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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난민과 국제사회

난민 총격에 ‘반이민’ 공방…총선으로 불똥 튄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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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만 골라 총격한 극우청년, 히틀러 추종한 인종혐오 범죄

극우정당 “정책 실패” 쟁점화…정부 “증오·폭력에 분열 안돼”

이탈리아 경찰은 지난 3일(현지시간) 발생한 흑인 총격사건을 ‘인종혐오 범죄’로 규정했다. 극우정당들은 무분별한 이민 수용정책이 원인이라고 대응하면서 이 사건이 다음달 4일 실시되는 총선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4일 현지 언론들은 전날 중부 소도시 마체라타에서 흑인들만 총격한 현지 청년 루카 트라이니(28)가 아돌프 히틀러를 추종하는 백인우월주의자라고 전했다. 수사당국은 트라이니의 집에서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 등 나치 관련 서적을 압수했으며,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상징으로 자주 쓰이는 켈트 십자가 깃발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당국은 외국인 혐오증이 범행동기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사건 발생 며칠 전 마체라타에서 18세 이탈리아 소녀가 여행가방에서 토막 살해된 시신으로 발견됐다. 트라이니는 용의자로 지목된 나이지리아 출신 난민(29)이 경찰에 체포된 지 하루 만에 범행을 저질렀다.

정부는 명백한 인종혐오 범죄라는 입장이다. 파올로 젠틸로니 총리는 “증오와 폭력은 우리를 분열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트라이니는 지난해 6월 극우정당인 동맹당 후보로 시의원 선거에 나섰다가 낙선했다. 피해자들은 나이지리아, 가나 등 이탈리아로 들어오는 난민들이 많은 국가 출신이었다.

극우정당들이 이번 사건을 정부의 이민정책 실패 때문이라면서 보수층을 결집시키려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파연합의 한 축인 동맹당의 마테오 살비니 대표는 “이탈리아를 이민자로 채우는 사람들이 폭력을 선동하고 있다”며 ‘나이지리아 난민의 범죄’를 부각시켰다. 중도우파 정당 전진이탈리아(FI) 소속으로 우파연합을 이끌고 있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60만 난민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사회적 폭탄”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비판 진영은 범죄자인 트라이니에게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동맹당, 카사파운드 등 극우정당들이 총선을 앞두고 반난민 정서를 부추긴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탈리아는 급속도로 늘어난 난민과 30%를 넘는 청년실업률에 대한 불만으로 반난민 정서가 높아지고 있다. 카사파운드는 지난해 11월 지방선거에서 9%를 득표했고 로마 외곽 해안도시 오스티아에서는 정당 역사상 처음으로 당선자를 배출했다. 동맹당과 이탈리아형제당(FDI) 등 극우정당이 합류한 우파연합은 최근 여론조사 지지율이 35% 안팎으로 오성운동과 민주당에 7~8%포인트가량 앞서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중해를 통한 난민행렬을 억제하기 위해 지난해 7월부터 불법 난민 밀입국조직 단속을 벌이는 리비아 해안경비대에 훈련과 장비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입국한 난민 수는 11만9000명으로 2016년(18만명)에 비해 3분의 1가량 줄었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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