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별세에 야구계도 슬픔에 빠졌다. 구본무 회장의 야구사랑은 유명했다. 1990년 럭키금성그룹(LG그룹의 옛 이름) MBC청룡을 인수, LG트윈스를 창단을 주도했다. LG는 창단 첫 해인 1990년 예상을 뒤엎는 통합우승(정규리그+한국시리즈)을 차지했고, 4년 뒤인 1994년에는 신바람야구, 자율야구를 기치로 두 번째 우승에 성공했다.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프런트들이 일궈낸 결과물이지만, 창단 때부터 구단주를 맡아 아낌없는 투자를 지시한 구 회장의 결단도 큰 몫을 했다는 평가다.
2007년까지 구단주를 역임한 고인은 동생인 구본준 LG그룹 부회장에게 2008년 구단주 자리를 넘겼다. 구본준 구단주도 야구에 대한 애정이 깊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여자야구에 투자를 하고 있다. 구본무 회장의 바로 아래 동생은 지난해까지 KBO총재를 역임한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다.
지난 20일 별세한 故 구본무 LG그룹 회장. 고인은 생전 야구에 대한 애정으로 유명했다. 사진=ⓒAFPBBNews = News1 |
20일 홈구장인 잠실에서 한화 이글스와 경기가 잡힌 LG는 응원단을 운영하지 않고, 검은 리본을 유니폼에 달고 나섰다. 한화 측 원정 응원단도 운영하지 않았다. 프로야구 OB모임인 일구회는 21일 추도문을 발표했다.
이렇듯 대기업 위주로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는 내로라하는 재벌회장들이 구단주를 맡아왔다. 야구장을 찾는 구단주들의 모습이 중계 화면에 잡히면 화제가 되기도 한다. 이는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도 다르지 않다. 때로는 구단주들이 야구 이슈를 주도하기도 한다.
▲ 37년 동안 구단주 바뀌지 않은 롯데…야구광 구단주 NC
6개 구단으로 출범한 프로 원년 1982년부터 10개 구단으로 덩치가 커진 2018년까지 37년 동안 구단주가 바뀌지 않은 유일한 구단은 롯데 자이언츠다. 롯데는 올해도 구단주 이름에 신격호 명예회장의 이름이 올라와 있다. 흔히 신 명예회장의 2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구단주로 알려져 있지만, 공식적으로 신 회장은 일본 지바 롯데 마린스 구단주를 최근까지 역임했을 뿐이다. 물론 초창기와 달리 신 명예회장이 구단에 미치는 영향력은 줄어들었다. 롯데는 2005년부터 2015년 중반까지 신격호 명예회장의 5촌 조카인 신동인 롯데케미칼 고문이 구단주 직무 대행을 맡았고, 이후에는 신동빈 회장이 사실상 결정권을 행사해왔다.
LG와 한지붕 이웃인 두산 베어스도 LG만큼이나 오너가의 야구사랑이 남다른 구단이다. 구단주를 역임했던 박용오 전 회장은 KBO최초의 구단주 출신 총재로 선출돼, 2000년대 초반 KBO를 이끌었다. 현재 구단주인 박정원 그룹회장도 야구장을 자주 찾는 등 직접 야구단을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 두산이 KBO리그의 강자로 거듭난 것도 구단주의 남다른 애정 때문이라는 평가다.
2011년 창단한 NC다이노스도 구단주인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의 야구사랑은 널리 알려져 있다. KBO 9구단인 NC의 창단 자체가 야구광인 김택진 대표의 바람이었다.
하지만 이런 애정과 달린 실질적인 구단주들의 역할은 점점 축소되는 모양새다. 대기업이 모체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룹 현안에 신경 써야하기에 야구단은 뒷전으로 밀리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구단들이 구단주 대행을 선임하거나, 구단 대표이사들이 구단주 업무를 대신하는 게 현실이다.
2018년 현재 구단주만 있는 팀은 롯데, NC, SK, LG다. 구단주가 있으면서 구단주대행이 있는 팀은 KIA, 두산, 넥센이다. 구단주가 있고 구단주대행겸 대표이사가 있는 팀은 한화와 kt다. 구단주는 없고 구단주겸 대표이사가 있는 팀은 삼성이 유일하다.
지난해 우승팀 KIA타이거즈는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이 구단주이지만 박한우 기아자동차 사장이 구단주대행을 맡고 있다. 두산도 박정원 회장이 구단주이지만, 정지택 전 두산중공업 부회장이 대행으로 돼 있다. 넥센 히어로즈는 박세영 구단주에 차길진 구단주 대행이다. 최대주주인 이장석 전 대표는 명목상 구단에 아무런 직함을 맡고 있지 않다. 삼성은 지난해말 취임한 임대기 대표이사가 구단주를 겸임한다. 명목상 구단주를 두기보다, 실제 구단을 경영하는 사람이 구단주를 맡기로 한 것이다.
지난 2013년 1월 제10구단을 승인하는 정기총회가 열린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이날 총회에는 구단주가 아니라 구단주대행들이 참석해 빈축을 샀다. 사진=MK스포츠 DB |
▲ 구단주 없는 총회…산업화 규모의 차이인가
시대의 흐름이라지만, 구단주 대행의 증가는 KBO 최고 의결기구인 총회의 역할도 줄어들었다는 얘기로 받아들일 수 있다. KBO 규약에 따르면 총회는 총재 및 각 회원의 구단주(또는 구단주 대행)로 구성된다. 총회는 1. 정관의 변경 2. 가입금의 부과와 그 징수방법 3. 회원 자격의 취득, 변경, 정지및 제명 4. 총재의 선출과 해임 5. 이 법인의 해산 등 막중한 사항을 의결한다고 돼 있다.
프로야구 출범 후 1990년대 초반만 해도 구단주들이 직접 참석하는 구단주총회는 KBO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 역할을 다했다. 하지만 지난해말 정운찬 총재 선임도 총회 대신 서면결의로 대신했다. 2013년 1월 제10구단 kt위즈의 창단을 승인하는 총회에서는 구단주가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대행이나 대행을 겸하는 대표이사들이 새 식구를 받는 결정을 내렸다.
최근 구단주가 직접 참석한 총회는 2015년 5월19일 열린 정기총회다. KBO에 따르면 당시 총회에는 두산 박정원 구단주, NC 김택진 구단주, SK 최창원 구단주(SK케미컬 부회장)가 참가했다.
메이저리그는 경기 규칙을 바꿀 때도 구단주 회의를 열어서 의사결정을 한다. KBO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는 산업화를 지향하는 프로야구의 냉혹한 현실이라는 지적도 있다. 즉 메이저리그는 구단이 막대한 수익을 내기 위해 구단주들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 홍보수단으로 시작된 프로야구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최근 들어 산업화 논의가 활발한 KBO도 구단주들이 현안을 직접 챙기는 모습이 없다는 게 아쉽다는 의견이 많다. 한 관계자는 “경영은 CEO인 구단 대표이사들이 한다고 해도, 결국 돈을 쓰고 버는 문제는 구단주의 영역이다. 프로야구가 한 단계 더 발전하려면 구단주들이 더 챙겨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jcan1231@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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