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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중앙일보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박인비에 해답(answer) 준 앤서(anser)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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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을 쉬고 나온 두 번째 대회 파운더스컵에서 우승한 박인비.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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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그는 해답을 찾고 싶었다. 골프는 너무 어려웠다. 문제는 자신의 실력 보다는 장비 쪽에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퍼터에 불만이 많았다.

골프의 토머스 에디슨으로 불린 핑의 창업자 카스텐 솔하임 얘기다. 세계 최초 제트 전투기인 FR-1 엔진 개발 프로젝트를 맡았던 GE(제너럴 일렉트릭)의 엔지니어였던 그는 40대에 골프를 시작했다. 골프 장비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일과가 끝난 후 차고에서 직접 퍼터 개량을 했다.

당시 퍼터는 얇은 블레이드형이었다. 공을 정확히 맞히지 못하면 헤드가 흔들려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솔하임은 무거운 테두리가 있어 가운데 맞지 않아도 충격을 흡수하는 테니스 라켓의 원리를 퍼터에 적용했다. 퍼터 헤드의 양쪽 끝인 힐과 토를 무겁게 하고 가운데를 비웠다.

잘 안 팔렸다. 솔하임은 부인에게 “사람들이 수퍼스타 아놀드 파머 이름을 달았다는 이유만으로 성능이 형편없는 퍼터를 쓰더라”고 불평했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릴 해답(answer)이 될 만한 훨씬 좋은 퍼터를 만들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결국 1966년 솔하임은 회심의 역작을 만들고 부인에게 이름을 지어달라 했다. 부인은 “해답을 원했으니 앤서(answer)로 하자”고 했다. 이름은 마음에 들었지만 알파벳 6글자를 새겨 넣을 공간이 모자랐다. 부인은 “W만 빼면 발음은 비슷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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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 앤서 오리지널 모델. [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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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온 앤서(anser)는 해답이 됐다. 대 히트였다. 아널드 파머도 자신의 이름을 넣은 퍼터를 버리고 앤서 퍼터를 썼다. 앤서형은 현대 퍼터의 원형이며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모델이 됐다.

반세기 전 나온 앤서 퍼터는 쉬운 퍼터로 발명됐지만 현재는 어려운 퍼터에 속한다. 헤드 사이즈가 커서 정렬이 쉽고 관용성도 증가한 말렛(반달) 퍼터가 나오면서다.

박인비는 19일 끝난 LPGA 투어 뱅크 오브 호프 파운더스컵에서 앤서형 퍼터를 들고 나와 우승했다. 박인비는 21일 중앙일보에 “퍼트 문제점은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말렛을 쓸 땐 문제가 확연히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고치려 노력하기가 쉽지 않았다. 앤서를 쓰면서 단점이 잘 보여 고치게 됐다”고 했다.

매우 현명한 시도다. 박인비가 목표로 하는 메이저 대회의 빠른 그린에서는 조그마한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경기감각이 부족한 박인비로서는 메이저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면 일부러 어려운 조건을 만들어서라도 단점을 찾아 미리 대비하는 것이 나을 듯싶다.

메이저대회 8승을 한 톰 왓슨도 그랬다. 그는 창 밖에 나무가 흔들리면 골프백을 챙겨 뛰어나갔다. 바람, 특히 맞바람이 불 때 공을 치면 미세한 단점도 확대돼 드러난다. 왓슨은 일부러 어려운 환경에서 연습하면서 경쟁력을 키웠다.

박인비는 단점을 찾기 위해, 또 일종의 적응 훈련을 하면서 덤으로 우승까지 차지했다. 대단한 일이다. 그러고 보면 박인비에겐 놀라운 일이 많았다. 손가락이 아파 경기에 못 나가다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고, 부상 후유증으로 또 한참을 쉬다가 지난해 초 HSBC에서 우승했으며, 허리 때문에 지난해 하반기를 날리고 올 시즌 초 우승했다.

심각하게 은퇴까지 고려한 선수가 세 번이나 우승과 함께 돌아온 것은 설명하기가 어렵다. 박인비의 재능과 노력 이외에도 이런 현명한 판단들이 더해져 생긴 일이 아닐까 싶다. 어떤 장비를 썼느냐보다는 냉철하게 문제를 들여다보고 객관적인 해답을 찾으려는 시도가 의미가 있다고 본다.

박인비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 온 ANA인스퍼레이션을 비롯한 메이저대회에서 어떤 퍼터를 쓸지는 알 수 없다. 박인비는 “아직까지는 앤서형 퍼터 감이 좋아서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바꾸지 않을 것 같지만 일단 이번 주 경기를 해 보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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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비의 앤서형 퍼터는 캘러웨이 툴롱디자인 메디슨이다. [Christian Petersen-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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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비는 앤서 퍼터를 통해 자신감과 스트로크 교정이라는 해답을 찾았다. 골든 슈퍼 커리어 그랜드슬램(5대 메이저+올림픽)이라는, 이름도 복잡한 문제의 해답도 찾을 것으로 기대한다. 매번 놀라운 일을 해내는 박인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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