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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향기롭게 소비하는 법… 꼭, 선물만 있는 게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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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향기롭게 소비하는 법… 꼭, 선물만 있는 게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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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이후 화훼시장의 변화
꽃은 더 이상 큰돈을 들여서 선물하는 상품이 아니다. 소박하지만 내가 즐기는 상품으로 변하고 있다. 꽃 소비량과 생산농가는 계속 줄고 있지만 전국의 꽃가게는 늘었다. ‘꽃 자판기’ ‘꽃 정기구독’ ‘편의점 꽃’ 등 새로운 유형의 꽃 소비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 이후 고가의 선물용 대신 나를 위한 꽃 소비가 젊은층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화훼시장 유통구조를 투명화하려는 노력도 시행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분 잔잔한 바람이 10년 넘게 얼어붙기만 한 한국의 꽃시장을 녹일 봄바람이 될지 주목된다.






지난 23일 세종시 종촌동의 꽃집 주인 정태금씨는 노란색 프리지아와 빨간색 제라늄, 파란색 수국 등과 함께 ‘만원의 행복’이라는 팻말을 걸었다. 매주 금요일 작은 꽃다발을 1만원에 파는 이벤트를 연다. 입소문이 나 금요일에 찾아오는 고객들도 적지 않다. 11년째 꽃집을 운영 중인 정씨는 “특별한 날이 아닌 평소의 생화 판매로만 치면 요즘이 가장 좋다. 개인적 주문이 많아 파는 품목들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행복’이란 키워드에 고객들이 반응한다는 것이다. 정씨는 가게 근처 직원 8명 규모의 농기계회사에 매주 4만원어치의 꽃을 배달한다. 직원 1인당 일주일에 5000원을 꽃을 사는 데 쓰는 셈이다. 정씨는 “1테이블 1플라워 캠페인의 일환으로 지난해 7~12월에만 하기로 했는데 연장했다. 꽃의 종류에 대해 물어보고 집에도 놓고 싶다고 개인적으로 문의하는 경우도 꽤 있다”고 전했다. 1테이블 1플라워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진행하는 관공서나 기업의 사무용 테이블마다 꽃 한 송이씩 놓자는 캠페인이다.


국세청의 생활밀착업종 사업자 등록 현황을 보면 전국의 꽃가게는 지난 5년간 꾸준히 늘어 2017년 12월 기준 2만611개로 2013년 1만8995개에서 약 8.5% 증가했다. 김영란법이 시행된 2016년(2만393개) 전후와 비교하더라도 1% 늘었다. 같은 기간 국내 꽃 판매액과 재배농가 수, 재배면적이 일제히 줄어든 것과 대조적이다. 국내 1인당 연간 꽃 소비액은 국민소득의 증가와 함께 늘어나다 2005년 2만870원으로 정점을 찍고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꽃 소비는 침체되는데 ‘동네 꽃집’은 늘어나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꽃 소비가 침체된 원인은 기형적 소비구조 때문이다. 한국의 전체 꽃 소비의 78.2%가 경조사용이다. 졸업식과 행사가 많은 2·3·5월에 집중적으로 몰린다. 2000년대 후반 가계소득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경기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꽃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크게 줄어들었다. 2010년 전후로 콜롬비아 등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으면서 밀려들어온 수입 꽃이 국내 화훼농가를 다시 한번 덮쳤다. 국내 농가의 경우 생산품목이 국화, 장미 등 특정 품목에 몰려 있어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 꽃 판매액은 2014년 4.4%, 2015년 10.1% 감소했다. 2016년 기준 전체 화원의 48.5%가 연매출 5000만원 이하다. 김영란법 시행 이전부터 국내 화훼산업은 무너져가고 있었던 셈이다.

화훼시장이 무너져가는 것과 대조적으로 젊은층의 꽃 소비 인식은 수면 아래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고민규 난만플라워 대표는 숨은 시장을 포착해낸 창업가이다. 난만플라워는 온라인 꽃배달을 하면서 2016년 11월 서울 홍대입구에 처음으로 꽃 자판기 서비스를 실시했다. 자판기는 현재 전국 60개로 늘어났다. 자판기 1대당 월 판매액은 400만~500만원 선이다. 1만5000원대의 저렴한 꽃다발들이 주로 팔린다. 고 대표는 “고객 대부분이 20대다. 이전 세대의 경우 ‘먹지도 못하는 꽃에 돈 쓰는 것은 낭비’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젊은이들은 나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꽃을 많이 찾는다”며 “꽃집은 그동안 동네에만 있어 정작 젊은이가 몰리는 번화가에서는 보기 힘들었는데, 번화가에서 꽃이 보이자 많이 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편의점에도 1만원대 꽃다발이 등장했다.

젊은층의 잔잔한 꽃 소비 붐은 국내 화훼농가를 살릴 수 있을까. 아직까지는 가능성이 반반이다. 난만플라워의 경우 물량의 30%는 수입 꽃이다. 꽃을 말려서 파는 드라이플라워가 40%, 약품처리한 ‘프리저브드 플라워’(보존화)가 60%를 차지한다. 가격경쟁력 때문에 외국산을 많이 쓴다. 특히 드라이플라워로 인기가 높은 목화는 대부분 이스라엘산이다. 반면 생화를 중심으로 파는 정태금씨 가게의 꽃들은 80% 이상이 국산이다. 고 대표는 “젊은 소비자들은 아직까지 높은 가격을 주고 생화를 사야 한다고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며 “꽃이 점점 일상용품으로 친숙해지면 생화에 대한 수요도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생화는 언젠가 시들기 때문에 새로운 꽃을 찾게 되고 꽃집과 농가의 지속적인 수입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꽃은 한번 사게 되면, 자주 그리고 계속 찾게 된다’는 점이 희망의 가능성이다.


aT화훼사업센터는 지난해 하반기 처음으로 가격표시제를 실시했다. 올 4월부터는 소매상 등록제를 실시해 서울고속버스터미널과 양재동의 꽃 도매상가부터 적용한다. 합리적 가격을 책정하고 소비자 신뢰를 얻기 위해서다. 권영규 aT화훼사업센터 분화부 부장은 “김영란법 시행 이후 전체 꽃 판매량은 줄었지만 고가 난에 집중됐던 소비 형태가 소규모 분화를 중심으로 다양해지고 있다”며 “소비자의 신뢰를 쌓아 올리는 기회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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