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19 (목)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서울시립대 몰카 사건’…일부서 자작극 내몰자 경찰 “사실 맞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한 동영상 같았는데….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저였어요.”

지난 1일 페이스북 페이지 ‘서울시립대 대나무숲’에는 “몰래카메라(몰카) 피해자라는 걸 알게 됐다”는 글이 하나 올라왔다. 글쓴이는 “범인은 우리 학교 학생이었다. 어제 경찰서에 갔다가 우리집 화장실이 찍혔다는 걸 알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너무 무섭고 수치스럽고 화가 났다. 나 혼자 있는 공간이라 생각했는데 그걸 보고 있었던 누군가가 있었다는 게 너무 소름 돋고 무서웠다”고 썼다. 또 “내가 그놈에 대해 알 수 있었던 건 우리 학교 학생이라는 것과 후문에 사는 사람이라는 것뿐이었다”면서 “그놈은 지금 동대문경찰서 유치장에 구속돼 있다. 피해자가 자그마치 몇십명이나 되는데 그 영상 속 사람들이 누군지 몰라서 형사님도 ‘피해자들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고 적었다.

그러나 몰카 피해를 당했다는 글쓴이의 제보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일부 학생들이 이 사건을 ‘자작극’으로 몰아간 것이다. 일부 학생들은 동대문경찰서 112 종합상황실 등에 전화를 걸어 사건 진위 파악에 나섰다. 동대문경찰서 관계자는 “민원실 등에 해당 글이 사실인지를 묻는 학생들 전화가 수십통 걸려왔다”고 전했다. 또 시립대 익명 게시판에는 “대숲(대나무숲) 몰카 사건에 대해 논란이 많은 것 같길래 방금 동대문경찰서에 전화해봤다. 담당자 말이 그런 사건은 ‘접수되지 않았다’고 했다” “몰카범 글은 조작이다. 특정 사이트에서 ‘남혐’(남성혐오)을 하려고 저런 망상글을 쓰고 댓글로 선동하고 있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몰카 피해가 자작극 논란으로 비화되자 총학생회가 나섰다. 총학생회는 2일 시립대 익명게시판 등에 올린 ‘후문 몰래카메라 사건 확인결과 안내’에서 “총학생회 차원의 조사를 실시했다”며 “동대문경찰서에서 해당 사건이 사실임을 확인해주었다”고 밝혔다. 시립대 대나무숲 운영자도 같은 날 ‘긴급공지’ 글을 통해 “사건 당사자와 연락을 통해 실제 사건임을 확인했다”며 “(경찰에서도) 더 이상 전화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전해왔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3일 “최근 시립대 학생이 몰카 범죄로 입건돼 검찰에 송치된 건 사실”이라며 “피해자가 특정될 수 있고 아직 수사 중이라 자세한 내용은 말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이후 진위 논란은 다소 진정됐으나 피해자에게 자작극을 꾸몄다며 몰아간 것은 ‘2차 가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시립대생 김모씨는 “일부 학생들이 피해자가 사건을 조작했다며 경찰에 전화까지 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더 큰 고통을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우리 사회가 성범죄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얼마나 무감각한지 보여주는 사례”라며 “2차 피해는 몰카 등 성범죄 문제 해결에도 굉장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카카오 친구맺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