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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배상문 병장은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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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 후 PGA 투어 복귀 고군분투

군대 가야 할 후배 선수들 주목

배상문 가는 길이 한국 골프 미래

무거운 짐 진 예비역 응원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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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전역신고를 하는 배상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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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문(32)의 어머니 시옥희씨는 "상문이가 돌도 되기 전 핏덩어리일 때 홀로돼 아들을 키웠다. 초등학교 2학년때 반 회장으로 뽑혔는데 '난 교수 할 거 아니고 운동선수가 될 테니 회장 안 하겠다. 운동만 시켜달라'고 하더라"고 기억했다.

시씨는 야구를 하겠다고 조르는 아들에게 골프를 시켰다. "단체운동은 부모의 지원이 매우 중요한데, 아버지 없이 자식을 키우는 나로서는 아들을 제대로 밀어줄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시씨는 단체 종목에서는 팀 내 주전 경쟁 등에서 실력 보다 부모의 입김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세상이 정글처럼 무서운 곳이라고 여기며 외아들을 자신이 지켜줘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배상문은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시씨는 "서울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전국대회를 다니는데 우리는 촌사람이라 전국 대회가 있는 줄도 몰랐다"고 했다. 시씨는 아들에게 비싼 레슨을 시키지 못해 골프계에 영향력이 있는 프로 선생님이 없고, 아버지도 없어 아들이 억울하게 당한 일이 많다고 믿는다.

아마추어로 빛을 못 본 배상문은 고교 2학년때 프로 전향을 결정했다. 이후 실력이 부쩍 좋아졌다. 좀 더 아마추어로 남았다면 병역 특례 혜택이 있는 아시안게임 출전 자격을 얻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지난해 병역을 마치고 PGA 투어에 복귀한 배상문의 성적이 좋지 않다. 군대에 가기 전엔 미국에서 우승도 하고, 시즌 초반 페덱스 랭킹 2위에도 오르기도 했는데 나라를 위한 의무를 하고 나서는 성적이 예전 같지 않다.

국방의 의무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국내 투어 선수들은 다들 군 복무를 마친다. 그러나 해외 진출 선수들은 약간 상황이 다르다. 경쟁자들이 국방의 의무가 없기 때문에 불리한 조건에서 뛰게 된다. 운동선수라 활동기간이 짧고 수입이 많아 병역은 상대적으로 더 부담스럽다. 빠져나갈 구멍도 없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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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후 닉 프라이스의 위로를 받고 있는 배상문. 뒤통수 쪽에 스트레스성 원형탈모로 생긴 구멍이 보인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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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고민을 했을 것이다. 배상문도 심각하게 고민한 듯 하다. 입대 전인 2015년 열린 프레지던츠컵 대회에서 그의 머리에 스트레스성 원형 탈모도 보였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한국, 일본 투어를 정복하고 빅리그에서 2승을 한 배상문이 다시 정상급 선수로 올라서기를 빈다. 이 일이 딱 배상문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PGA 투어를 개척한 최경주나 LPGA 투어에 처음 나간 구옥희처럼 배상문은 군 복무 후 PGA 투어 성공적 복귀라는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다.

아직 병역을 마치지 않은 후배 선수들은 배상문의 예를 주목하고 있다. 배상문이 잘해낸다면 정상적으로 군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겠지만, 배상문이 어려움을 겪는다면 만에 하나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유럽 투어에서 뛰는 김시환 선수는 미국으로 국적을 바꿨다. 100% 군대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영향은 미쳤을 것이다. 배상문의 성적이 나쁘면 한국에서 뛰어난 남자 선수가 나오지 않거나 나오더라도 조국을 외면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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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제네시스 오픈에서 연습라운드를 하는 최경주(오른쪽)과 배상문. 최경주가 PGA 투어를 개척했다면 배상문은 군 복무 후 PGA 투어 성공적 복귀라는 새로운 길을 닦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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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자원이 부족해 젊은이들은 밖으로 나가 월드 베스트와 경쟁해 이겨야 한다. 언어 문제 등으로 그냥 경쟁해도 쉽지 않은데, 남성들은 병역이라는 짐까지 지고 싸워야 한다. 힘겹게 싸우고 있는 청년 중 한 명이 배상문이다.

배상문은 7일부터 남해 사우스케이프에서 열리는 먼싱웨어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 출전한다. 무거운 짐을 지고 싸우고 있는 그에게 응원 한 마디씩 해줬으면 좋겠다. 국군체육부대에 골프를 부활하는 것도 검토했으면 한다. 올림픽 스포츠인 데다 인기도 높은데 골프만 빠지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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