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당사자엔 모독·협박 메시지
“사망 사건으로 피해 인정 길 없어
학교가 구조적 문제 진상규명 해야”
미투 이후 다양한 피해유형 신고
계약직 적극적 징계요구 힘들고
동료들 한마디가 마음의 상처로
직장내 2차 피해·경력 단절도
지난 2월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검사 성폭력사건 진상 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성폭력 고발 운동인 미투(Me Too) 캠페인의 상징인 하얀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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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고 조민기씨의 제자 성추행·성희롱 의혹이 불거졌던 청주대학교 연극학과 졸업생들이 이달 초 여성가족부가 운영 중인 ‘공공부문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특별신고센터’에 피해 구제를 요청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지난 3월 고 조민기씨는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2월 결성된 ‘성폭력 반대 청주대 연극학과 졸업생 모임’ 일원인 전윤환(32)씨는 28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공개적으로 피해를 고발한 이들은 고인이 숨진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소리없는 살인자’, ‘죽이겠다’ 는 등 인격모독이나 협박 메시지에 시달렸고, 정신적으로도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며 “경찰 조사에 응한 재학·졸업생 22명도 뿔뿔이 흩어졌다”고 전했다. 그는 “이미 2016년 학내에서 성추행·성희롱 의혹이 제기됐지만 학교가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는 등 사건 은폐·축소 정황이 있다. 고인을 도와 2차 가해를 한 이들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며 “(경찰조사가 종결된 이후) 연극학과 교수님들을 통해 졸업생까지 포함한 전수조사 실시 등 진상규명을 요청했지만 조처가 이뤄지지 않아 여성부에 신고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또다른 청주대 연극학과 졸업생은 “가해자가 사라졌기 때문에 피해자들로서는 피해를 겪었다는 걸 증명할 길이 없어졌다”며 “학교에서 피해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심리적 치유가 될 텐데 학교는 이러한 조처에 무관심하다”고 말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숨졌으나, 학내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미투’ 운동을 통해서야 세상에 알려지게 된 구조적 문제를 짚어야, 같은 비극이 되풀이 되는 걸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청주대 관계자는 “학교로선 졸업생들을 조사할 권한이 없다. 지난해 의혹이 나왔을 때,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피해조사를 했고, 그 결과를 경찰에 비공개로 제공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되던 와중에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 것”이라며 “재학생 보호를 위해 조사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여성부는 3월8일부터 6월15일까지 100일간 산하기관인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공공부문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특별신고센터’를 설치해 피해 사실을 접수받고, 2차 피해 우려가 높은 사건이나 기존 제도로는 피해 구제가 어려운 사안에 대해 ‘집중 지원’을 하고 있다. 5월24일까지 특별신고센터로 접수된 사건은 886건이며, 청주대 사건을 비롯한 190건에 대한 조사·지원이 진행 중이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어렵사리 ‘미투’를 한 이들이 겪을 수 있는 다양한 피해 유형을 엿볼 수 있는 사건들이다.
공립 초등학교에서 계약직 교사로 일하는 한 여성은 “2016년 같은 학교 교사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당한 이후 지금까지 고통받고 있다”며 특별신고센터 문을 두드렸다. 학교 관리자에 피해를 알렸으나 가해자와 같은 건물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등 분리 조처가 이뤄지지 않았으며, 계약직이라는 신분으로 인해 징계를 적극적으로 요구하기 어려웠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무엇보다 동료 교사들로부터 ‘예민한 것 같다’ ‘남자가 술을 마시면 만질 수도 있지 않느냐’는 말을 듣는 것이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또다른 신고자는 지방에 위치한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여성이다. 2년여 동안 반복된 직장내 성추행 피해를 경찰에 신고해 가해자가 기소된 상태다. 사건을 외부에 알리면서 휴가를 냈지만, 여전히 가해자가 근무 중인 직장으로 복귀를 앞두고 있다. 그가 일하는 기관에선 판결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해자에 대한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국가공무원법에 따르면 성범죄 등으로 조사나 수사를 받는 경우, 직위해제(직위를 유지시킬 수 없는 사유가 있어 직위를 부여하지 않는 것으로 징계와 구분됨)가 가능하지만 해당 기관은 국가공무원법을 적용받지 않는 곳이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은 29일 특별신고센터에 들어온 사례들을 기반으로 성희롱·성폭력 피해자들이 ‘미투’ 이후 일상 복귀를 위해선 어떤 제도적 변화가 필요한지를 논의하는 ‘제5회 이후 포럼’을 열 예정이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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