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4 (일)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불법영상 걸릴때 대처법까지 공유…법 조롱하는 유포자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몰카, 디지털 성범죄다

2부 가해자 편: 그는 처벌받지 않는다





하나의 파일이 수백, 수천개로 순식간에 ‘복제’된다. ‘몰카’로 불려온 디지털 성범죄 영상 피해자의 고통도 그만큼 커진다. 하지만, 가해자들은 그 책임의 무게마저 ‘엔(N)분의 1’로 축소하며 피해를 외면한다. 수사 당국과 법원도 이들의 책임을 가볍게 본다. 끊임없는 디지털 성범죄의 배경에 가해자들이 처벌받지 않는 기묘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한겨레

회원수 14만명에 이르는 이 카페의 정식 이름은 ‘파일공유 단속관련 네티즌 대책토론’이다. 오가는 ‘토론’은 주로 이런 것이다. “한달 전쯤 직접 촬영하지 않은 치마 속 몰카를 피투피(P2P) 사이트에 올렸는데 경찰서에서 고소장이 접수됐다며 연락을 받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느냐. 벌금은 얼마나 나오느냐.”(지난 6월 한 회원) 이 질문에 다른 회원이 댓글을 달았다. “정보통신망법(음란물유포죄)이 적용되면 약식벌금형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검사 운이 좋으면 기소유예도 가능하다. 반성문·탄원서 등 각종 양형자료 제출해서 최대한 선처를 노려보라.”

■ 촬영해서 유포했는데 ‘기소유예’ 기대

카페 회원들은 영상 유포와 관련해 100만~200만원 수준의 ‘벌금형’을 엄벌로 받아들인다. 지난 7월, ‘서울 인근에 사는 결혼을 앞둔 31살 직장인’이라고 밝힌 남성도 이 카페에 글을 올렸다.

“얼굴을 가린 나체사진을 3장 게시한 게 화근이 돼 조사받고 왔습니다. 시인하고 선처를 부탁했습니다. 헌팅을 통해 이뤄져 연락처가 없고, 촬영동의 안 받았다고도 했습니다. 핸드폰 사진 삭제한 것을 직접 확인도 하셨고, 제가 진솔하게 진술하고 있는 것 같다며 따로 복구 프로그램을 돌리시진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정말로 처음으로 호기심에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잠깐 소유해서 보고 지우려고 했는데 그만…. 형량이 어느정도 되냐고 (경찰에) 여쭤보니 ‘기소유예도 가능할 수 있을 거 같다’ 하셨습니다. 벌금형 나오면 하늘이 무너져 내릴 거 같네요.”

불법촬영에 유포까지 한 남성도 기소유예를 바랄 수 있는 데는 근거가 있다. 초범이고, 혐의를 인정했다는 등 ‘선처’를 기대해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2015년 상반기 카메라이용촬영죄 기소율은 32.1%에 불과했다. 디지털 성범죄를 연구한 김현아 변호사는 “성폭력처벌법으로 혐의가 적용될 경우 가해자는 성범죄자 신상등록이 되기 때문에 ‘범죄에 비해 형벌이 과하다’고 여겨져 초범인 경우 대부분 기소유예나 불기소 처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카페엔 “‘자신의 노력+검사 운’이 따르면 기소유예됩니다”라거나 “반성문, 탄원서와 함께 헌혈증서 제출까지 해보라”는 팁 아닌 팁이 돌고 있다.

■ 유포가 더 큰 범죄

사진과 영상 등이 유포되면 ‘촬영’ 자체보다 피해자의 실생활에 더 큰 타격을 주는데도 수사당국과 사법부가 심각한 유포를 가해 행위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런 탓에 본인이 성범죄를 저지른다는 의식을 갖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촬영을 하지 않고 유포만 한 이들이 더더욱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이유다.

경찰은 유포자에게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 대신 정보통신망법의 음란물유포죄나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성폭력처벌법의 경우 ‘몰카인지 알았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성폭력처벌법은 촬영 및 유포 행위에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벌금형 이상은 성범죄자 신상등록도 된다. 그러나 정통망법에 규정된 음란물유포죄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형량이 낮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유포자가 ‘몰카 영상인지 몰랐다’는 식으로 빠져나갈 경우 나중에 혐의를 변경해야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경찰이 소극적으로 법을 적용한다”고 비판했다. 이때문에 일각에서는 ‘몰카로 의심되는 영상의 경우 몰카가 아니라는 점을 유포자가 입증해야 한다’는 식의 별도 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경찰이 유출 영상이 담긴 저장장치를 ‘몰수’하지 않는 것도 피해자들에겐 잠재적인 두려움으로 남는다. 경찰은 촬영자나 유포자를 잡아도 저장매체를 임의제출 받는 정도에 그쳤다. 하드디스크, 외장하드, 클라우드 등 다른 저장매체에 저장돼있을 가능성을 꼼꼼히 따져보지도 않고, ‘유포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내용의 서약서를 받고 끝내기도 한다.

유포자를 촬영자보다 엄히 처벌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상균 한국외대 외래교수는 ‘도촬행위 현상과 규제에 관한 비교법적 검토’ 논문에서 “도촬행위 및 이를 보관하는 행위와 비교했을 때, 복제 및 유포하는 행위의 불법성이 더 크다”며 “처벌의 정도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법원은 촬영 및 유포자를 단순 촬영자와 비슷한 수준으로 처벌하고 있다. 김현아 변호사가 디지털 성범죄 촬영물 유포 여부에 따른 1심 벌금 정도를 비교했더니, 양형이 비슷했다. 촬영만 하고 유포하지 않은 경우 100만~200만원(39.4%) 처분이 가장 많았는데, 유포까지 한 경우에도 100만~200만원(31.6%) 구간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한겨레

※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몰카, 시청도 범죄다

“다운만 받고 어디 퍼뜨리지만 않으면 걸릴 일 없다고 봐도 됩니다. 올리고 내려받는 사람 다 잡아들이면 우리나라 인구 절반이 경찰서 정모할걸요?”(카페 회원)

시청도 가해 행위다. 하지만 범죄 행위라는 인식이 약한 게 사실이다. 관련 단체들은 ‘디지털 성범죄’ 시청 행위를 ‘시청 강간’으로 규정하고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수사당국이 마음 먹기에 따라 단순 시청자를 대상으로도 몰수 등 강제수단을 사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단순 시청자의 컴퓨터에 들어있는 영상을 ‘범죄행위로 인해 발생했거나 이로 인해 취득한 물건’으로 보고 몰수할 수 있다”며 “현실적으로는 단순소지죄를 신설하거나, 단순소지를 처벌하진 않아도 소지자의 영상을 몰수할 수 있도록 조항을 신설하는 게 더욱 확실하다”고 말했다.

아동·청소년법은 아동이 등장하는 음란물을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처벌한다. 디지털성범죄아웃(DSO·디에스오)의 써니 활동가는 “몰카 영상 역시 소지 자체를 처벌해야 한다. 그래야 ‘보는 행위’도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생긴다”고 말했다.

한겨레

※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업체를 잡아야

“집중단속이래봤자 토렌트와 기타 사이트에 업로드 단속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굳이 해외에 서버를 두고있는 야동 사이트 서버까지 뒤져가면서 수사를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카페 회원)

불법 영상으로 돈을 버는 업체에 대한 강력한 대응도 필요하다. 특히 국내에 서버를 두고 있는 웹하드 업체들은 비교적 손쉽게 처벌할 수 있는 대표적 유통시장이다. 이들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소라넷’류의 성인사이트와 달리 국내에 서버를 두고 버젓이 ‘몰카’ 영상을 판매하고 있다. ‘몰래 찍힌 것’ 입증이 어렵다해도 최소한 정보통신망법의 음란물유포죄로 수사할 수 있다. 대법원은 2010년 11월 한 웹하드 업체의 정통망법 위반(음란물유포 방조) 혐의를 인정했다. 그러나 경찰은 그동안 ‘품이 많이 드는데, 실익은 적다’는 이유로 수사에 소극적이었다.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성인 사이트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의지만 있다면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입을 모았다. 미디어스타트업 개발자 이준행씨는 “국내에서 북한 사이트는 특별히 우회하는 방법을 쓰지 않는 이상 완벽히 차단되는데 음란물 사이트는 너무 쉽게 접속할 수 있다. 해외사이트 단속이 어렵다고 하지만 사실상 의지의 문제”라고 말했다.

최근 유출 동영상 유통 경로로 떠오르고 있는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의 경우 감시의 사각지대다. 국내 법인이 있는데도 페이스북 등은 국내 포털사이트와 달리 피해 신고 연락망도 따로 없이 이메일로만 접수를 받아 지탄을 받고 있다. 처리도 느리다. 이해영 전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두두아이티 이사)는 “페이스북 등 글로벌 업체에 의무를 부과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장기적인 과제”라며 “당장은 접수된 피해 영상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 피해자가 신고를 하면 우선 ‘블라인드 처리’를 한 뒤, 이후 사실 여부를 가려 최종 비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방법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수지 신지민 기자 suji@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 페이스북] [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