움'이 뭔지, 그것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해 토론한다. 수강생 중에는 암묵적으로 '남자다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한 남학생도 있다. 수강생 중 한 명은 "사회가 강요한 '남성다움'이 아니라 '나 다운'게 뭘까를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남성의 행동에 큰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강의를 담당한 프람프맨 연구원은 "남자다움"은 성희롱이나 성폭력 등의 성범죄뿐만 아니라 총기를 이용한 폭력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역설했다.

미국에서 발생한 총기난사사건의 용의자는 대부분 백인남성이라는 사실에 비추어 그런 사람의 성장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분노를 폭력에 호소하는 게 '남자다운 것'이라고 배웠을 우려가 있다"면서 "남자는 '남자다움'을 타고 나는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수십년전부터 지적돼온 '마초와 남자다움'이 왜 지금 갑자기 주목받게 됐을까. 웨이 교수는 "미국 역사상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마초'적인 대통령이 탄생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탄생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기간 중 여성의 신체를 건드렸다거나, 갑자기 키스를 했다거나 예쁘지 않다고 판단한 여자 종업원을 해고하라고 지시했다는 보도들이 자주 나왔었다. 웨이 교수와 프람프맨 연구원은 그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배경에는 부드럽고 '좋은 아버지'나 '선량한 남편'으로 여겨진 오바마 전 대통령의 이미지에 대한 반동이라는 측면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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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미국의 고졸 남성은 공장에서 일하면서 나름의 급여를 받아 가족을 부양해 왔는데 지금은 그런 일자리가 외국으로 유출되거나 기계화 돼 없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 일자리를 미국으로 되돌리겠다고 계속 말하고 있다. 일자리를 도로 가져온다는 건 급여 즉 돈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자다움을 회복해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되찾는다는 의미"라고 프팜프맨 연구원은 설명했다.

NHK는 일본에서도 어릴 때 부터 "남자는 울지 않는다"거나 "남자니까 참아라"는 이야기가 흔하다고 지적하고 성별에 관계없이 '나 답게' 사는 사회를 실현하는 게 성희롱이나 성폭력 등을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lhy501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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