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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핑 원' 박항서는 어떻게 '쌀딩크'가 됐나

아주경제 백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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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핑 원' 박항서는 어떻게 '쌀딩크'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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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베트남 U-23 대표팀 결승으로 이끌어 국가대표팀, K리그, 실업축구 등 박항서의 우여곡절 감독사
상주 상무 시절의 박항서 감독.

상주 상무 시절의 박항서 감독.



잉글랜드의 프로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 조세 무리뉴는 자타칭 '스페셜 원(special one)'이다.
한국에는 '슬리핑 원(sleeping one)'이 있다. 박항서 베트남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 감독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박 감독은 상주 상무 감독 시절인 2014년 경기 도중 졸고 있는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잡혀 이 같은 칭호를 얻었다.

슬리핑 원이 다소 짖궃은 의미의 별명이라면 '쌀딩크'(쌀과 히딩크를 합친 합성어)는 박 감독에게 보내는 온전한 찬사다. 박 감독은 24일 카타르를 격파하면서, 베트남을 2018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십 결승전으로 이끌었다. 베트남 축구의 역사를 다시 써내려가는 박 감독에 대한 현지의 반응은 상상 이상이다.

박항서 감독이 지도자로서 세간에 알려진 시기는 2002년 한일월드컵 때다. 박 감독은 히딩크호의 수석코치로서 한국 대표팀의 4강 신화에 일조했다. 그러나 이후로 박 감독의 커리어가 순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월드컵 직후 박 감독은 부산아시안게임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다. 히딩크 감독의 운영체제를 이어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대표팀은 4강에서 승부차기 끝에 이란에 패한다.


간신히 동메달은 땄지만 아시안게임의 경우 금메달을 따야 병역 면제를 받을 수 있다. 월드컵 대표팀 탈락의 울분을 금메달로 대신하려 했던 이동국이 입대해야 했던 까닭이다. 당시 이영표의 페널티킥 실축은 '이동국 군대가라 슛'으로 여전히 회자하고 있다.

경질된 박 감독은 막 창단된 경남FC의 초대 감독을 맡게 된다. 신생팀에 재정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시민구단의 특성상 첫 시즌인 2006년 14개팀 중 12위에 그친다. 겨우 꼴찌만 면한 수준이다.

2년차인 2007년에는 경남이 돌풍의 주역이 된다. 조직력의 차원에서 괄목상대한 경남은 정규리그에서 4위를 차지한다.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시즌이 끝나자마자 박 감독은 팀을 떠난다. 구단 경영진과의 마찰 때문이라는 뒷말이 나왔다.



박 감독의 세 번째 정거장은 전남 드래곤즈. 전남에서 박 감독은 구단의 큰 지원이 없었음에도 2009년 플레이오프 4위, 2010년 FA컵 4강 등 일정한 성과를 거둔다.

2012년 상주 상무의 감독으로 취임한 박 감독에게는 달갑지 않은 일이 벌어진다. K리그 승강제 도입 논의 과정에서 성적과 무관하게 상주가 자동으로 강등되는 방안이 나온 것이다. '멘붕'한 상주는 잔여 경기를 보이콧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2부행을 받아들인다.

이후 해마다 승격과 강등을 거듭한 끝에 박 감독은 2015년 시즌이 끝나고 구단 수뇌부와의 마찰로 사임한다. 박 감독은 당시 인터뷰를 통해 감독의 재량권을 인정해주지 않는 구단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기도 했다.


놀랍게도 박 감독의 다음 행선지는 창원시청 축구단이었다. 국가대표팀 감독 역임은 물론 K리그에서도 잔뼈가 굵은 박 감독이 실업팀을 맡게 되자 많은 이들이 의아해했다. 박 감독은 부임 당시 '축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환경보다 내 축구 철학을 펼칠 수 있다면 프로든 대학이든 상관하지 않는다"며 "어차피 축구는 다 똑같다"고 설명했다.

커리어를 돌아보면, 박 감독은 중소 클럽에서 조직력을 바탕으로 실력을 증명해 왔다. 그러나 매번 프론트와의 갈등, 선수단 장악 부족 등의 외부적 이유로 본의 아니게 '떠돌이 감독' 생활을 해 왔다. "저에 대한 비판도 베트남 내에서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박 감독은 2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이렇게 말했다. 늘 그랬듯 이번에도 박 감독은 보여주고 증명했다.


백준무 기자 jm100@ajunews.com

백준무 jm100@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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