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국가폭력 토론회’ 주제발표
“1940년대 발생한 제주4·3과 1980년 광주 5·18을 검토해보니 30년이 휠씬 넘는 시간 차이에도 두 사건이 무척 닮아 놀라웠다. 제주4·3은 남한에 수립된 미군정에 맞선 무장 투쟁이고 5·18은 미국을 등에 업은 한국 군사 정권에 맞선 무장 투쟁으로 ,미국이 진압군에 개입했다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미국 탐사보도 전문기자 팀 셔록은 지난 28일 제주도가 주최하고 제주 4·3연구소가 주관한 ‘4·3, 국가폭력과 기억'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1970년대부터 한반도 문제를 취재하고 있으며, 미국 정부의 5·18 관련 비밀문서를 발굴 보도해 광주 명예시민으로 선정된 바 있다.
팀 셔록 기자는 이날 ‘미국 기자가 본 4·3과 5·18' 주제발표를 통해 “제주4·3과 1980년 광주항쟁 때 미국은 진압군의 살육 작전에 가담했으며 특히 제주4·3은 처음부터 미국이 조직하고 미국이 주도한 진압 작전”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에 대해 그는 “5·18민주화항쟁에 이어 4·3에 대해서 30년 넘는 조사와 집필 등을 통해 얻은 결론”이라며 “가장 중요한 유사점은 두 항쟁의 진압과정에서 미국이 수행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팀 셔록 기자는 “4·3 논문집인 <제주사>를 보면, 1947년 3월1일 경찰의 주민 발포사건에 뒤이은 총파업과 항의시위 이후 미군청정은 제주도를 붉은 섬으로 분류함으로써 앞선 사건들을 전략적으로 이용했다. 제주도민의 70%를 빨갱이, 빨갱이 부역자로 낙인찍었다”며 “4·3 진압과정에서 미군청정은 남한 군경을 통해서만 개입한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고 밝혔다.
그는 “4·3진압 이면에 도사린 미국의 그림자는 토벌을 직접 지시한 미군정이었다. 그에 반해 5·18의 이면에는 전두환 신군부의 계엄령에 맞선 항쟁에 군사적으로 대응한다는 카터 미 행정부의 결정이 그림자처럼 숨어있다”고 비교했다. 팀 셔록 기자는 “4·3과 5.18에서 미국의 역할은 분명히 달랐지만 그 결과는 비슷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과 미국 국민은 이러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연구해 정의와 화해의 기치 아래 제주 4·3과 광주항쟁 당시의 미국의 역할을 완전히 공개해야 하며, 이런 활동을 통해 한미 관계에 일조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는 지난해 10월부터 ‘제주4·3에 대한 미국과 유엔의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하는 1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서귀포/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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