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자 설득·실패 복기 힘든 과정…하지만 신뢰와 용기 얻어"
배우 이훈 |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재기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이를 악물고 한 번 부딪혀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연예계 '몸짱'으로 알려진 배우 이훈(44)씨는 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올랐지만 법원의 회생절차를 밟고 5개월 만에 이 절차를 '조기졸업'했다.
그가 15일 서초구 서울회생법원에서 취재진을 만났다. 회생 절차에 들어간 과정과 본인의 생생한 경험을 진솔하게 나누고 싶어서다.
이씨는 피트니스 클럽 사업을 하다 어려움을 겪었다. 작년 2월에 회생절차를 신청했고, 같은해 7월 회생절차를 마쳤다.
회생절차는 채무 일부를 갚으면 나머지를 탕감해줘 재기를 돕는 제도다. 변제 계획인 회생계획이 이미 수행됐거나 앞으로 수행하는 데 지장이 없다고 인정되면 법원은 절차를 종결한다.
이씨는 인터뷰 내내 "돈을 빌렸는데 못 갚았다는 것은 부끄러운 부분이고 욕을 먹어야 하는 일"이라는 말을 수차례 되풀이했다.
그럼에도 이씨는 "힘든 분들이 재기할 계기가 된다면 좋겠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줬다.
이씨가 사업으로 진 빚의 원금은 약 10억원이었다고 한다. 그것을 갚으려고 돌잔치나 칠·팔순, 정육점 오픈행사 등 가리지 않고 일했지만 이자만 불어 어느새 30억원을 넘겼다.
돈을 갚을수록 오히려 채권자의 압박은 심해졌다. '연예인인데 숨겨놓은 돈이 없을 리 없다'는 생각이 채권자들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것 같다고 이씨는 말했다.
'빚을 진 연예인'으로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든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자고 일어나면 20~30통씩 와 있는 채권자들의 전화는 물론이고 악성 채권자의 협박이 끊이지 않았다.
방송사로 압류 내용증명 등이 보내지자 '혹시나 프로그램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걱정에 방송 일도 줄어드는 악순환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씨는 회생절차를 밟기로 결심했다. 이 절차에 들어가면 이자에 해당하는 빚은 상당 부분 탕감되고, 이씨는 향후 10년간 밀린 세금과 채무의 원금 등을 갚아나가게 된다. 특히 법원이 지정한 통장을 통해 들어온 돈을 나눠 변제해주기 때문에 채권자의 추심으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이씨는 절대로 이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우선 약 70%의 채권자로부터 동의를 받아야 한다. 빚 일부를 탕감해 주고, 돈을 다 받으려면 10년이나 기다려야 하는 회생절차를 달가워할 채권자가 있을 리 없다.
배우 이훈. [연합뉴스 자료사진] |
이씨는 전국을 돌며 10여명의 채권자를 만났다. 한 명 당 동의를 구하기까지 20∼30차례씩은 만나야 했다. 이씨는 "채권자 설득이 그냥 돈을 갚는 것보다 고통스럽고 힘들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어떤 말씀을 드려도 납득 못하시죠. 서너 번째 만남 정도에서 일단 설명을 들어주세요.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나면 또 흥분하시죠. 그래도 또 찾아가서, 제 현실이 이렇다고 계속 부딪히다 보면, 스무 번 서른 번을 찾아가면 '정말 빚을 갚으려나 보다'하고 마음을 여세요"
이씨는 이 과정에서 채권자와 소주잔을 기울이고 오히려 '형, 동생'으로 친해졌다고 한다. 이를 통해 채권자에 대한 공포를 덜고, 신뢰를 얻었다고 했다.
이씨는 "채권자도 사람이고,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성실하게 갚지 않는 것 같다'는 신뢰의 문제더라"면서 "그분들에게 오히려 격려를 받으면서 재기할 희망과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회생절차에서 또 한 가지 힘든 과정은 실패를 복기하는 것이었다.
법정에서 자신이 실패한 과정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면 돌아보고 싶지 않은 과거의 서류를 다시 찾아내 들여다보고, 순간순간의 잘못된 선택들을 살펴야 했다.
이씨는 이를 두고 "지옥 같은 과정"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득이 되는 면이 더 컸다. 과거를 돌아보는 데 점차 익숙해지자, 감정이 격해져 희망의 끈을 놓으려던 데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고 이씨는 회고했다.
"실패한 분들이 아마 그럴 거예요. 그냥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고, 세상은 지옥 같고, 결국 잘못된 선택을 하시는 것 같아요. 하지만 회생절차는 감정적으로는 할 수 없어요. 어떤 실수를 해서 실패했는지 이성적으로 깨닫게 되더라고요."
최근 TV프로그램에서 '닭꼬치 푸드트럭'을 선보인 그는 곧 닭꼬치를 출시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왜 실패했고 어떻게 무리수를 뒀는지 복기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이제는 실패하더라도 회생절차로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웃었다.
이씨는 "혹시 사업에 실패하고, 채권자들이 마냥 무서운 존재로만 느껴지고 희망도 없이 계신 분들이 있다면, 회생절차에 한번 도전해보시길 바란다"고 제안했다.
그는 "단순히 이 제도로 빚쟁이들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편해지는 게 아니다"라며 "채권자들의 인간적인 부분도 이해되고, 내가 왜 실패했는지 돌아보는 너무나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sncwoo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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