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밉상' 리드, 야유 속 마스터스 우승
경쟁자 응원 함성에도 꿋꿋이 버텨
과거 반성 기대한 취재진에 '한 방'
풍상 겪고 달라진 우즈처럼 바뀔까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올해 마스터스 우승자 리드. 실력은 뛰어나지만, 품성은 그에 못 미친다는 평가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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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는 딱 밉상이다. 대학 시절 경기 중 부정행위에 이어 팀 내에선 도둑질을 했다고 알려졌다. 그래서 팀에서 쫓겨나기도 했는데 실력은 좋아서 옮겨간 대학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프로 선수가 돼서도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할 정도로 오만한 품성이라고 한다. 대회장에서 경찰을 시켜 부모를 쫓아낸 일도 있다.
그래서 사람 좋은 매킬로이가 우승하기를 바란 것이다. 기자도 내심 그가 우승하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했다. 리드 자신이 복잡한 가족사의 피해자일 수도 있겠지만 정도가 심했다고 생각한다.
리드는 적대적인 분위기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경기했다. 오히려 그런 부정적인 힘을 자신이 유리하게 이용하는 듯도 했다. 매킬로이가 녹아내렸다. ‘착한 사람은 꼴찌’라는 미국 격언이 연상됐다.
매킬로이가 무너진 후 또 다른 ‘굿가이’ 조던 스피스가 추격했다. 그러나 리드는 스피스를 응원하는 갤러리의 함성이 천둥소리처럼 쩌렁쩌렁 울리는 아멘 코너에서 흔들리지 않았다. 리드는 끄덕하지 않았다. 요즘 말로 ‘멘털 갑’ 이었다.
심지어 악동은 골프의 신의 행운도 얻었다. 13번 홀에서 리드가 친 공은 개울 옆 경사지에 떨어졌는데 굴러내려 가지 않고 멈춰섰다. 16번 홀에선 1m만 짧았다면 물에 빠졌을 공이 그린 위에 올라갔다.
마지막 홀에선 다른 선수들이 긴장해 곧잘 놓치던 1m 정도의 파 퍼트를 홀에 떨어뜨리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당당하게 그린재킷을 입었다.
미국 기자들도 리드의 우승을 바라지 않았던 것 같다. 우승 기자회견장 분위기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의례적인 질문 몇 개가 오간 후 이런 물음이 나왔다.
Q : 1번 홀에서 매킬로이에 대한 응원 소리가 더 크던데 인기 있는 선수가 되고 싶지 않은가.
A : “사람들이 그를 응원하는 것이 놀랍지 않았다. 이전에 나보다 성적이 좋았다. 내 승부욕을 더 자극했다. 오히려 긴장감을 줄이는 결과가 됐다. 나는 내 골프를 할 뿐이다. 좋은 경기를 하면 사람들은 박수를 보내게 돼 있다.”
Q : 세계 최고 5명 이내에 든다는 발언을 후회하나, 아니면 그걸 증명했다고 여기나.
A : “솔직히 후회하지 않는다. 내 발언을 고수하겠다. 나는 골프를 잘했다.”
Q : 이 순간을 부모와 함께 하지 못한 것이 섭섭하지 않은가.
A : “나는 여기 오거스타에 골프 하러, 우승하러 왔다.”
질문한 기자들은 그가 마스터스 우승을 차지하면서 과거의 행적들을 후회하고, 속죄한다는 답을 하기를 원했다. 얼마나 멋진 이야기가 되겠는가. 그린재킷을 입으면서 새롭게 태어난 탕자. 그러나 질문의 뜻을 리드는 정확히 파악하고, 세 번 모두 명쾌하게 거부했다.
곰곰 생각해 보면 그의 말은 틀린 게 없다. 그는 우승으로 비판자들을 잠재웠다. 실력으로 눌러버렸다. 미국의 유명한 골프 기자인 데이비드 킨드레드는 “불완전한 인간의 완벽한 승리”라고 표현했다.
2018년 마스터스는 다시 일깨워줬다. 스포츠는 인격 테스트가 아니며, 세상이 항상 공평하지 않고, 항상 정의롭지도 않다는 것을. 불완전한 패트릭 리드처럼 골프나 세상이 완전치 않다는 것을 다시 알게 해준다. 골프의 성인이라 불리는 보비 존스가 만든 성스러운 장소, 오거스타 내셔널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영화 카사블랑카(1942) 등으로 유명한 20세기 명배우 험프리 보가트는 “내가 대중에게 빚진 것은 좋은 연기 뿐"이라고 했다. 보가트는 술 때문에 문제가 잦았고, 결혼은 네 번 했다. 그래도 그는 배우는 연기만 잘하면 된다고 여겼다. 일리가 있다. 배우는 연기를 잘해야 하고, 스프린터는 잘 뛰어야 하며 소방관은 불을 잘 꺼야 한다. 리드는 골프를 잘 쳤다. 긴장감에 무너져버린 로리 매킬로리 보다 훨씬 잘 했다.
이번 마스터스에서 놀란 점이 있다. 팬들을 매몰차게 대했던 타이거 우즈가 요청도 받지 않았는데 장갑에 사인을 한 뒤 장애인에게 건네주고 악수를 하는 장면이었다. 허리가 아파 풍상을 겪은 후 우즈는 많이 달라졌다. 아직 젊은 패트릭 리드도 철이 들기를 바랄 뿐이다. 달리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오거스타에서>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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