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공의 혼이 서린 도자기처럼 한국형 발사체에도 엔지니어의 영혼이 담겨 있다. 사진은 스피닝 공정을 거치고 있는 추진제 탱크 돔. |
전통적인 도자기가 도공의 혼으로 탄생하듯 우주 발사체에도 엔지니어의 영혼이 담긴 공정이 적지 않다. 끊임없는 시도와 실패의 반복, 작은 오차나 생채기도 허용하지 않는 정밀한 작업, 그러면서도 기계가공 공정 만으로는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없는 고난도의 작업이 우주 발사체 개발 과정에 숨어 있다.
우주 발사체 구조물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도 최대한 얇고 튼튼하게 만들어야 하는 추진제 탱크 역시 마찬가지다. 첨단 기술과 엔지니어의 경험이 결합한 스피닝(spinning) 기술이 중요하게 쓰이는 부품이다. 추진제 탱크를 만드는데 스피닝 기술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로켓 구조물의 70~80% 차지하는 추진제 탱크
스피닝에 앞서 이 기술이 중요하게 쓰이는 추진제 탱크를 먼저 살펴보자. 극저온의 산화제와 상온의 연료를 저장하는 추진제 탱크는 발사체 외형의 70~80%를 차지한다. 다시 말해 우주로 쏘아올릴 로켓 맨 상단의 페이로드(payload) 부분을 제외하면 발사체 대부분은 연료와 산화제를 싣는 추진제 탱크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사체의 몸통인 셈이다.
추진제 탱크는 발사체 구조물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사진은 한국형 발사체의 구조도. |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개발 중인 우주 발사체의 추진제 탱크. 출처=NASA |
이렇게 발사체 대부분을 추진제 탱크가 차지하다 보니 그 무게를 가볍게 하는 것이 관건이다. 추진제 탱크의 경량화가 곧 발사체의 성능과도 직결되는 것이지요. 무게를 가장 손쉽게 줄이는 방법은 크기를 줄이는 것이다.
하지만 추진제 탱크의 크기는 발사체의 임무에 따라 어느 정도 결정되어 있는 만큼 이를 작게 해 무게를 줄이기는 쉽지 않다. 추진제 탱크의 두께를 얼마로 할 것이냐 정도를 조절할 수 있지만, 그 역시 비행 압력 등을 고려해야 하는 만큼 변화를 주는 데 한계가 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는 가벼우면서도 튼튼해야 한다. 현재 개발 중인 한국형 발사체(KSLV-Ⅱ)의 추진제 탱크는 가볍고 내구성이 좋은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무게를 더 줄여야 한다. 알루미늄 합금이 아무리 가벼워도 추진제 탱크 크기의 구조물은 그 자체로도 상당한 무게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한국형 발사체의 추진제 탱크 실린더 내벽. 격자 구조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
◆지름은 3.5m지만 두께는 불과 2㎜
결국 추진제 탱크의 무게를 줄이는 최후의 방법은 비행 압력을 견디는 한도에서 최대한 얇게 만드는 것이다. 추진제 탱크는 크게 몸통에 해당하는 실린더와 머리에 해당하는 돔으로 구성된다. 실린더 벽의 두께는 2~3㎜에 불과하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추진제 탱크의 외벽은 곧 로켓의 표면이기도 하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얇게 만드는 대신 강한 소재를 썼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 정도 두께의 구조물이 우주로 날아갈 때 로켓에 가해지는 하중을 견디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추진체 탱크 실린더의 내벽은 삼각형 격자(isogrid) 형태의 보강 립으로 만들어진다. 실린더를 잘라 옆에서 보면 평면이 아니라 요철(凹凸) 형태가 되는 것이다. 실린더 벽의 두께는 2~3㎜에 불과하지만, 우주에서 비행할 때 받는 내·외부의 하중을 충분히 견뎌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원통형의 실린더가 만들어지면 위·아래로 돔을 붙인다. 돔의 지름은 한국형 발사체 1단 기준 3.5m(2·3단은 2.6m)에 달한다.
돔의 높이는 0.9~1m다. 실린더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크지만 두께는 2.1~2.7㎜다. 압력을 더 받는 하부 돔의 두께가 3㎜ 정도로 다른 부위보다 다소 두껍지만, 이 정도 크기의 알루미늄 합금 구조물을 이렇게 얇게 만들기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스피닝 공정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한국형 발사체의 2단 추진제 탱크 돔. |
◆스피닝 공정, 엔지니어의 경험이 좌우
여기에 쓰이는 제작기술이 바로 스피닝이다. 스피닝은 주로 축대칭(어떤 축을 중심으로 회전해도 원래 같은 형이 유지되는 대칭성)이면서 두께가 얇고 속이 빈 형태의 금속 제품을 제작할 때 사용하는 공정이다. 이러한 제품은 대부분 크기에 비해 두께가 얇은 특징을 지니고 있어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재료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스피닝 공정을 많이 사용한다.
앞서 얘기했듯 한국형 발사체 1단 추진제 탱크의 돔 두께가 2.1~2.7㎜에 불과하지만 스피닝 가공 전 재료의 두께는 15㎜ 정도에 달한다. 2단 추진제 탱크의 들어가는 재료도 12.7㎜에서 스피닝 공정을 시작한다. 스피닝의 핵심은 일정한 곡률을 만들면서 재료를 성형하는 것이다. 15㎜의 원판을 기계에 밀착시키고 롤러의 궤적을 제어해서 원하는 두께와 형상이 만들어질 때까지 성형하는 것이다. 바로 이때 엔지니어의 경험과 직관이 큰 변수로 작용한다.
스피닝 공정의 최대 난점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해볼 수 없다는 데 있다. 어느 정도 크기와 두께로 할지 등의 공정을 개발하고 이것을 프로그램화해서 장비에 입력하면 스피닝은 자동으로 진행되지만, 실제 과정에서는 수많은 변수가 발생한다. 이것을 전부 해석해서 시뮬레이션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스피닝 공정에서는 엔지니어의 경험이 크게 작용한다.
한국형 발사체의 시험 발사체 개발 모델(EM )산화제 탱크 이송 영상.
돔과 실린더 등을 연결하는 원주 용접 장치. |
◆수십번 실패 반복한 끝에 완성
완벽한 돔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축적한 경험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문제는 지름 3.5m의 추진제 탱크를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데도 있다. 액체추진 과학 로켓 ‘KSR-Ⅲ’ 개발 당시 지름 1m, 그리고 ‘나로호’(KSLV-Ⅰ) 개발 당시 선행연구로 진행한 2.9m의 돔을 만들어본 것이 유일한 경험이다.
그리고 그 경험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진과 기술진만 국내에서 유일하게 갖고 있다. 현재 1단 추진제 탱크와 2·3단 추진제 탱크는 항우연과 국내 기업이 협력해 개발 및 제작을 진행하고 있다. 2단 추진제 탱크는 개발을 완료하고 현재 지상시험을 마쳤으며, 3단 추진제 탱크는 개발 중이다. 2단 추진제 탱크 돔을 만들 때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한국형 발사체 만드는 ‘엔지니어의 혼’으로
스피닝 장비에 원판을 올려놓고 돌리며 미세하게 성형하는 작업은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만큼이나 세심한 주의와 집중이 필요하다.
완성했다고 살펴보면 곳곳에서 흠집이나 하자가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실패했더라도 도자기처럼 쉽게 깨서 버릴 수는 없지만, 그런 실패와 시행착오를 반복한 끝에 완성된 결과물을 얻는 것도 비슷하다. ‘도공의 혼’이 아니라 기술과 경험이 결집된 ‘엔지니어의 혼’을 불어넣는 것이다.
KSR-Ⅲ에서 나로호에 이어 한국형 발사체를 거치면서, 로켓의 크기와 성능만큼이나 스피닝 공정에 필요한 기술과 경험도 커지고 있다. 선배들이 축적한 그 기술과 경험은 다시 후배 연구원들에게 전수되면서 더 큰 발사체, 더 먼 우주로 향하게 될 것이다. 또 도자기를 빚던 도공의 혼이 한국형 발사체를 만드는 엔지니어의 혼으로 이어지는 한 우리의 우주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홍보실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 Segye.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