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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시험대에 오른 중국의 '미투'…베이징대생 탄압 고발에 '술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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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대 여학생 '웨신', SNS에 대학 당국 '미투 탄압' 고발

대학가에 '5·4운동 정신 지키자' 벽보도…"中 미투 한계 시험"

(서울=연합뉴스) 정재용 기자 = 중국 정부와 대학 당국의 조직적인 검열과 방해에도 대학가를 중심으로 전개 중인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있다.

중국 당국의 효과적인 SNS 통제로 소강상태에 머물던 중국 대학가의 미투 운동이 다시 수면위로 부상한 것은 베이징(北京)대의 한 여학생이 대학 당국의 미투운동 탄압 사례를 고발한 것이 계기가 됐다.

'웨신'이라는 이름의 베이징대 여학생은 24일 SNS에 글을 올려 자신이 대학 당국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가 '협박'과 '탄압'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웨신은 SNS에 올린 글을 통해 베이징대의 한 교직원이 지난 23일 새벽 1시께 자신의 어머니를 대동하고 기숙사로 찾아와 20년 전 베이징대에서 발생한 가오옌(高岩) 성폭행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자신을 겁박했다고 고발했다.

앞서 베이징대 사회학과 1995년 졸업생으로 캐나다에 체류 중인 리유유(李悠悠)는 지난 7일 중국 인터넷 매체에 '선양(沈陽) 교수를 실명 고발한다'는 글을 올려 1998년 자신의 베이징대 중문과 친구였던 가오옌이 선양 교수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뒤 고통을 겪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베이징대를 중심으로 중국 대학가에서는 선양 교수의 가오옌 성폭행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선양 교수는 현재 베이징대가 아닌 중국 내 다른 대학의 교수로 재직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웨신은 지난 20일 베이징대 학생 7명과 함께 대학 당국에 1998년 선양 교수 성폭행 의혹 사건과 관련한 정보를 밝히라고 요구하는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웨신은 SNS에 올린 글에서 교직원은 자신의 휴대전화와 랩톱 컴퓨터에 저장된 가오옌 성폭행 의혹 사건과 관련한 자료를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고 폭로했다.

특히 웨신은 교직원이 "무사히 졸업할 수 있겠느냐"고 협박을 했으며, 자신의 어머니에게는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대학가 미투 운동



베이징대 당국의 미투 운동 방해를 고발하는 웨신의 글은 온라인을 통해 광범위하게 퍼져 나갔으며, 베이징대에는 웨신의 행동을 지지하는 벽보가 걸리기도 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우리의 용기 있는 웨신을 지지하며'라는 제목의 벽보에는 "여러분들은 진정 무엇을 두려워 하는가"라면서 대학생들의 미투 운동 동참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고 NYT는 전했다.

벽보에는 웨신이 5·4 운동의 정신을 일깨웠다고 찬양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5·4운동은 1919년 5월 4일 중국 베이징의 학생들이 일으킨 항일운동이다.

이 벽보는 베이징대 당국에 의해 곧바로 철거됐다. 현재 웨신이라는 이름과 웨신의 글은 중국 인터넷상에서 검역을 받아 검색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누리꾼들은 당국의 검열을 피하고자 이더리움과 같은 가상화폐(암호화폐) 거래 네트워크망에 관련 글들을 올리고 있다.

NYT는 '여러분들이 진정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학생들이 중국 미투 운동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중국 대학가에서 전개 중인 미투 운동과 당국의 방해 움직임에 대해 자세히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일본 아사히(朝日) 신문 등 외신들도 최근 중국 대학가에서 진행 중인 미투 운동의 추이에 대해 잇따라 보도하고 있다.

아사히 신문은 가오옌 성폭행 의혹 사건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구한 여학생이 대학 당국의 압력을 받고 고향 집에 사실상 연금상태에 놓여 있으며, 대학 당국의 압력을 폭로하는 글을 연금상태에서 인터넷에 올렸다고 전했다.

앞서 WSJ는 지난 23일 자를 통해 중국 정부가 미투 운동 확산을 막기 위해 SNS에 게시되는 대학생들의 성폭행 피해 사례 글들을 철저하게 검열해 삭제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어 24일 자에도 웨신의 SNS 글을 계기로 번지고 있는 검열 논란을 상세히 전했다.

실제로 중국의 포털 사이트 바이두(百度)에서 '#미투'(# Me Too)를 검색하더라도 관련 글들을 제대로 찾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중국의 누리꾼들은 한때 '미투'의 중국어 발음과 유사한 '미투'(米兎·쌀토끼)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대신 사용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미투'(米兎)라는 단어로 검색하더라도 미투 운동 관련 글들을 찾기 어렵다.

중국 당국의 미투 운동 억압을 비판하는 중국내 지식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저명한 법학자인 허웨이팡(賀衛方) 베이징대 교수는 NYT에 "진실을 규명하려는 학생들의 요구는 그들이 사회적 책임감이 있다는 증거"이라면서 "대학 당국은 과거에 발생한 사건(가오옌 성폭행 의혹 사건) 뿐 아니라 막 발생한 일(웨신 관련 사건)에 대해서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jj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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