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22일 옥탑방 입주한 가운데, 주민들은 이에 대해 찬반 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사진은 무더위쉼터에 모인 박 시장의 이웃주민들. /삼양동=임현경 인턴기자 |
'옥탑방 원순 씨'를 이웃으로 맞은 주민들
[더팩트ㅣ삼양동=임현경 인턴기자] '옥탑방 원순씨'는 동네 주민들에게 어떤 이웃일까. 누군가는 '가증스러운 쇼'·'1차원적 행정'이라 비판했지만, 새로운 이웃을 맞은 솔샘로 주민들의 생각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22일 강북구 솔샘로에 위치한 전원주택 옥탑방에서 한 달 살이를 시작했다. 박 시장은 옥탑방에 현장시장실을 마련해 지내면서 시청 및 외부 일정을 소화하겠다고 밝혔다. 방 두 칸 중 한 칸은 박 시장 전용이고, 보좌진은 교대로 나머지 한 칸에서 생활한다.
지난 26일 찾아간 박 시장의 옥탑방은 경전철 우이신설선을 타고 역에서 하차, 도보로 5분 정도면 도착한다. 시청에서 차로는 30분, 대중교통으론 4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길이다. 가파른 언덕 위에 있다기에 잔뜩 겁을 먹고 들어선 골목은 예상보다 완만했다. 박 시장이 입주한 주택은 골목 중에서도 큰 길가 쪽에 있다. 차를 돌릴 공간이 없어 후진으로 들어와야 하는 좁은 골목이지만, 주차할 공간도 없는 언덕 위쪽 주택들에 비하면 편의성이 높은 편이었다.
보좌진이 주택 앞 계단에 걸터앉아 박 시장의 출근 준비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라디오방송 전화 연결을 마친 뒤 10시 일정을 위해 나설 예정이라고 했다. 기자가 '에어컨이 없는 방에서 자기엔 너무 덥지 않은지' 묻자 한 관계자는 "창문을 열면 바람이 조금씩 들어와서 그래도 잘만하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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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민은 보좌진에 "재개발을 해달라"며 생활 고충을 토로했다. 사진은 박 시장이 거주하는 옥탑방 전경(위)과 보좌관에게 고충을 털어놓는 주민(아래) 모습. /임현경 인턴기자 |
골목 안쪽 주민이 다가와 보좌진에 말을 걸었다. 그는 "여기 가로등이 꺼졌는데 아무도 고쳐주지 않아 한참을 고생했다"며 "평지 사람들은 세를 놓으니 재개발을 반대하겠지만 언덕 사람들은 다 찬성할 것이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관계자는 명함을 건네며 "시에서는 이쪽을 어떻게 개발할지, 발전시킬지 그 문제로 같이 고민하고 있다. 말씀을 주시면 함께 이야기해보겠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18일까지 집회가 신고되어있다. 그분들이 벌금을 물 정도로 소리도 지르시고 그래서 경찰들이 배치될 것이다. 미리 죄송하다"며 주민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는 "하지만 그분들도 신고하고 집회를 할 자격이 있는 분들이라 저희가 막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주민은 "그런 사람도 있지 뭘. 시끄러워야 뭐가 되겠지"라며 웃어넘겼다.
그때 철문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박 시장의 모습이 보였다. 부인 강난희 여사가 대문 안쪽에서 그를 배웅했다. 박 시장이 옥탑방을 나선 시각은 오전 8시 45분쯤. 박 시장은 주민과 보좌진이 서 있는 쪽을 힐끗 돌아보고서는 바삐 걸음을 옮겼다. 뒤꽁무니로 오르막길을 힘겹게 올라온 차가 박 시장을 싣고 급히 떠났다. 배달을 나온 상점 주인이 강 여사를 발견하고 "건강을 잘 챙기시라" 당부하기도 했다. 강 여사는 수줍게 몇 마디 답하곤 문을 닫았고 주택 앞에 있던 관계자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복작거리던 골목이 갑작스레 한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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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시장은 주민과 보좌진이 선 쪽을 힐끗 돌아보고선 바삐 걸음을 옮겼다. 사진은 출근을 위해 급히 차에 오르는 박 시장(위)과 그를 배웅하는 강 여사(아래) 모습. /임현경 인턴기자 |
옥탑방 앞집에 거주하는 문모(69)씨가 화단을 가꾸다 기자를 발견하고 말을 붙였다. 그는 "지금 당장 쇼다 뭐다 얘기하는 게 좋은 건 아닌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문 씨는 "좋은 차 타고 좋은 집에서 여름을 지내면 될 것을, 뭐하러 여기 와서 산다고 하겠나. 나중에 평가하더라도 일단 해본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라 말했다. 주택 앞에서 벌어지는 집회에 대해서는 "주민들은 조용한데 항상 외부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시위도 하고 속을 썩인다"고 혀를 내둘렀다.
권모(59)씨는 박 시장이 거주하는 지역에 국한된 관심이 아쉽다고 했다. 근처 조명 가게를 운영하는 그는 "여기서 장사를 하다 보면 아파트에 사는 사람과 이쪽 지역 사람들의 생활환경이나 구매력 격차를 실감한다"며 "바로 앞에 소방서가 있지만 뒤쪽 골목에는 소방차는커녕 리어카도 못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장님에게만 집중된 언론의 관심이 아쉽다. 이게 삼양동뿐 아니라 북한산 주변을 따라 쭉 이어진 지역에서 겪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권씨는 '재개발설'이 도는 상황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시장님이 여기 왔으니, 재개발된다고 말을 흘려놓으면 다른 지역 사람들이 투기용으로 집을 사들이고 값이 오른다. 그러다 재개발이 되지 않거나 극히 일부만 개발된다면 여기 사는 사람도, 땅을 사놓은 사람도 크게 낭패를 보게 된다. 그래서 예전에 장인동에서도 손해 본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경로당에선 할머니들이 '동네 살이의 불편함'을 털어놓았다. 그들은 기자에게 "수고가 많다"며, 점심 식탁에 기자 몫의 수저를 올려주었다. 사진은 박 시장이 거주하는 옥탑방 근처 경로당 겸 무더위쉼터의 식사 풍경. /임현경 인턴기자 |
근처 경로당에서 9년간 회장을 맡아 지역 어르신을 돌봤던 이재삼(79)씨는 박 시장의 방문을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이 씨는 "앞을 내다보시는 양반이다. 민심을 들으러 오시니 여러분(취재진)들도 자주 오시지 않나. 이 동네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이고 알려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돈이 없으니 이사도 못 가고, 수리비가 이사하는 것만큼 많이 드니 그냥 사는 사람이 많다"며 "장마 땐 비가 쏟아지고 겨울엔 수도가 꽝꽝 언다. 쥐가 나와서 쥐덫을 놓고 산다"고 토로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할머니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우리 집은 내놓은 지 10년도 더 됐는데 아직도 안 팔려." "요즘 부모 모시고 살기 어려운 세상이잖아. 먹고사는 데 자식까지 키우려면 우리 용돈 주기에도 벌이가 빠듯하지. 그 용돈으로 그나마 병원비하고 그렇게 사는 거야." "이 동네 얼른 재개발 좀 해줬으면 좋겠네. 소원은 그거 하나뿐이야."
이 씨는 박 시장이 토지 개발뿐 아니라 다양한 복지를 둘러보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정부에서는 잘해주고 있다고 하고, 우리도 감사하지만, 실제로 여기서 지내봐야만 알 수 있는 일이 있다"며 거주 환경 열악, 의료 시설 부족, 노인 수당, 복지카드를 사용하려면 무조건 카드 가맹점에 가야 해서 물건값을 비싸게 줘야 하는 수수료 문제까지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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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탑방 뒤쪽 건물에 사는 박순여(89)씨는 "사람은 큰 사람 덕을 본다"며 박 시장의 한 달 살이를 환영했다. 사진은 박씨가 박 시장이 입주한 지난 22일 함께 악수를 나누고 있는 모습(위)과 주민상견례 현장. /서울시 제공 |
"여기 참 시골만치로 나이 든 사람들이 많이 살지?" 김경희(75)씨는 기자에게 달달한 냉커피를 건네며 말을 꺼냈다. "여기서 50년 넘게 살았다. 나는 집이 없으니 집값이 올라도 필요가 없지만, 그래도 여기 오래 살았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잘 됐으면 좋겠다"며 재개발을 염원했다. 그는 "저 할머니가 나이가 드셔서 그 높은 언덕을 혼자 어떻게 올라가겠느냐"며 박 씨를 가리켰다.
박순여(89)씨는 박 시장이 입주한 건물 바로 뒤편에 거주한다. 박 시장이 이사하던 날 주민상견례에 참여해 함께 수박을 나눠 먹기도 했다. "한 달? 난 또 1년은 살 줄 알았지. 하긴 그래, 여기서 에어컨도 없이 어떻게 1년을 살겠어. 나도 에어컨은 있는디. 뭐가 그리 답답해서 여까지 오셨는가 몰라." 박 씨는 허허 웃으며 기자에게 점심 식사를 권했다.
박 씨는 "어느 날 밤에 지나가는데 집 앞에 의자를 놓고 여럿이 앉아 있더라.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랐다"고 회상했다. "난 카메라가 하도 번쩍거려서 무슨 사고가 났나 했지. 새벽 1시에도 카메라를 들고 선 사람들이 많았다며! 다 기자 같더구먼." 김 씨가 옆에서 거들었다. 그래도 박 씨는 '상황을 안 이상 불편할 필요가 없다'며 손을 내저었다.
"나무는 큰 나무 덕을 못 보지만, 사람은 큰 사람 덕을 봐." 박씨는 박 시장이 '큰 사람'이 되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큰 나무가 해를 가리고 땅에서 양분을 다 빼먹으면 다른 나무들은 덕을 못 보잖아. 사람은 안 그래. 큰 사람이 일을 하면 다른 사람들도 덕을 보거든. 그러니 시장님이 오시면 좋지 뭘. 불편하진 않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