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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난민과 국제사회

[남수단 난민캠프를 가다] 전쟁 고아 삼형제의 새로운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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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월드비전 공동기획 - 나는 난민 아이입니다

우간다 임베피 난민 정착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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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간다 북서부에 위치한 아루아주. 황토색 흙길을 따라 중심지에서 차로 2시간을 달리면 ‘임베피 난민 정착촌’이라 적힌 흰색 표지판이 나온다. 경계도 검문도 철조망도 없었다. 머리에 물통을 인 여성들과 삼삼오오 걸어가는 학생들, 그늘에서 더위를 피하는 노인들. 구호단체 로고가 박힌 텐트만 없다면 우간다의 여느 마을과 별 차이가 없었다.

지난달 16일(현지시간)부터 3일간 임베피 난민 정착촌을 방문했다. 우간다로 넘어온 남수단 난민 12만명이 머무는 곳이다. 이 중 약 60%가 18세 미만 아동이다. 아이들은 평화로웠지만, 이면에 가진 상처는 결코 얕지 않았다. 부모의 죽음을 목격했거나 성폭행과 폭력으로부터 살아남은 아이들이 많았다. 전쟁은 아이들에게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 아이들은 이를 어떻게 치유해가고 있는지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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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이 파괴한 일상

남수단 내전은 5년째 ‘현재진행형’이다. 2011년 북부 수단과의 오랜 내전을 끝내고 독립국가를 선포했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2013년 살바 키르 대통령(딩카족)이 리에크 마차르 부통령(누에르족)을 해임한 것을 계기로, 남수단 내부에서 종족 분쟁이 또다시 격화됐다. 딩카와 누에르는 물론 다른 소수 종족도 내전의 총성을 피해가지 못했다. 같은 종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까닭 없이 죽이고 죽는 경우가 늘었다.

현재까지 남수단 국경을 넘은 난민은 247만명. 전체 인구의 약 20%다. 우간다로 피신한 남수단 난민은 약 105만명이고, 그중 81만명(60%)이 아동이다. 어른보다 아이들이 더 많은 셈이다. 지금은 하루 평균 180명 수준으로 줄었지만, 내전이 정점에 달했던 지난해 2월에는 하루 평균 2000명이 국경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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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국경을 넘으면 이들의 정보는 우간다 정부가 개발한 ‘난민 정보 관리’ 프로그램에 등록된다. 어느 마을에서 왔는지, 혼자 왔는지, 오는 동안 부모를 잃었는지, 성폭행이나 폭력을 당하지는 않았는지 기초적인 조사가 이루어진다. 간단한 건강검진도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특별히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가려진다. 국제구호단체들은 부모를 잃은 아이를 ‘보호자 없는 아동’으로 분류해 흰색 팔찌를 채운다. 싱글맘의 자녀, 65세 이상과 함께 온 아동, 성폭행 피해를 겪은 아동, 간질 등 만성질환을 앓는 아동은 ‘특별 관리가 필요한 아동’으로 분류해 노란색 팔찌를 채운다.

2018년 2월 기준 임베피 난민 정착촌에는 약 7만명의 아동이 있다. 이 중 보호자 없는 아동은 총 1390명이다. 부모는 잃었지만 친척은 있는 아동까지 합치면 그 수는 5540명으로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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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7일 임베피 난민 정착촌에서 만난 데니스 로민수크(15)는 ‘보호자 없는 아동’이다. 로민수크는 착한 아들이었다. 학교 끝나고 동네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오는 게 일과 중 하나였다. “해지기 전에는 들어와야 한다.” “공부 열심히 해서 나중에 부모님 부양해야 한다.” 어머니의 익숙한 잔소리가 로민수크는 싫지 않았다.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도 어머니와 약속한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식탁에는 어머니가 차린 저녁밥이 준비되어 있었다. 어머니의 어떤 음식을 가장 좋아했냐고 묻자 로민수크는 “닭고기 요리”라고 수줍게 답했다. 무표정한 로민수크의 얼굴에 잠시 웃음이 스쳤다.

일상이 깨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지난해 2월21일, 로민수크의 집에서 약 2㎞ 떨어진 시내에서 무력 충돌이 있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내전이 심해졌다고는 해도 수도 주바에서 200㎞나 떨어진 집까지 군인들이 내려올 줄은 몰랐다. 아버지는 “여기까지 오지 않을 것”이라며 가족들을 달랬지만 어머니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일단 아이들만이라도 데리고 마을 인근 숲으로 피신하겠다고 했다.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혼자 남아 집을 지키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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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자 어머니의 근심은 더욱 깊어졌다. “누나랑 같이 아버지 데리고 올 테니까 동생들 잘 보고 있어.” 어머니는 함께 가겠다는 로민수크를 막았다. 그러나 로민수크는 말을 듣지 않았다. 동생 마르틴(13)과 삼손(10)을 두고 어머니와 누나 뒤를 쫓았다. 혹시 몰래 따라온 사실을 들킬까 싶어 집 맞은편 풀숲에 몸을 숨겼다. 로민수크가 집에 도착했을 때 마을에는 이미 빨간색 모자와 카키색 군복 차림의 장총을 멘 군인 스무 명이 깔려 있었다. 집 앞마당엔 가슴 쪽에 총상을 입은 아버지의 시신이 보였다.

그때 옆집에서 나온 군인들이 마당에 있던 어머니와 누나를 발견했다.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한 어머니가 군인들의 총에 맞아 숨졌다. 누나는 집 뒤편으로 도망갔으나 지금까지 생사를 알 수 없다. 열다섯 살 로민수크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로민수크는 눈물을 훔치며 동생들이 있는 풀숲으로 되돌아갔다. 한 마을에 살던 이웃 20여명과 함께 피란길에 올랐다.

로민수크 형제가 우간다 국경 난민 대기소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사흘 뒤의 일이다. 사흘 동안 먹은 것이라곤 길에서 따먹은 망고가 전부였다. 밤에는 근처 나뭇잎들을 모아 잠자리를 폈다. 무장한 군인들을 만난 적도 있었지만, 옷과 가방을 뜯긴 이웃들과 달리 챙겨온 짐이 없어 위기를 넘겼다. 로민수크에게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했을 때의 심정을 조심스레 물었다. “마음은 엄마가 괜찮은지 보고 싶었지만 머리는 그러면 안된다고 했어요.” 줄곧 담담하던 로민수크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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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전이 만들어준 가족

사실 로민수크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양어머니 해리엇(35)을 만났기 때문이다. 해리엇이 로민수크 형제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2월24일 우간다 국경의 난민 대기소에서였다. 해리엇 역시 내전으로 남편과 부모를 잃은 상태였다. 혈육이라곤 여섯 살과 세 살배기 두 딸만 남았다. 동병상련이었을까. 대기소 바닥에 딸들을 위한 잠자리를 마련하던 해리엇이 로민수크 형제에게 말을 걸었다. “엄마 아빠는 어디에 있니? 혹시 잘 곳 없으면 여기 와서 자라.” 로민수크 형제는 사흘 만에 처음으로 어른의 보살핌을 받았다.

그렇다고 해도 처음 본 아이들을 식구로 들이는 것은 해리엇에게도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다음날 로민수크가 해리엇에게 따라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해리엇은 처음에는 이를 거절했다. “아이가 3명이나 되는데 나는 두 딸 말곤 아무도 없잖아요. 아이들이 오랫동안 걸어온 흔적이 눈에 보였고, 병에 걸렸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혼자 감당할 수 있을까 겁이 났어요.”

그러나 완전히 외면하기엔 로민수크 형제의 모습이 너무 절망적이었다. 결국 해리엇은 로민수크 형제의 요청을 승낙했다. 이들을 포함해 6명 가족으로 난민 등록을 마쳤다. 남편을 잃은 해리엇은 이제 로민수크 형제를 ‘새로운 아들’로 여기며 산다고 했다. 내전의 아픔을 공유한 이웃들이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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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애에만 호소할 수는 없다. 국제구호단체 월드비전은 보호자 없는 아동들을 다른 난민 가정에 연결해주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른바 ‘양육 가정’ 제도다.

월드비전은 난민들의 개인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해 ‘양육 은행’을 구축했다. 구성원들의 나이, 가족관계, 종족 등을 분석해 적절한 양육 가정을 연결해준다. 성인 남성 1인 가구와 여자 아동의 연결은 피하고, 가족을 해친 군인과 같은 종족으로의 입양은 배제하는 식이다.

양육 가정으로 선정된 이들은 현금 235달러(약 25만원)를 지급받는다. 일종의 인센티브다. 100달러는 아동을 위한 가구 구입비로, 나머지 135달러는 난민촌 내에서 창업을 할 수 있는 자립 비용으로 용처를 제한했다. 현재 임베피 난민센터에는 총 493개의 양육 가정이 있다. 난민 유입이 급증했던 지난해 2월 일시적으로 양육 가정이 모자란 적은 있었지만, 현재는 취약 아동의 100%가 양육 가정에 연결돼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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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양육 가정에서 학대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임베피 난민 정착촌의 월드비전 아동보호 담당자 이블린 아팀(33)은 “어떤 사람들은 양육 가정이 되면 돈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아이들을 입양한 뒤 폭력을 가하거나 방치하는 일도 생긴다”고 말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월드비전은 임베피 난민 정착촌에만 총 13명의 전문 사례관리직원을 두고 있다. 1인당 최대 300명의 취약 아동을 관리한다. 이상적인 비율은 1명당 45명이지만, 예산이 부족해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 빈틈은 다른 난민촌 주민들의 도움으로 메운다. 마을마다 아동보호위원을 두고, 담당 구역에서 학대 사실을 포착하는 즉시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 전쟁의 상처 치유하는 ‘놀이’

부슬비가 내리던 지난달 16일. 임베피 난민 정착촌 내 등록센터를 찾았다. 난민 등록을 마치고 정식으로 집을 배정받기 전까지 머무르는 임시 숙소다. 등록센터 한쪽에서는 ‘핫밀’이라 불리는 식사 배급이 한창이었다. 메뉴는 옥수수로 만든 떡과 콩으로 쑨 죽. 양동이나 양은 그릇을 든 아이들이 비를 맞으며 차례를 기다렸다. 5~6인분의 식량을 받아 임시 숙소에 있는 가족들과 함께 먹는다고 했다.

아이들은 웃음이 많았다. 전쟁의 고통을 피해 이곳에 온 아이들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밝았다. 천막 내부에서 비를 피하던 아이들이 취재진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사진기를 갖다대자 수줍어하면서도 피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말없이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찍은 사진을 보여주자 서로의 모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까르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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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든 아이들이 같은 무게의 고통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식량 배급소 한쪽에 서 있던 필립 메나(14)는 시종일관 몸을 떨었다. 노란 반팔티 아래로 팔에 돋은 닭살이 보였다. 급한 대로 현지 직원이 셔츠를 건넸지만 몸의 떨림은 가라앉지 않았다. 신체적 반응뿐만이 아니었다. 또래 아이 여덟 명이 왁자지껄한 웃음을 터뜨리는 와중에도 메나는 먼발치에서 바라만 봤다. 그와 함께 수도 주바의 아지우 마을에서 피란을 왔다는 이웃 주디 타부(34)에게만 엷은 미소를 띠었다. 유난히 가는 메나의 팔목에 하얀 팔찌가 선명했다.

메나의 트라우마는 부모를 잃은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도 깊었다. 현지 직원의 도움을 받아 부모님에 관한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메나는 대답 대신 검지를 들어 목 주변을 베는 시늉을 했다. 군인들이 부모님을 칼로 해치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뜻이다. 월드비전 아동보호 직원들은 심한 정신적 후유증을 호소하는 아이들을 전체의 3~5%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의료진의 약물치료나 상담 등 보다 전문적인 관리가 필요한 아이들이다. 임베피 난민 정착촌에서는 국경없는의사회 등 다른 구호단체들이 이 같은 치료를 제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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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95% 아이들의 트라우마는 어떻게 치료할까. 구호 전문가들이 꼽는 가장 좋은 방법은 ‘놀이’다. 월드비전 아동보호 매니저 제임스 카미라는 “심한 정신적 충격으로 의료 지원이 필요한 아이들은 소수”라며 “대부분의 아이들은 회복 탄력성이 있어, 비의료적인 방법으로도 충분히 일상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실제로 구현한 공간이 아동 친화 공간(CFS·Child Friendly Space)이다. 쉽게 말해 아이들이 안정감을 느끼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거나 게임을 하는 등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활동을 한다. 아이들이 받았을 충격과 심적 고통을 덜어주는 기능을 한다. 카미라는 “보통 구호사업을 하다보면 식수나 식량같이 눈에 보이는 사업에만 집중하기가 쉽지만, 아동 보호의 관점에서 CFS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며 “예산 우선순위에서 밀릴 때도 있지만 되도록 모든 난민캠프에 CFS를 설치하려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17일 임베피 난민 정착촌 CFS에도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가로, 세로 100m 규모의 큰 공터 왼쪽에 그네 4개와 시소 2대 등 간단한 놀이기구가 있었다. 많은 아이들이 사용하기엔 부족한 시설이지만 아이들은 마냥 즐거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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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을 만드세요!” 검은 스카프를 머리에 두른 마카 스카이프 선생님(28)이 소리쳤다. 아이 400여명이 스카이프 선생님 주위로 일사불란하게 모였다. 서로의 손을 맞잡고 둥근 원을 만들었다. 정해진 율동에 맞춰 허리와 엉덩이를 씰룩거리기 시작했다.

“여러분 행복하세요?” 스카이프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이따금 질문을 던졌다. 굳이 질문을 반복적으로 던지는 이유가 있냐고 물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합죽이가 됩시다’처럼 집중을 유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행복해요!” 질문에 답하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CFS는 아이들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도 직접적인 도움을 준다. 대표적인 것이 미술 심리치료다. 임베피 CFS에서는 25명씩 그룹을 지어 그림을 그리는 활동을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부모님의 죽음을 목격한 경험,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진 경험 등을 자연스럽게 털어놓는다. 내전이라는 공동의 경험을 공유했기에, 아이들은 이 과정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카미라는 “일대일 대화보다 미술이나 연극 치료가 아이들의 경험을 끌어내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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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간다에 있는 남수단 아동들은 다른 곳에 비해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했다. 우간다 정부는 난민 수용에 우호적이고,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적인 구호 인력도 상주하고 있었다. 늘 내전의 위협에 시달려야 하는 남수단보다 차라리 이곳 우간다에 머무르는 게 아이들에게는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아이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인터뷰 말미, 로민수크에게 ‘남수단으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었다. 그는 곧바로 “그렇다”고 답했다. ‘남수단에서 힘든 일을 많이 겪었는데도 돌아가고 싶냐’고 재차 물었지만 대답은 변하지 않았다. 남수단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공간이기도 하지만, 부모님과의 추억이 깃든 공간이자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이기도 했다. 아무리 체계적인 지원도 ‘전쟁을 하지 않는 것’ 이상의 해답이 될 수는 없다.

▶난민촌 내 유치원 30%는 우간다학생

인프라 나누는 ‘공존’ 정책

“난민들의 파라다이스.”

지난해 4월 네덜란드 공영방송 NOS가 우간다의 난민 정책을 소개하며 쓴 표현이다. 우간다 정부의 포용적 난민정책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우간다는 남수단 난민 약 105만명을 수용하고 있다. 양적인 측면뿐만이 아니다. 우간다 정부는 난민들에게 이동의 자유와 구직의 자유를 인정한다. 의료 등 공공서비스에 대한 접근도 허용한다. 애초 배정된 난민 캠프가 아닌 다른 곳에 정착하겠다고 해도 제재하지 않는다.

우간다 정부의 전략은 ‘공존’이다. 구호단체가 난민에게 지급하는 자원 중 30%는 현지 주민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리호프 정책’을 시행 중이다. 인프라를 확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구호 단체들의 자원을 이용하자는 묘안을 낸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동친화공간(CFS)이다. 우간다 정부는 난민촌 내 CFS를 운영할 때 유치원도 함께 지으라고 강제하고 있다. 그중 30%는 우간다 학생으로 채워야 한다. 아루아주에 있는 ‘임베피 난민 정착촌’의 경우 유치원 교사 12명 중 5명이 우간다인이다.

다만 우간다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난민 유입 속도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017년 우간다 정부와 유엔난민기구(UNHCR)가 발표한 ‘남수단 난민 대응 계획’에 따르면, 국제사회의 후원은 목표액의 34%에 그쳤다. 실업률이 높은 일부 북부 지역에서는 현지 주민들과 난민들의 갈등도 위험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월드비전 홈페이지(www.worldvision.or.kr)를 통해 세계 곳곳의 분쟁피해지역 아동보호 캠페인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아루아|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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