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란한 사건 대신 사람에 집중하며 공감도 높여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슈퍼맨은 기자다. 그러나 기자는 슈퍼맨이 아니다.
그런데 슈퍼맨이 아닌 기자 이야기는 늘 실패한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면 딸꾹질을 하게 하거나('피노키오'), 아예 남녀상열지사에만 집중하거나('질투의 화신'), 그도 아니면 무소불위 사설탐정 같은 캐릭터('조작')가 등장한다. 실제로 기자를 이렇게 요리한 이야기는 기본 이상은 했다.
반면, tvN 월화극 '아르곤'은 기자 이야기의 한계를 고스란히 노출하고 있다. 정석을 택한 탓이다. 5회까지 오도록 시청률이 2%대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진정성과 보편성을 안고 간다. 기자라는 직업의 사실과 진실에 대한 갈망, 그 험로에 놓인 고민과 애환이 담겨있다. 무엇보다 취재 현장 다양한 인간군상의 캐릭터가 살아있다. 그래서 호평이 나오고, 공감을 형성한다. 지난 19일 6회에서는 3%를 찍었다.
◇ 사건 대신 사람…누구나의 이야기
문제는 기자에 집중하면 사건이 크고 기사가 커도 정작 화면으로는 보여줄 게 별로 없다는 것이다. '조작'이 기자 대신 사건을 키운 이유다. 그 과정에서 기자의 원형은 실종되고 요란한 사건 추적기만 남았다.
'아르곤'은 그 정반대 지점에 있다. 주인공들이 추적하는 사실과 진실은 크지만 그 대상을 강조하지 않는다. 주인공인 방송사 탐사보도팀 구성원들의 면면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동선도, 액션도 크지 않다. 사건은 충격적이고, 상황은 긴박하지만 드라마는 조용하고 잔잔하다. 시청률이 6회에서야 3%를 넘은 것도 이 때문. 하지만 드라마는 단단하다. 조용함 속에 진정성을 강하게 뿜어낸다. 현실 묘사, 캐릭터 묘사가 세밀하고 강렬하다.
또한 방송사 내부의 선명한 위계질서, 어쩌면 카스트제도보다 더 심한 신분서열, 계약직의 비애는 언론사, 방송사에 국한되는 구조가 아니다. 이기적인 출세지상주의자, 배울 것은 많지만 인간미 없는 독종 선배, 열심히는 하지만 성과가 없는 후배, 대충대충 구렁이 담 넘듯 살아가려는 인간, 능력이 출중하나 신분의 제약에 갇힌 자 등의 캐릭터는 모두 결이 생생하게 살아있어 살을 꼬집는다.
'아르곤'은 이런 이들이 모여 탐사보도를 하는 과정을 쫓으며 언론사의 이야기를 우리 모두의 보편적 이야기로 확장시킨다.
그러면서도 광고주와 사주의 논리, 생존을 위한 현실타협, '시용 기자'라는 언론사의 '특수'한 상황도 놓치지 않고 꼬집는다. '조작'처럼 일개 개인의 일탈로 몰거나, 그림자도 비치지 않는 거대 권력의 농간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충분히 '비겁'할 수 있는 언론의 모습을 고발한다.
◇ 캐릭터와 한몸 된 배우들
'아르곤'이 공감을 얻는 것은 배우들의 열연에 크게 빚을 지고 있다. 김주혁, 천우희를 비롯해 박원상, 박희본, 이승준, 이경영, 심지호 등이 맡은 캐릭터를 생생하게 살려내고 있다.
김주혁과 박원상이 극을 단단하게 받드는 와중에 스크린에서 드라마로 첫발을 내디딘 천우희가 강단있는 모습으로 시선을 잡아끈다. 이들은 극의 냉정과 열정을 나눠 짊어지고 한발한발 나가고 있다.
이승준은 어느 조직에서나 볼법한 '꼴불견'을 이보다 잘해낼 수 없고, 박희본은 이 땅 모든 계약직 베테랑 작가의 처지를 실감나게 실어나른다.
엄청난 사건이 등장해도 과감한 생략법을 통해 사건의 형체만 남기고 사람을 부각시킨 '아르곤'은 시청률 3%가 최선으로 남을 수도 있다. 이제 남은 것은 2회 뿐. 하지만 기자 이야기를 하면서 과장법이나 왜곡없이 진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이 미덕으로 남을 듯하다.
pretty@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