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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난민과 국제사회

난민·유로존·러시아 제재…한 배 탔지만 목적지 제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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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 28개 회원국들은 5일(현지시간) 룩셈부르크에서 만나 난민수용정책에 대해 논의했지만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했다. 회의에서 동·서유럽 국가들 간 입장차가 얼마나 큰지만 확인됐다고 AFP통신 등이 전했다.

EU 순회의장국인 불가리아는 유럽 외부에서 들어오는 난민들의 주요 기착지인 이탈리아·그리스 등 국가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소용없었다.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유입 난민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독일 등은 여전히 짊어져야 할 부담이 너무 크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헝가리·체코·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은 이탈리아·그리스 등에 발이 묶인 난민들을 절대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버텼다. EU는 오는 28일부터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정상회의에서 최종 결론을 도출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난민에 포용적이었던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서유럽 국가들에까지 반난민 정서가 확대되고 있어 합의안을 도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EU 내부의 균열은 난민정책뿐만 아니라 재정정책, 러시아 제재 등 정치·경제 전반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다자주의 질서 파괴, 압박 전술에 맞서 공동 대응전선을 형성해야 할 EU가 내부에서부터 흔들리면서 통합의 리더십이 발휘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이날 상원에서 열린 오성운동·동맹당 연정 신임안 표결을 앞두고 한 첫 공식 연설에서 “최근 몇 년간 (EU의 압박으로) 이뤄졌던 긴축 정책이 아닌 성장을 통해 공공 부채 감축을 꾀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간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3%를 넘겨서는 안 된다는 EU 규정을 어길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콘테 총리는 “유로존을 통치하는 재정 준칙은 시민들을 돕는 데 목표를 둬야 하며 이탈리아는 EU의 통치 방식에 대한 변화를 협의할 것”이라고 말하는 등 유로존 탈퇴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오성운동과 동맹당 모두 유로존을 탈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언제 국내 여론을 구실로 탈퇴할지 몰라 불안요소다. 여기에 오성운동·동맹당 공히 법인·소득 세율 인하, 연금수령자 확대 등 재정적자를 대폭 늘리는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는 것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경제성장률이 조금씩 상승 흐름을 타고 있어 그리스처럼 구제금융을 신청할 가능성은 아직까지는 낮다. 그보다는 이탈리아가 행여 유로존을 탈퇴하고 긴축재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이 줄줄이 유로존을 탈퇴해 유로 단일통화권 체제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회원국들을 유로 단일통화로 묶고 재정적자에 상한선을 두는 EU 정책에 대한 반감은 상당하다. 2011년 구제금융 이후 허리띠를 졸라맸던 그리스는 오는 8월 구제금융 체제를 졸업한다. 하지만 정부가 이후에도 연금 추가 삭감 등 긴축정책 조치를 이어가기로 하자 노동계는 지난달 31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했다.

러시아 제재에 있어서 EU 회원국들 간 엇박자 행보도 보인다. 콘테 총리는 이날 연설에서 러시아 제재에 동참할지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오성운동·동맹당은 지난 3월 총선 유세 때부터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영국에서 러시아 출신 이중스파이 독살 시도 사건 이후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은 러시아 정부를 배후로 보고 자국 러시아 대사를 추방했지만 오스트리아는 동참하지 않았다. 지난 1월 대통령 연임에 성공한 밀로시 제만 체코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친러 행보를 보였다.

반이민 정서를 등에 업고 집권한 헝가리·폴란드 정부는 EU 흔들기에 앞장서고 있다. 난민정책에서부터 사법부 독립·언론의 자유 보장, 민주주의적 가치 등 모든 부분에서 EU와 전쟁 중이다. 경제력·인구규모에 따른 난민 분담수용을 거부하고 판사 임명 권한을 의회와 정부에 대폭 이양하도록 했다. 특히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사를 문 닫게 하거나 사들여 언론 자유를 탄압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여기에 더해 폴란드는 미국의 이란 제재 동참, 러시아 가스관 직통 연결 프로젝트인 ‘노르드스트림2’ 등 현안에서 독일·프랑스와 맞서고 있다. 폴란드는 대표적인 동유럽 내 친미국가로 이란 제재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르드스트림2는 예전 가스관들처럼 우크라이나를 거치는 게 아니라 발트해를 거쳐 서유럽 국가로 가스관이 직접 연결되도록 한다. 독일·프랑스는 우크라이나에 가스관 통행세를 안 내도 돼 싼값의 가스를 얻을 수 있어서 이득이다. 하지만 러시아를 위협으로 보는 폴란드는 러시아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EU안보에도 위험이 될 것이라며 반대한다.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도 폴란드와 같은 입장이다.

이탈리아가 반EU로 돌아선 상황에서 영향력을 대체할 나라로는 스페인이 꼽힌다. 스페인은 실업률이 낮아지고 신용등급이 올라가는 등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적 혼란상황을 극복했다.

하지만 극심한 정정불안이 아킬레스건이다. 최근 우파 국민당이 지도부의 부패스캔들로 실각한 이후 집권한 사회당이 집권을 위해 이해관계가 다른 정당들을 끌어안으면서 안정적인 리더십을 보여주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당장 카탈루냐 분리독립 세력이 이전 정부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권한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극좌 포퓰리즘 정당 포데모스와 우파 신생정당 시우다다노스 등 극과 극 정당이 한 정부 안에 있어 언제 또 내부 갈등이 고조될지 모른다. 사회당은 전체 350석 중 84석에 불과하다. 연정구성 정당들의 요구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스페인 정부가 일관된 노선을 가지고 EU 정책에 발맞추기는 어렵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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