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넘거진 ‘미투 가해자’ 17명 불과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지난 1월 국내 ‘미투’ 운동이 촉발된지 100일이 지났지만 영화감독 김기덕, 배우 조재현, 음악인 남궁연 등 일부 유명인들의 미투 의혹에 대한 폭로만 나왔을 뿐 경찰 수사는 아직 시작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9일 경찰청에 따르면 현재까지 미투 운동과 관련해 총 70명에 대해 성폭력 의혹을 살펴보고 있다. 이 가운데 21명에 대해선 정식 수사를, 15명에 대해선 내사를 진행 중인데 유명인은 각각 10명, 7명이 포함돼 있다. 나머지 34명에 대해선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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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의혹이 잇따른 남궁연이나 복수의 여배우를 성폭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김기덕의 경우 피해자들이 진술을 꺼려해 여전히 내사 단계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일부 피해자들은 남궁연을 상대로 고소하겠다는 입장도 밝혔지만 사건이 친고죄가 폐지되기 전인 2013년 이전에 발생한 탓에 고소기간을 이미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김기덕과 마찬가지로 여배우를 성폭행했다는 의혹을 받는 조재현의 경우 피해자들이 특정되지 않아 내사 이전 단계인 사실관계 확인 단계에서 거의 진척이 없는 상태다.
성폭력 의혹이 불거지면 경찰은 우선 ‘사실관계’ 확인을 통해 피해자를 특정한 뒤, 피해자와 접촉해 피해 진술을 확보하는 ‘내사’ 단계를 거친다. 이후 가해자에 대한 혐의가 포착되면 ‘정식 수사’로 전환한다.
남궁연이나 김기덕 사건의 경우 피해자들은 특정됐지만 이들이 보복이나 2차 피해를 우려해 진술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폭력 수사에 있어서 피해자들의 직접 진술이 관건이라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 관계자는 “각 정부 부처에서 성폭력 신고센터를 운영하면서 상담과 신고를 도와주고 있지만 피해자들의 자발적인 제보가 없으면 수사가 쉽지 않다”며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자발적으로 신고하고 직접 진술할 때까지 기다려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투 운동 이후 다수의 성폭력 의혹이 불거졌지만 현재까지 성추행 및 성폭행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넘겨진 가해자들은 17명에 불과하다. 이 또한 피해자들이 보복이나 2차 피해를 우려해 피해사실 진술을 꺼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피해자들의 용기로 법적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된 이들도 있다. 연극연출가 이윤택, 경남 김해 극단 번작이의 조증윤 전 대표, 만민중앙성결교회의 이재록 목사 등이 대표적이다.
조증윤은 2007년부터 2012년까지 극단 사무실과 승용차 등에서 미성년자 단원 2명을 수차례 성폭행하고 추행한 혐의로 지난 3월 문화계 인사로는 처음으로 구속됐다.
이윤택은 지난 1999년부터 2016년 6월 소속 극단 단원 17명을 상대로 62차례에 걸쳐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저지른 혐의로 지난달 구속기소됐다. 이날 이윤택의 첫 재판절차가 진행된다.
이재록 목사는 수년간 만민중앙교회 여신도들을 성폭행한 혐의로 지난 3일 구속됐다. 경찰은 이 목사가 대형 교회 지도자로서 지위와 권력, 피해자들의 신앙심 등을 이용해 피해여성들을 저항하기 어려운 상태로 만들어 성폭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공개적인 미투 폭로에도 불구하고 부실 수사로 매듭짓는 경우도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내 미투 운동의 방아쇠를 당긴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하고 인사상 불이익을 준 혐의를 받는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이 대표적이다. 안 전 국장은 지난달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서 검사의 폭로로 검찰 성추행 진상조사단이 꾸려진 지 82일만이다. 성추행 의혹은 서 검사가 고소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소시효가 만료돼 기소대상에서 제외됐다.
일각에선 검찰이 안 전 국장에 대해 늑장 수사를 한 후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 1월 29일 서 검사의 성추행 폭로로 진상조사단이 곧장 꾸려졌지만 안 전 국장은 한 달 뒤에서야 소환 조사했고, 구속영장은 지난 4월 16일에서야 청구했다. 이마저도 안 전 국장을 구속기소해야 한다는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의 권고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사실관계나 법리적인 면에서 범죄성립 여부에 대해 다툴 부분이 많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서 검사는 지난 1일 열린 ‘서지현 검사를 지지하는 여성 국회의원 간담회’에 참석해 “조사단은 수사 의지와 능력, 공정성이 결여된 ‘3무(無) 조사단’이었다”며 “조사단 명칭에서 보듯 처음부터 직권남용에 대한 수사 의지는 없었다”고 비판한 바 있다.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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