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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난민과 국제사회

난민선 입항 막고 가족은 떼놓고…매정한 미·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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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600여명 태운 난민 구조선, 이탈리아·몰타 입항 거부

8일간 지중해 떠돌다 겨우 스페인 발렌시아에 닻 내려

포퓰리스트 이탈리아 정부, 프랑스와 네 탓 공방까지

이탈리아 내무 “리비아 해상 2척도 올 생각 마라”

미국에선 불법 월경자 자녀들 부모와 격리 수용

월마트 창고로 쓰던 시설에 1500여명 ‘보호중’

트럼프 반이민 정책에 가족 생이별…시위 잇따라



강경한 반이민 정책을 내세우며 출범한 이탈리아의 포퓰리즘 정권이 난민 구조선 입항을 잇따라 거부하면서 난민선 표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밀입국자들과 그들의 자녀를 분리 수용하는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반이민의 파고가 높아지면서 잇따르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비인도적 처사에 비난이 커지고 있다.

이탈리아, 난민선 입항 거부…지중해 유령선 취급 이탈리아의 정부는 일주일 새 3척의 난민 구조선 입항을 거부했다.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내무장관은 지난 10일 국경없는의사회와 엔지오 ‘에스오에스 메디테라네’가 공동 운영하는 난민구조선 ‘아쿠아리우스호’의 입항을 거부했다. 이 배는 지중해를 표류하다 구출된 아프리카 출신 난민 등 629명을 태우고 있었다. 아쿠아리우스호는 이탈리아와 몰타가 입항을 서로 미루면서 갈 곳을 찾지 못하고 표류했다. 결국 항구를 열어준 스페인으로 향해 17일에야 발렌시아항에 겨우 닻을 내렸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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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리우스호와 이탈리아 해안경비대 선박 다틸로, 해군함정 오리오네에 나눠 타고 먼 길을 온 이들은 아프리카와 중동, 아시아 26개국 출신이라고 국경없는의사회는 밝혔다. 국제적십자사 자원봉사자와 통역 봉사자 등 2000여명이 발렌시아항에서 “집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쓴 플래카드를 걸고 이들을 맞았다.

입항 거부를 주도한 살비니 장관은 극우 정당 ‘동맹’의 대표로 새 정부에서 내무장관으로 기용돼 예의 반난민 구호를 실천하고 있다. 그는 16일에는 에스엔에스(SNS)에 “아쿠아리우스호가 스페인으로 가는 동안 엔지오가 운영하는 두 척의 배가 리비아 해안에 도착해 기다리고 있다. 더는 이탈리아가 불법 이민 사업에 연루되지 않을 것이기에 그들은 다른 항구를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리비아 해안 근처에 있는 다른 구조선 2척에 이탈리아로 올 생각은 말라고 경고한 것이다.

한겨레

난민 구조선 라이프라인호.


살비니 장관이 언급한 선박들은 네덜란드와 독일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라이프라인’과 ‘제푹스’다. 라이프라인을 운영하는 미션 라이프라인의 공동 창업자 악셀 슈타이어는 “미국 군함과 함께 100명이 넘는 리비아 난민을 구조했고, 우리 배가 너무 작아 터키 상선으로 이들을 옮겼다”며 “가장 가깝고 안전한 항구가 (이탈리아 섬인) 람페두사이기 때문에 이탈리아가 데려갈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4년간 리비아에서 이탈리아로 넘어온 이들은 60만명이 넘는다. 1만3000여명이 이 과정에서 익사하는 등 인도주의적 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난민 수용 문제에 대한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의 갈등은 폭발 일보 직전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12일 살비니 장관이 무책임하다고 비판하면서도 아쿠아리우스호의 프랑스 입항은 거부했다. 이탈리아는 “용납할 수 없다”며 주이탈리아 프랑스대사를 불러 사과를 요구했다. 주세페 콩테 이탈리아 총리와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 15일 정상회담을 하면서 갈등은 일단 봉합됐지만 비슷한 일이 재발할 수 있다. 비영리기구 ‘레퓨지인 터내셔널’은 “몰타와 이탈리아가 항구를 열지 않았지만, 다른 대부분의 유럽 정부들도 그들을 돕지 않았다”며 “자기들끼리 공을 떠넘기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미국에선 밀입국자 자녀들 월마트 창고 수용 미국에서는 밀입국자와 미성년 자녀들의 분리 수용이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 국토안보부는 4월19일~5월31일 불법으로 국경을 넘다가 붙잡힌 성인들과 격리해 보호 중인 어린이가 2000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이들 중 1500여명은 텍사스주 브라운즈빌의 옛 월마트 창고에 마련된 보호시설에 수용됐다. 이 정책은 지난 5월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이 “남서부 국경을 불법으로 넘어오는 모든 사람을 기소하라. 어린아이를 밀입국시킨 자도 기소하고, 아이들은 법률에 따라 부모와 격리하라”는 ‘무관용’ 지침을 내리면서 본격 시행됐다.

부모와 강제로 분리된 어린이가 늘면서 비인도적 정책의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도 번지고 있다. 14일부터 멕시코와 접경한 텍사스주를 비롯해 10여개 주 60여개 도시에 걸쳐 많게는 수천명이 시위에 나서고 있다. 뉴욕 시위에 참여한 론 버벨로 목사는 <엔비시>(NBC) 방송에 “아이들을 부모와 격리하는 것은 이 나라가 자유의 땅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겁쟁이가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트위터 글로 “민주당은 국경에서 강압적으로 가족이 찢어지는 것을 해결하려면 공화당과 새로운 법을 만드는 데 함께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민 제한과 국경장벽 건설을 법제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가족 격리 문제를 이를 관철하기 위한 협상 도구로 사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과 기자들도 이 문제로 지난 14일 브리핑에서 거친 설전을 벌였다. 기자들은 “당신도 부모 아니냐”며 공세를 폈으나, 샌더스 대변인은 “불법 이민 가족이 격리되는 것은 민주당이 채우기를 거부한 합법적 구멍들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뉴욕 타임스>는 불법 이민 어린이를 부모와 격리하도록 규정한 법은 없으며, 지금 상황은 행정부가 불법 이민자를 범죄자로 간주해 기소하도록 한 결정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하원 국토안보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베니 톰슨 의원은 “트럼프 행정부는 (불법 이민) 억제 수단으로 국경에서 잔인하게 가족들을 분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미나 황준범 기자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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