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동안 검찰 들끓게 했던 내분은 수면 아래로
이명박 정권의 검찰총장, 4명 모두 임기 못 채워
한 총장은 전날 저녁 수도권 지검장들과 마지막 회의를 가졌다. 회의가 끝나고 밤 11시쯤 퇴근하면서 주변에 "(검찰에) 부담이 안 가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전날 오후까지 한 총장은 "사퇴하더라도 개혁 방안은 발표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마음을 바꾼 이유에 대해 한 총장은 "밤새 고민했다. 결국 깨끗이 사직하는 것이 누를 안 끼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 총장은 30일 새벽 대검 관계자에게 '개혁안 발표 없이 사퇴하겠다'고 통지하고, 오전 7시가 넘어서 권재진 법무장관에게도 알렸다고 한다.
한 총장의 사퇴 회견은 1분 만에 끝났다. 취재진의 카메라 앞에서 두 번 깊숙이 고개를 숙인 뒤, "떠나는 사람은 말이 없다. 후임자에게 맡긴다"고 말했다.
28일부터 이틀간 전국 검찰을 들쑤셨던 최악의 '내분(內紛) 사태'가 사실상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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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대 검찰총장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검찰총장직 사퇴 기자회견을 1분여 만에 마치고 차에 오르고 있다. 한 총장은 기자회견에 앞서 만난 대검 간부들에게 “내가 눈에 뭐가 씌었었나 보다”라고 말했다. /김지호 객원기자 |
한 총장의 퇴진으로 이명박 정부에서 일했던 총장 3명이 모두 임기(2년)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천성관 내정자까지 치면 4명이다.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7년 11월 취임한 임채진 전 총장은 2009년 5월 '박연차 게이트' 수사 중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그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어 천성관 총장 내정자는 청문회에서 불거진 '스폰서 파문'으로 낙마했다. 그 뒤를 이은 김준규 전 총장은 임기 만료를 2개월 남긴 작년 7월 검·경 수사권 조정 갈등 와중에 사표를 던졌다.
1988년 총장 임기제가 도입된 이래 역대 정권에서 단 한 명의 총장도 임기를 채우지 못한 것은 현 정권이 처음이다.
이전의 정권들도 그랬지만 현 정권에선 유독 검찰 인사를 둘러싼 뒷말이 많았다. 특정 지역과 특정 대학 출신이 요직을 독차지한다는 얘기였다. '검찰의 꽃'으로 불리는 서울중앙지검장을 특정 학교 출신이 3연속 맡은 게 대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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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친인척과 측근 실세, 종교계 인사들이 검찰 인사에 개입한다는 얘기도 적지 않았다. 천성관 내정자 인선에 대통령의 가까운 친척이 영향을 미쳤다는 말이 있었다. 최근 9억7000만원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김광준(51) 검사가 현 정권 초기인 2008년 동기생들 중 선두로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에 발탁된 것도 '정권 실세의 힘' 때문이었다고 검찰 소식통은 말했다.
상당수 검사들은 현재 검찰이 맞닥뜨린 위기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인사 실패'를 꼽기도 한다. 서울지역 검찰청의 한 간부는 "일 잘하는 검사보다는 '말 잘 듣는 검사'를 요직에 발탁해 쓴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현 정권에선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벤츠 여검사 같은 신조어들이 생겨났고, 최근엔 '돈 검사' '성(性) 검사' 같은 말까지 나오고 있다.
위기에 빠진 검찰에는 자체 개혁을 할 만한 동력(動力)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외부에서 메스를 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이날 "검찰을 새로 만들겠다는 각오로 확실히 개혁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도 "경찰에 수사권을 주는 등 검찰 기능(권한)을 약화시키겠다"고 말했다.
[조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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