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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몰라도 나중엔 남자애들이 수학을 더 잘해”. 아버지는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 딸과 함께 수학문제를 풀다가 무심코 말했다. 딸은 발끈했다. 고등학교 3학년인 언니와 힘을 합쳐 아버지 주장을 반박했다. “남자는 이렇다, 여자는 이렇다 하지 마세요!”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온라인에서 벌어진 ‘○○계 내 성폭력’ 해시태그 달기운동 그리고 올 상반기 ‘미투(ME TOO)’ 운동까지 성차별·성폭력을 향한 여성들의 분노는 최근 2~3년간 강하게 분출돼왔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여성들이 페미니즘에 눈을 떴다. 10대도 마찬가지였다. 교사, 남학생, 부모의 성차별적 인식을 깨뜨리는 주체는 이제 ‘10대 페미니스트’다. 1982년생 김지영이 사회에 진출해 성차별의 벽을 맞닥뜨리고 타협과 저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했다면, 이 10대들은 질문과 대꾸를 주저하지 않는다. 자기검열에서 자유롭고 단호하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10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 ‘2000년생 이수경
“난 운이 좋았나봐.” 고등학교 3학년 이수경양(18)은 여태껏 자신은 성폭력을 당한 적이 없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지난 1월 안도감이 괴로움으로 바뀌었다. 서지현 검사가 피해를 폭로한 이후 매일 소셜미디어에서 일상적인 성폭력에 시달린 여성들의 글을 마주했다. 여느때처럼 TV를 보면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수십 가지 장면이 스쳤다.
우연히 친구, 친구 아버지와 함께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춤추고 노래했던 날. 친구 아버지는 “노래 잘한다”며 엉덩이를 때렸다. 엄마의 계모임에 따라간 날도 떠올랐다. 한 아저씨는 “여자가 따라왔으면 술 정도는 따라야지”라며 술시중을 강요했다. 학교 복도에서 남자 선생님들이 허리를 낚아채듯 안으며 인사하는 일도 허다했다. 자기 아내에 대해 얘기하면서 “여자들은 멍청하다”고 한 선생님도 있었다. ‘짜증난다’고만 생각했던 일들이 알고보니 성차별이고 폭력이었다. 이양은 “그런 문제에 여성인권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는 나만의 언어가 없었다”면서 “기억을 되새기며 경험을 하나하나 떠올리는 게 너무 괴로웠다”고 말했다.
그후 많은 것이 변했다. 올해 설날 분주하게 음식을 나르는 큰어머니에게 “저기 남자들만 앉아있는 꼴이 너무 같잖네요”라고 한마디했다. 이양은 “큰어머니가 씁쓸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서 서로 통쾌한 감정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전을 부쳤다고 자랑하는 사촌오빠에게 “평생 전 부친 여자들 앞에서 건방떨지 말라”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오빠는 멋쩍은 듯이 웃었다.
이양은 이제 일상에서 거침없이 말한다. 옷에 뭔가 묻혔을 때 “여자가 칠칠맞게”라고 면박을 주고, 쉬는 시간 사물함 위에 올라가 잠을 잘 때면 “아가씨가 이런 데서 자냐”고 하는 선생님의 말에 “그런 말씀 하지 마시라”고 즉각 대응한다.
■ 10대들, 물음표를 던지다
이양 같은 10대들은 ‘디지털 네이티브’로 자라왔다.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소통하는 데 익숙하다.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이어지고 있는 ‘#청소년페미가_겪는_학교폭력’ 해시태그 운동은 이러한 10대 페미니스트들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이들은 페미니즘을 공부하거나 주장한다는 이유만으로 심각한 언어적·신체적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다. 온라인을 통해 그런 피해경험들을 공유하고 힘을 모은다. 한 학생은 “친구와 페미니즘 동아리 홍보물 20장을 전교에 붙였는데 그중 19장이 사라졌다. 나머지 한 장에는 ‘김치년’ ‘삼일한’ ‘메갈년’과 같은 욕들이 적혀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전의 선배들은 차별과 폭력을 겪으면서도 참아야 했는지 모르지만 지금의 10대에게는 털어놓고 생각을 나눌 ‘대나무숲’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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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자인 엄혜진 경희대 후마니스트칼리지 교수는 10대 페미니스트들의 특징으로 ‘단호함’을 꼽았다. 이들에게 페미니즘은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일상이다. 이전 세대가 그냥 넘길 수밖에 없었던 문제에 과감히 물음표를 던진다. 엄마와 언니, 학교선배 등 20~40대 여성의 현실을 똑똑하게 목격했기 때문에 가능한 태도다.
“여성들의 삶이 예전보다 나아졌다고 하는데 과연 정말로 그런지, 실체가 무엇인지 묻는 거죠. 경제활동 참여율이 높아지면서 남성처럼 사회생활을 해야 하고, 그렇다고 또 ‘남성처럼’ 살면 대접을 못 받으니 여성성도 내보여야 하고…. 30대, 40대들은 조직에서 관리자 위치로 가면 남성 중심의 규칙과 질서에 맞서기도 하지만 순응하기도 해요. 반면 10대와 20대들은 사회가 얼마나 불평등한지 서슴지 않고 얘기하는 단호함이 있어요. 우리 사회에 누적된 피로감과 고통이 10대들의 입을 통해서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이대로 살면 안되겠구나’라고 그들도 느낀 거죠.”
■ ‘학생’에서 ‘시민’으로
지난 4월 서울 노원구 용화여고의 ‘창문미투’는 10대 청소년들의 젠더인식이 얼마나 차올랐는지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이 학교 졸업생들은 교사들의 성폭력과 폭언 등을 폭로하며 ‘스쿨미투’에 불을 붙였다. 재학생들은 선배들이 미투운동을 벌인다는 소식을 기사로 접했다. “우리도 위드유(With you) 캠페인이라도 해야하는 거 아냐?” 누군가가 던진 말에 정민지양(가명)은 친구들과 함께 포스트잇을 모아 창문에 붙였다. “거기보다 조금 옆으로!” 몇몇은 운동장으로 나가 건물 창문을 바라보며 손짓을 했다. 3학년들이 쓰는 별관 4층부터 2층까지 차례로 포스트잇을 붙여나갔다. ‘#With you’ ‘You can do everything’ ‘#Me too’. 층층이 붙은 포스트잇이 이런 문구를 만들어냈다.
며칠 지나지 않아 1, 2학년들이 쓰는 본관 창문에 ‘지켜줄게’ ‘혼자가 아니야’라는 문구가 덧붙여졌다. ‘너의 이야기가 곧 나의 이야기’임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정양은 “단지 어리다고, 여자라고 부당함을 겪는 게 싫었다. 할 일 많은 고3이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싶었다”고 했다. 포스트잇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
이들의 목소리는 어떤 변화를 불러올까. 당장 학교 분위기가 성폭력에 민감해졌다는 게 가장 큰 변화다. 중학교 3학년 김가진양(15)은 “스쿨미투 운동 이후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대할 때 확실히 조심스러워졌다. 성적 고정관념이 있다고 해도 직접 입밖으로 내는 일이 줄었다”고 말했다. 김양은 보호의 대상, 훈육의 대상으로 여겨지던 10대들이 변화를 불러온 것을 두고 “우리의 발언에 귀기울이는 것을 보면서 나도 사회의 한 구성원이라는 걸 잠시나마 느꼈다”라고 했다. 김고연주 서울시 젠더자문관도 “청소년들이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라 충분한 판단력을 지닌 시민이라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면서 “투표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을 실을 수 있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 성평등 교육이 필요해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무엇보다 기성세대의 변화가 느리다. 서울시교육청은 최근 용화여고에 성폭력 관계자 21명을 징계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용화여고는 교육청이 징계를 강제할 수 없는 사립학교라서 제대로 처벌이 이뤄질 지는 미지수다. 정양은 “폭로에서 그치면 안 된다”며 “졸업한 뒤에라도 불편부당한 것들에 대해 계속 항의할 것”이라고 했다.
이수경양은 “비청소년들은 청소년들이 용기를 내 성폭력을 고발해도 ‘기특하다’ ‘이 나라의 미래가 밝다’고 한다”며 “동등한 입장에서 청소년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들어준다’는 시혜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지적했다. 10대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2등 시민’에 머물러있다고 느낀다.
10대 페미니스트들의 외침을 ‘성평등’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은 모두의 몫이다. 일부 남학생들은 여성 인권이나 성평등을 말하는 여학생들에게 혐오 발언을 퍼붓고 비아냥대기도 한다. 신체적 폭력을 당한 여학생들도 적지 않다. 학교 내 인권교육,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공격을 막고 결국 성평등과 인권의 문제임을 가르치는 교사들과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20년간 10대 청소년의 변화를 지켜봐 온 최규영 청량고 보건교사는 “성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예전 세대보다 훨씬 뛰어난 학생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남학생과 여학생 사이는 물론이고 여학생들끼리도 감수성 차이가 크다”면서 “공교육이 간극을 메워주는 젠더교육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엄 교수도 “지금까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수준의 인권담론을 이야기했다면 이제 인권의식의 차이를 좁히는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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