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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미투' 운동과 사회 이슈

‘미투에 거액 손배소’ 고은 시인의 대응이 낯설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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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성폭력 폭로한 최영미 시인에

10억여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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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이 자신의 성폭력 의혹을 제기한 최영미 시인과 언론사 기자 등을 상대로 10억7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최영미 시인은 지난해 12월 계간 <황해문화>에 시 ‘괴물’을 발표했습니다. 시에서 “En 선생”으로 등장하는 문단 원로는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고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이로 묘사돼 있습니다.

고은 시인은 올해 2월 <한겨레>와 통화에서 “30년 전 일이라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당시 후배 문인을 격려한다는 취지에서 한 행동이 오늘날에 비추어 성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된 행동이라 생각하고 뉘우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고은 시인의 또 다른 성추행과 성희롱 등에 대한 고발 폭로가 이어졌습니다.

그러자 고은 시인은 3월초 출판사를 통해 입장문을 내 “최근 (성추행) 주장들에 내 이름이 나오는 것이 유감스럽다. 나는 이미 ‘나의 행동으로 (피해자들에게) 의도하지 않은 고통을 준 것을 뉘우친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상습적인 추행’ 혐의는 단호하게 부인한다”고 밝혔습니다.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한 최영미 시인의 시는 ‘미투 운동’을 촉발했고 서울시는 성평등 실현에 기여한 공을 인정해 최근 최 시인에게 ‘서울특별시 성평등상’ 대상을 수여했습니다. 그런데 수상 2주 만에 거액의 손배소 소식이 전해진 겁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조직적인 미투 무력화”(@richard_s****), “또 다른 2차 가해”(@yyiym****)라는 우려가 잇따랐습니다. 사실 이런 우려가 처음은 아닙니다.

■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이런 사례 본 적 없어”

“미투 운동 이후 무고나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움직임이 늘어나는 모습은 한국의 독특한 현상이며 이런 사례를 본 적이 없다.”

루스 핼퍼린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부의장은 지난 3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며 “이게 얼마나 강력한 전략인지 정부가 인식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어렵게 입을 연 성폭력 피해자들을 다시금 침묵하게 한다는 겁니다.

문화예술계 등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업계에서 이 전략은 더욱 강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사건 조사를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동으로 꾸린 특별조사단이 지난 6월19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여성 응답자 2478명 가운데 성희롱·성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57.7%(1429명)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 가운데 85% 이상은 “문제 제기를 못하고 그냥 참고 넘어갔다”고 답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문제제기를 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였고 ‘활동에 불이익이 우려되어서’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당시 특조단은 “도제식으로 일을 배우는 문화예술계에는 강한 위계 관계가 형성되고, 한 번 문화예술계에 진입하면 평생 그 영역에서 공존해야 한다는 폐쇄성에서 나온 결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문화예술계에서 터져 나온 ‘미투 폭로’가 얼마나 어렵게 나온 것인지 짐작할 수 있는 지점입니다.

■ “무차별적인 역고소의 역풍 불고 있다”

‘미투 운동’에 대한 백래시(반격, 역풍) 우려가 큰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권력관계가 해체되지 않는 한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의 가능성은 늘 열려 있습니다.

“(피해자들이) 무차별적인 역고소의 역풍을 맞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옵니다. 2016년 해시태그 ‘#문단_내_성폭력’ 운동에 나섰던 피해자들이 대표적입니다.

장임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4월 관련 포럼에서 이렇게 지적하며 “성폭력 공론화가 조직화된 운동조직에 의해 주도되었던 2000년대와 달리 (미투 운동은) 피해자들의 고발의 형태이기 때문에 명예훼손 역고소가 공론화 운동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피해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자 2차 가해가 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앞서 3월에는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우리 정부에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형사소송 예방을 위한 조처를 시행하라는 권고안을 냈습니다.

2차 가해는 단순히 피해자를 침묵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3월5일 문화예술계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에서 “(성폭력) 가해자는 피해자를 향해 무고죄, 명예훼손으로 역고소를 해서 또다시 피해자를 위축시키고 두려움을 갖게 한다”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피해자의 생애 전체를 뒤흔들어 더 이상 우리 사회에 대한 신뢰를 갖지 못하게 되는 고립감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최영미 시인은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오늘 법원으로부터 손해배상 청구 소장을 받았다”며 “싸움이 시작됐으니 밥부터 먹어야겠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최 시인의 ‘미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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