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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이길 수만 있다면…몸에 신발에 새긴 승리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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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USSIA 2018 ◆

매일경제

2018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월드컵에 참여하는 선수 736명은 32개국 팀별로 동일한 디자인의 유니폼을 입는다. 국기 등 각국 특징을 본떠 제작된 유니폼은 전쟁터에 나서는 군인들 제복이나 다름없다.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축구 전쟁'에서 승리하자는 열망을 유니폼에 담고 선수와 팬이 동일하게 입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똑같이 맞출 수는 없다. 쉼 없이 그라운드 위를 달리면서 발로 패스와 슈팅을 해야 하는 축구라는 스포츠 특성상 선수 각자의 취향을 고려해주는 예외적인 '개인 화기'가 있으니 바로 축구화다.

미국 정부의 대(對)이란 경제 제재로 인해 미국 브랜드인 나이키 축구화를 제공받지 못한 이란을 제외한 각국 선수는 원하는 브랜드와 스폰서 계약을 맺고 자신에게 잘 맞는 축구화를 자유롭게, 그러나 신중하게 고르곤 한다. 대표팀 관계자도 "유니폼과 훈련복은 장비 담당관이 챙겨주는 대로 입지만 축구화만은 선수 본인이 직접 챙긴다"고 말했다.

한국 축구대표팀 선수 23명 중 주장 기성용(스완지시티) 등 선수 11명은 대표팀 유니폼 스폰서 제품인 나이키 축구화를 신는다. 일본 브랜드 미즈노가 김신욱(전북 현대) 등 6명을 후원하면서 그 뒤를 잇고, 손흥민(토트넘 홋스퍼)과 이승우(헬라스 베로나) 등 5명은 아디다스 제품을 신는다. 골키퍼 김진현(세레소 오사카)만이 홀로 푸마 축구화를 신으면서 소수파가 됐다.

이들에게 축구화는 경기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최고 무기다. 운동장 잔디 상태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스터드를 박은 축구화를 골라 신는 것은 축구 선수로서 당연한 일. 인조 잔디와 천연 잔디가 섞여 있는 '하이브리드 잔디'에서 뛰게 되는 이번 대회에서도 면밀하게 축구화를 골라야 한다.

다만 한 번의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유발할 수 있는 수비수들은 축구화 스터드에 더욱 집착하게 마련이다. 공격수가 일반적으로 가볍고 기술을 펼치기 쉬운 플라스틱 재질 스터드를 선호한다면, 수비수는 보다 길고 날카로워 미끄러지지 않는 금속 스터드를 선호하는 편이다.

실제로 재기 발랄한 움직임으로 대표팀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는 '막내' 이승우는 "종류별로 4켤레를 가져왔다"면서 "더 가져오기는 무겁더라"고 말했지만 수비수 장현수(FC 도쿄)는 "10켤레를 챙겨왔다"고 말하며 기자를 놀라게 만들었다. "혹시나 문제가 생길까봐 스터드 종류별로 최대한 많이 들고 왔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때로 축구화는 경기에 필요한 용품을 넘어 자신의 애국심과 개성을 표현하는 방편이 되기도 한다.

날렵한 경량성 모델을 선호하는 손흥민은 자신의 아디다스 X18+ 축구화 안쪽에 'SONHEUNGMIN'이라고 이름을 새겼고, 바깥쪽에는 'HM7' 이니셜과 함께 태극기를 넣어 '대한민국 에이스'로서 자부심을 드러냈다. 같은 축구화 모델을 신는 지난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 무함마드 살라흐(리버풀)와 같은 맥락이다. 부상 중인 살라흐는 28년 만에 본선에 진출한 이집트 국민을 대표해 "100% 출전하겠다"면서 자신의 축구화에 이집트 문자와 숫자 '100'을 새겨 넣었다.

브랜드에 따라서는 월드컵을 맞아 아예 처음부터 개인화 서비스를 해주기도 한다. 나이키는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머큐리얼 360, 하이퍼 베놈, 마지스타, 티엠포 등 네 가지 축구화를 선보였는데 모두 하얀색 바탕으로 통일했고, 발뒤꿈치에 선수의 소속 국가 국기를 프린팅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니 선수들 발을 유심히 보는 것도 월드컵의 재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유니폼 밑에 가려져 매번 볼 수는 없지만 문신 또한 선수들이 개성을 표출하는 방법이다. 지난해 잉고 푸로베제 독일 쾰른스포츠대 교수팀은 "문신을 한 선수는 피부의 땀 조절 기능과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지면서 기량이 3~5% 떨어진다"고 경고했지만 여전히 수많은 선수가 문신을 시도하고 있다.

이번 월드컵 초반 체면을 구기고 있는 아르헨티나 주장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는 문신을 즐기는 대표적 스타다. 많은 선수가 그렇듯 메시도 가족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 문신을 한다.

메시는 왼쪽 종아리에 아들 티아고의 두 손과 강인함을 상징하는 칼, 소속팀 등번호인 숫자 '10'을 새겼다. 여기에 더해 배 쪽에 새긴 아내 안토넬라 로쿠조의 입술 모양 문신은 다소 민망스럽지만 그만큼 좋은 부부 금슬을 보여주는 셈이다. 왼쪽 팔뚝에 조부모 이름을 새긴 한국 대표팀 황희찬(잘츠부르크)도 가족애라는 측면에선 비슷하다.

반면 문신 때문에 깜짝 논란의 주인공이 된 사례도 있다. 잉글랜드 신성 라힘 스털링(맨체스터 시티)은 자신의 다리에 새긴 'M16 소총' 문신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가 뭇매를 얻어맞았다.

월드컵에서 10번을 받은 기대주가 총 문신을 새기자 수많은 잉글랜드 팬들은 폭력적이라며 그를 대표팀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놀란 스털링은 "두 살 때 총기 사고로 숨진 아버지를 기리고 총을 만지지 않겠다는 뜻을 다지기 위해 문신을 새긴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고, 잉글랜드축구협회 역시 "스털링이 보여준 진심 어린 마음을 지지한다"며 그를 위로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논란 자체에 휘말리기 싫다면 처음부터 아무 문신도 하지 않는 것도 답이다. 첫 경기부터 3골을 터뜨리며 득점 선두로 올라선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는 멋진 근육을 자랑하는 선수지만 문신을 단 하나도 새기지 않았다. 그 이유마저 팬들의 찬사를 듣기에 충분하다. 호날두는 문신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헌혈하기 위해서 몸에 문신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 이용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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