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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베이스볼 라운지]이기는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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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한때 스프링캠프에서 ‘지옥 훈련’이 유행이었다. 오키나와, 미야자키 등 일본 전지훈련지의 검은 흙이 선수들의 유니폼에 잔뜩 묻었다. 숨을 몰아쉬는 표정과 어우러지면서 ‘지옥 훈련’ 사진은 화보처럼 인터넷을 장식했다. 치열한 준비는 다음 시즌의 기대감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했다. 마치 TV 속 ‘독한 예능’처럼 주인공들의 고생스러움이 팬들에게는 즐거움 또는 희망으로 여겨졌다.

스프링캠프는 준비의 기간이다. 준비는 모자란 곳을 채우고, 남는 곳을 비우는 것에서 이뤄진다. 모자란 부분을 노력이 채우고, 팀 전력에서 남는 부분은 이동과 전환으로 균형을 맞춘다. 많은 선수들이 포지션과 보직을 바꾸고, 바뀌어 모자란 부분을 채우기 위해 땀을 흘린다.

메이저리그라고 해서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훈련량이 적어 보이는 이유는 개인의 숨은 노력들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추신수는 마이너리그에 주로 머물던 어린 시절, 스프링캠프에 합류하면 새벽 4시30분에 훈련장에 나와 달리기를 시작했다.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 중 한 명이었던 로이 할러데이 역시 누구보다 먼저 그라운드에 나섰다. 남들이 훈련 시작을 준비하는 오전 6시30분이면 할러데이는 아침 개인 훈련을 모두 끝냈다.

하지만 모든 준비는 숨 쉴 틈 없이 꽉 짜인 훈련 스케줄로 완성되지 않는다. 많은 훈련량에 따른 자신감은 마음의 여유를 만들지만, 작은 빈틈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완벽주의는 언제나 아슬아슬하다. 선만 넘으면 부상이 기다리고 있는 ‘한계 상황’ 끝까지 가기에는 부상의 리스크가 너무 크다.

그래서 오히려 준비에 필요한 것은 여유다. 더 채울 곳을 남겨 두는 게 진짜 준비다. 메이저리그 워싱턴은 올 시즌 데이브 마르티네스 신임 감독을 영입했다. 최근 6년 중 4번이나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지만 매번 디비전시리즈에서 패했다. 어느 팀에도 뒤지지 않는 쟁쟁한 선발진과 힘 넘치는 타선을 가졌지만 조금씩 모자랐다.

마르티네스 감독은 지난 11일 스프링캠프에서 묘한 훈련을 했다. 야수진 전체가 1루와 2루, 3루를 거쳐 홈까지 돌아오는 훈련이었다. 단지 누 사이의 최적화된 코스와 거리를 찾는 게 아니었다. 선수들은 타석에서 가상의 방망이를 들고 힘껏 스윙을 했고, 각자 다른 세리머니를 했다. 일명 ‘끝내기 홈런 훈련’이었다.

워싱턴 주포 브라이스 하퍼는 가짜 스윙을 한 뒤 방망이를 가볍게 던지는 동작을 했다. 하퍼표 ‘배트 플립’이었다. 이어 검지를 들어 홈 팀 더그아웃을 가리키며 천천히 1루로 뛰기 시작했다.

하위 켄드릭은 지난 시즌 워싱턴이 기록한 3개의 끝내기 홈런 중 한 개를 기록한 주인공이다. 8월14일, 샌프란시스코전에서 연장 11회 끝내기 만루홈런을 터뜨렸다. 그때처럼, 켄드릭은 짧고 굵게 포효한 뒤 베이스를 돌았다. 밥 헨리 3루 코치와 하이파이브를 한 뒤 홈으로 달렸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동료들은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스크럼을 짜고 기다리고 있었다.

켄드릭은 “음, 나는 떨어지는 커브를 받아쳐서 관중석에 타구가 꽂히는 이미지를 그렸다”면서 “재밌지 않나, 이건 일종의 마인드 게임이고, 마인드 훈련”이라고 말했다. 마르티네스 감독도 “다들 열심히 준비해 왔다. 가끔은 이런 재미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저 ‘재미’만을 위한 것 역시 아니다. 마르티네스 감독은 “여기 모두가 끝내기 홈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기는 상상이다. 졌을 때 분함도 필요하지만, 이겼을 때를 상상하는 즐거움이 더 중요하다. 워싱턴은 그동안 가을에 너무 많이 졌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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